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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단 Mar 17. 2023

챗GPT 인공지능은 이론주의자

딱 한가지, 가설을 생각해내 말하지는 않는다

챗GPT에게 2022년 월드컵 우승팀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라고 답했다고 한다. 세상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그가 이런 오류를 말할까 의아하지만 세상의 가능한 지식을 모두 갖고 일어날 수 있는 거의 모든 확률을 분석하여 말했을 뿐이다. 가장 실력있는 팀으로 실제 우승한 아르헨티나 대신 프랑스를 꼽은 것이다. 2021년 이후 사건 데이터는 아직 입력전이라는 것은 잠시 잊고 생각해 보자. 이런 생각을 한번 해 본다. 당신이 만약 2022년 월드컵 결승전을 보았다면 동의할지도 모르겠다. 만약 아르헨티나 팀 동료들이 메시를 향한 존경심으로 원팀을 이뤄내지 못했다면 프랑스가 그것도 큰 스코어 차이로 우승했을 것이다. 프랑스 팀의 실력은 그만큼 대단했다. 챗GPT는 세계에 발생한 모든 일들과 존재하는 이론을 기반으로 가장 이론적인 결과를 말했던 것이다. 다만 한가지 챗GPT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메시와 그의 동료들이 원팀을 만들어 이룬 축구세계 속 딴 세상이었던 것이다. 챗GPT에게는 가설이었다.


챗GPT는 현실주의자가 아니고 의미주의자도 아니며 근본주의자는 더더군다나 아니다. 철저한 이론주의자이다.


**현실주의자** 현실주의자를 공리주의자라고 부르고 싶다. 현실주의자는 자신을 실용주의자라고 부르지만 실용주의는 다른 가치 의미로 학문 영역을 차지하고 있어 개인적으로 이를 허락하지 않고 싶다. 물론 쓰는 사람의 자유지만 말이다. “실용”이라는 단어가 주는 현실성을 앞세워 “다수”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일이면 뭐든지 할 기세다. 철저한 공리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정치인은 좌우할 것 없이 모두 공리주의자이다. 그들이 다수를 외면하고 소수를 위해 일하기는 어렵다. 그런듯 보여도 실은 소수를 위해 마음을 두는 다수를 위해 정치할 뿐이다. **의미주의자**는 가진 지식으로 상황에서 발생하는 사건을 해석함으로써 시선이 향하는 관점을 갖는 것에 집중한다. 의미를 어디에서 선택해야 할지 늘 고민한다. **근본주의자**는 개별 사건 보다는 전체를 하나로 묶는 것에 유일하게 관심을 둔다. 이들은 분석보다는 이해해서 하나로 묶여지는 원리 속에서 세상의 길이 있다고 믿는다. **이론주의자**는 오직 사실에 입각한다. 세계 속 지식에 또한 의지한다. 다수의 이익 뿐만 아니라 소수의 불이익도 세계 속 지식으로 이어진다고 믿어 이를 외면하지 않는 점에서 이론주의자는 현실주의자와 다르다. 지식을 중시하는 면에서는 의미주의자와 궤를 같이 하지만 의미를 해석하기보단 사실에 집중하기에 다르다. 이해한 사태, 사건의 원리를 다른 이론으로 연결하려는 노력, 즉, 가설과는 가장 큰 거리를 두기에 근본주의자와는 크게 다르다.


예를들면, 저출산문제 해결에 대해서는 기발한 해결책을 낼 수 있지만 인구가 줄어든 사회의 비전을 챗GPT가 내긴 어렵다. 다수에 의해 움직이는 듯 보이다가도 다수의 횡포에 결코 침묵하지 않으며 의미보다는 실용적인 사실을 기준으로 정의를 판단하는 것이 이론주의자의 특징이기에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인공지능 챗GPT는 이론주의자임이 자명해 보인다. 이런 연유로, 이론주의자 인공지능 챗GPT는 “대중”이란 존재와 닮았다. 사회의 기반이 되는 가장 실용적이고도 늘 정의를 향하는 평균아닌 평균의 존재말이다. 대중과 닮은 챗GPT의 백미는 엄청난 능력으로 미래를 선언하면서도 인류에게 묘한 한 수를 남겨 둔다. 귀납된 모든 이론을 알면서도 연역하는 원리인 가설에는 손대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를들면, 저출산문제 해결에 대해서는 기발한 해결책을 낼 수 있지만 인구가 줄어든 사회의 비전을 챗GPT가 내긴 어렵다. 가설 만큼은 인간에게 그냥 맡기는 절묘한 절제하는 경계까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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