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렁에서 건진 모범생
자본주의와 모범국민
자본주의는 체계(system)다. 체계 중 하나이다. 체계에는 구조와 작동 코드가 있다. 코드는 체계의 소통의 언어로 작동된다. 예를 하나 들면 경제 체계가 있으면 돈이란 언어로 소통하면서 코드가 작동한다. 코드가 작동하는 특정 구조가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돈이라고 이해하면 작동 도구를 자본주의로 본 것이다. 자본주의는 소득불균형으로 이해하면 결과를 자본주의 전체로 본 것이다. 물론 이런 이해가 틀렸다고 보기 힘들고 그렇게 보는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시대가 바뀌면 자본주의라는 체계도 옷을 갈아 입는다. 때로는 색동 옷으로 갈아 입어 화려해 금방 눈에 띄지만 시대가 하 수상하니 투명 옷으로 갈아입은 자본주의 형태가 나타났다. 해리 포터 영화 속 마법의 옷을 입은듯 하다. 디지털 시대의 기술은 마치 마법 같이 않은가? 기업의 예를 들어 이해해 본다. 화려한 옷을 입은 기업은 “광고하는 기업”이다. 반면 투명해 지는 옷으로 갈아입은 기업은 “통제하는 기업”이다.
광고하는 기업은 사실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다. 다 드러나기 때문이다. 자기 기업의 제품을 사달라고 유혹하는 것을 누구든지 쉽게 눈치챈다. 물론 그런 것을 뻔히 알면서도 속아 주듯 사는거다. 싸고 제대로 작동하면 가성비가 뛰어나다고 사고, 엄청난 자본가 기업이 상품 수를 제한하여 ‘명품’이란 이름으로 내어 놓으면 또 그걸 사는 명품 소비자는 자신의 정체성이라고 믿게 만든다. 어찌 되었건 광고하는 기업은 솔직하다. 샤넬, 삼성, 루이 비통, 현대, 벤츠, LG, 포르쉐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지금껏 자본주의를 이끌어 온 셈인데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서 광고하는 기업은 자본주의 맹주 자리를 다른 기업으로 넘겨 주게 되었다. 통제하는 기업이 그것이다. 이들은 광고하지 않는다. 구글이 광고하는거 봤는가? 우리는 구글도 분명 광고할 것이라고 믿지만 실상을 알고 보면 광고하는 기업으로 믿게 만드는 것일 뿐이다. 클래식한 자본주의가 디지털 논리를 만나 임계점에 도달하는 초월의 단계, 즉, 폭발의 순간을 맞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들은 소비를 명령하는듯 하다. 물론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하겠다면 제대로 알고 보면, 즉, 자본주의란 체계를 살피고 느껴보면 “통제하는 기업”은 말 그대로 소비를 통제하고 명령하는 것이 분명하다. 또 그걸 우리는 자발적으로 따른다.
통제 자본주의에 대항하기 위해서 복지형 사회주의와 민주주의를 활용해야 한다고 당신은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영화 <테이큰>의 그 유명한 “굿 럭”이라는 대사를 가져와야 할듯 하다. 통제 자본주의에 대응해 아무리 잘 싸워도 진화된 자본주의의 성과물인 수익을 정부의 힘으로 가져와 나누는 것에 불과한데 그것이 제대로 대항하는 것인가? 그리고 어떤 식으로라도 벌어들인 자본활동의 성과를 정의롭게 나누기만 하는 사회적 정의는 실현될 수 있는가?
자본주의를 싫어하더라도 제대로 느끼고 살핀 후 비판해야 한다. 물론 이런 태도가 한가지 다행인 것이 있긴 하다. 자본주의에 탐닉하는 사람은 느끼고 살필 기회도 허락받지 못한 구렁이 속에 빠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그런 것은 아니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일단 디지털 시대 자본주의의 체계 속 작동 원리와 코드를 살피는 것으로 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차차 풀어보자.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책 <약자의 결단>에서는 모범국민 대신 체계 속 다른 언어와 기호를 사용하는 디지털 대중을 제안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