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기억(9)

공중도시의 언어는 다른 꿈을 꾼다

by 강하단

도시는 기억(9) 공중도시의 언어는 다른 꿈을 꾼다


표준화를 거부하는 경계도시인 공중도시가 현실에서 가능하려면? 같은 인터넷, 동일한 플랫폼이지만 수많은 거의 제한없는 데이터가 쏟아져 나오는 것에 실마리가 있다. 인터넷과 유사한 모습과 성격을 가진 도시에도 연결망과 활동의 플랫폼이 있지만 이상하게 실시간으로 바뀌지 않고 다양한 프로젝트가 있다해도 엇비슷한 활동의 결과로 귀결되기 일쑤다. 인터넷과 도시의 차이에 주목해야 하는데 의미를 전달하는 도구인 기호의 차이를 얘기하고 싶다. 인터넷 세상에서는 누군가에게 어떤 것이 어떤 의미라는 사실을 전달하는 도구, 즉, 기호는 다양하게 선택해서 사용하는 것이 허락된다. 하지만 도시는 다르다. 어떤 것이 누군가에 어떤 의미라는 사실을 전달하려면 사용할 수밖에 없는 기호가 극히 제한적이다. 많은 경우, 딱 한가지의 기호만 허락될 때도 많다. 예를 들면 백화점에서 명품을 사는, 즉, 명품이 나에게 어떤 의미라는 것을 실행에 옮기는 수단으로 오직 “돈”이라는 기호 밖에 없다. 전기를 사용하려면 스위치는 한가지 종류 밖에 없는 것과 같다. 누군가에게 엄청나게 훌륭하고 중요한 대통령 후보가 있을 때 그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은 오직 “투표”라는 기호 밖에는 없다. 대학생으로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했다는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호는 “학점”이고 열심히 연구했다는 대학원생의 의미전달 기호는 “학위”이다. 정제되지 않은 수많은 의미, 장차 큰 의미가 될 잠재적 의미들이 도시 속에서는 흐르고 있고 또한 상상되어지길 기다리고 있지만 이를 전달할 수 있는 도구인 기호가 제약되어 있으면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기회는 원천적으로 사라져 버리고 만다. 가수의 공연 반응으로 모든 관객이 “대박”만 외치고 “엄지척”만 보인다면 처음엔 고마웠었던 가수도 이내 곧 시큰둥해질 것이다. 꼭 필요한 표준화는 도시 속에서 가동시키되 도시활동을 획일화시키는 표준화는 거부하는 역할무대를 만들고 유지하는데는 다양한 “기호”의 존재가 절실해지는 배경이다. 그리고 다양한 “기호”가 가능한 무대를 만드는 것은 다름아닌 예술이라고 본 글은 이해한다. 획일적인 경계선을 잘게 나누어 무수한 역할무대로 옮겨 의미를 연기하는 언어, 즉 기호를 생각해 내는 일은 논리적 지식 보다는 경험에서 쏟아나는 느낌과 그 느낌이 가져다 주는 생각과 지식만이 해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역할무대를 갖는 공중도시는 상품이 넘쳐나는 대신 사물이 여유롭다. 도시는 사물이 여유로운 상황, 즉 여분이 주어질 때 증강현실 무대를 상상하고 다양한 기호를 만들 수 있다. 상품이 아니라 사물일지라도 과도하지 않고 적당한 넘침이 있어야 한다. 넘치는 것은 물건이고 물질이고 사물이다. 물건은 풍요로운 상품, 물질은 환경, 그리고 사물은 도시의 활동까지 아우른다. 사물은 도시인들의 마음으로 들어간다. 마음으로 들어간 사물은 기억이 된다. 기억은 다시 사물이 될 수 있다. 기억도 쌓이고 쌓여 여분이 생길 만큼 충분할 때 기호로 타인에게 이동한다. 기호가 이동될 때 비로소 도시가 완성된다.


충분하게 채우고 남아서 살짝 넘치는, 컵을 넘어 흘러내리는 물과 같은 여분이 사람에게도, 도시에도 있다. 채우는 것은 사물이지 돈이 아니다. 돈은 사물을 채우는 바가지에 불과하다. 넘친 사물이 마음으로 들어가 기억이 되고 기억이 다시 기호로 넘쳐 사람과 활동을 만들고 또 도시를 만든다. 사물이 넘친다고 무조건 여분이 생기진 않는다. 동기와 목적이 여분의 방향으로 향해야 비로소 가능하다. 무엇이 그렇게 움직이게 했으며 그 움직임이 무엇을 제안하는지 살펴야 한다. 잘 살피면 도시 뿐만 아니라 개인의 기질도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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