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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단 Jan 16. 2024

진보, 어떤 진보?

진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당신의 답은 무엇인가?

진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어떻게 답하겠는가?


우리는 대개 현재 정치계에서 사용하는 보수의 대비되는 개념으로 우선 생각하기 쉽다. 정치에서의 보수는 가치를 지키려는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에 재산이든 돈이든 대상도 뚜렷하고 목표가 명확하다, 그런데 진보는 그럼 보수를 반대하는 것으로 정체성을 갖는 것인가 싶다. 즉, 앞으로 진보하기 위해서는 보수가 지키고자 하는 그릇된 아성을 부수고 나가야 하는 것인듯 하여 하는 말이다. 정치이니 어쩔 수 없이 그런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하더라도, 설사 그런 논리를 백번 양보해서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어디로 갈지는 정하고 반대하고 무너뜨릴 대상을 잡아야 하는 것 아닌가


비판하고 반대하는 것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세우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마치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으로 인해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가 무너지는듯 분노하지만 정작 추구하는 가치를 물으면 답하지 못한다. 상대방의 논리는 옳지 않다고 논리적으로 분석하면서 설명하지만 정작 자신이 옳다고 믿는 논리는 무엇인가 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난 너가 싫어 고로 나는 존재해” 하는 듯 하다. 이런 부류의 사람에게 진보란 싫어하는 사람을 끌어 내리고 단 한걸음이라도 가지 못하게 막는 것인듯 보인다. 분노하는 반대가 진보일 수는 결코 없다.


목표지향적 성과를 내는 것이 진보라고 믿는 사람도 있다. 내가 있는 학교의 총장은 대학 순위에서 10위 권으로 진입하는 것이 그의 진보인듯 보인다. 거의 모든 일의 지향점은 대학 순위향상과 이를 위한 예산 확보인것 처럼 보인다. 꼭 대학 총장만 그렇겠는가. 기후위기의 최첨병에서 재앙에 빠진 지구를 구하는 영웅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국제기구 UN에게 진보란 탄소감축 목표값을 2030년에 달성하는 것일 것이다. 현재 성적이 20등 쯤 하는 학생에게 10등 이내로 순위를 올리는 것이 그의 진보일 수도 있겠다. 오해는 말아 주었으면 좋겠다. 경쟁 순위, 목표 달성dl 진보가 아니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진보를 믿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이제 다른 사람들 생각말고 정작 나의 진보를 말해 보고자 한다. 나에게 진보란 ‘자연’에 한걸음 더 다가가는 것이다. 예전에는 자연을 “어머니 지구.Mother Earth”로 이해한 적이 있었다. 한없이 자애롭고 모든 것은 사랑으로 주며 잘못하면 애정으로 혼내주는 존재인 지구를 자연으로 이해했었다. 여전히 그런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에 국한되어서는 곤란하다. 아무리 어머니가 큰 존재이기는 하지만 어머니는 엄밀히 말하면 내 자신은 아니다.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어머니라고 말하는 순간 두개의 분리된 존재가 생겨 버린다. 자연은 나의 존재와 분리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와 분리되지 않은, 분리될 수 없는 존재로서 자연을 이해하는 것은 탐험의 길이기도 하다. 오리무중이다.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자연이 분명 그러하다고 믿는다. 자연은 정복해야 할 대상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한없이 자애로운 성자도 아니다. 즉 나 밖의 어떤 존재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게 어렵지만 분명한 진리가 있다면 그곳으로 한 걸음씩 다가가는 노력을 진보라고 하는 것은 꽤 괜찮은 정의 아닌가 한다.


자연을 투쟁의 역사로 보지 않으며 자애한 어머니 존재로도 보지 않으면서 자신과 분리되지 않은 순간 순간 완전한 존재로 이해하기 위한 모든 노력이 진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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