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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단 Mar 21. 2023

"부정"은 무한대 긍정

확신하는 모든 이를 경계하라

강하게 긍정하고 확신하는 사람들로 가득찼다. 긍정은 한 지점에 머물겠다는 결정이며 합리와 합법이란 울타리로 보호되어 고인물의 힘이 생긴다. 그 둘레에는 고인물을 반대하면서 부인하는 자들이 몰려든다. 하지만 아쉽게도 긍정을 반대하고 부인하는 것은 또 다른 긍정일 뿐이다. 세계는 긍정과 또 다른 긍정으로 넘쳐 난다. 긍정 아닌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는 부정은 이제 발 디딜 틈 조차 찾기 힘들게 되어 버렸다.


세상의 진리는 간단하다. 그 진리의 경계인 세계는 간단한듯 보이지만 복잡해 지기 시작한다. 세계는 난해하지만 무언가 보이기는 하지만 세계가 펼쳐진 사회는 복잡하여 이해하기 힘들다. 오직 세계와 세상의 진리로 가름할 수 있을 뿐이다. 사회는 여러 생태로 이루어진다. 생태는 뭇 생명과 무생물의 복잡한 연결이 만들어내는 모습이다. 시선을 바꿔 여러 각도에서 사회를 보면 무수한 생태가 드러난다. 아무리 대단한 학문이라도 생태를 정의 내리지는 못한다. 철학도 수학도 생태를 정의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자인한다. 즉, 생태는 긍정할 수 없다.


어처구니 없지만 언젠가 부터 생태를 정의하고 나선 학문이 생겼다. 과학과 정치다. 이들은 생태의 모습을 분석하고 이해한다 믿는듯 하다. 분석한 생태로 사회를 해석하고, 해석한 결과를 기반으로 세계와 세상을 정의할 기세다. 엄청난 긍정의 힘이다. 과학과 정치가 고인물 둘레로 두른 울타리는 이제 장벽 정도가 아니라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도 보여지길 거부하는 그들만의 이상한 세상이 되어 버렸다.


어떤 학문도 감히 하지 못하는 일을 해내는 과학과 정치는 사실 대단하기는 하다. 칭찬 받아 마땅하다. 다만 긍정이 너무 강해 생긴 부작용이 문제이다.


과학과 정치는 철벽방어를 하고 있다. 과학자는 법칙들로 생태를 해석한 후 사회에 수많은 결과를 만들어 냈다. 사회과학인 정치도 못지 않다. 정치가 이뤄낸 사회 속 성과가 없었다면 지금 세계가 존재했겠는가. 문제는 과학과 정치의 긍정이 “부정”을 허락하지 않는데서 생겨난다. 자신들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다른 긍정에 대해서 비과학적, 불합리로 공격한다. 이런 행위는 꽉 막힌 강한 긍정이라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 긍정이 과한 것이다.


“부정”은 긍정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런 오해를 하니 제대로된 부정을 못하는 것이다. 부정은 무한대 긍정을 하는 것이다. 막무가내로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비과학적이고 불합리하게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과학적이고 이성적으로 가능한 것들을 사회 속에서 생태의 모습으로 제시하는 것이 부정의 실천이다.


부정은 부정에서 그치지 않는다. 긍정해서 결과를 만드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다른 긍정, 또 다른 긍정으로 이어져 무한대 생태를 창조하는 적극적인  행위다. 부정하라 그리고 존재하자.


그리고, 그것이 무엇이든 확신하는 모든 이를 경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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