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 성향인가 또는 사회 현상인가
명품 심리 현상
명품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정체성의 표현이지만 우월주의에 기반하기도 한다. 하지만 명품족을 비판하는 사람도 우월주의라면 이는 이제 개인의 차원을 넘어 사회적 문제를 드러내는 현상이 되어 버린다.
명품을 좋아하면서 구입하는 사람에게 이유를 물으면 개인적인 짐작으로는 “그냥 좋아서”, “뭐 그게 잘못됐나요? 다른 사람에게 해를 가한 것 아니잖아요”라는 쿨한 답을 할듯 하다. 맞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 자신의 돈으로 구입하는데 탓하기 어렵다. 경제가 어렵고 생활고로 힘든 사람을 배려한다면 명품은 좀 그렇지 않나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지금 사회는 그런 배려를 불편해 하기도 하므로 명품 유행을 탓하기 어렵고 꼭 그렇게 해야할 특별한 이유를 찾기도 힘들다. 오히려 명품족을 단순하게 돈 자랑하는 한심한 사람 취급하는 사람도 우월감 드러내는 것 같아 보인다. 돈과 명품과는 차원이 다른 우월감을 가진 것 자랑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기도 한다. 내 자신을 포함해서.
명품 비판이 자칫 자신의 우월감의 표출은 아닌지 살펴야 한다
극단적인 개인주의가 현대 사회의 특징이 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발견된다. 개인주의가 지배적인데 명품을 통해 자기를 그렇게 드러내려는 것은 또 무슨 심리인가? 이런 시각 자체가 개인주의의 과거 모습이다. 명품을 둘러 시선을 끌고자 하는 것이 기존 개인주의라면 지금은 명품을 든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오히려 해방될 수 있다는 생각까지 하는듯 보인다. 복합적이고 복잡한 심리 작용을 모두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지금 명품 소지는 과거와는 분명 다른 측면이 존재한다.
일상 필수품이 풍족하게 충족되는 외딴 섬에 고립된 개인이 명품을 들고 생활을 하는 것도 예전 같았으면 정신병자 같겠지만 지금 사회에서는 뭐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어진다. 외딴 섬 고립된 개인은 자신이 가진 모든 소유는 자신 만의 것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져 유산으로 물려줄 자식없는 현대인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를 조금 확대하면 다음 세대가 없는 저출생 사회가 된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종지부를 찍는 것은 지금 사회의 이데올로기, 경제적 합리, 그리고 철학과 윤리가 더 이상 새로워 질 것이 없어 미래도 없다는 믿음이다.
자신의 소유가 이어질 후손이 없고 미래 사회의 새로운 가치와 질서 같은 것은 없다
내가 끝이고 내가 가진 것은 물려줄 사람없는 오롯이 내 것이며 사회의 가치도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다고 믿게 되었다. 남의 눈에 띄는 것, 남의 인정을 받고 싶은 것 보다는 내가 나를 인정하면 그만인 사회가 되었다. 미래 사회가 있다는 믿음은 내가 사라진 다음에도 새로운 가치와 질서가 계속해서 생겨날 것이라 믿음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지금 세상은 그렇게 믿지 않는다. 그러니 현대인은 명품을 꼭 남의 눈에 띠는 정체성의 상징으로 갖지 않는다. 그냥 갖고 싶어 갖고 내 자신에 해주는 선물인 셈이다.
즉 명품 심리는 개인적 허영심이 더 이상 아니며 사회 현상이다. 그렇지만 사회의 모습은 아니다. 모습은 가치관에 기반하지만 현상은 자연의 흐름이기 때문이다. 명품을 갖고 싶은 마음은 사회적 합리가 이끄는 흐름에 그냥 올라 탄 현상에 불과한 것이다.
문제는 명품 현상이 아니라 사회가 새로운 가치와 질서를 생성시킬 것이라는 믿음을 잃었다는 것에 있다. 과학자는 연구성과가 가져다 주는 이익에, 작가는 글의 상품가치에, 예술가는 작품의 판매에 집중하는 현상에 올라 탔다. 새로운 과학원리와 미적 가치에 가슴 설레는 과학자와 예술가의 모습은 결단코 아니다. 그런 과학자와 예술가가 산업화가 가능한 명품 논문에만, 명품백 같은 고가 작품에만 그렇게 목을 매겠는가. 하지만 이 또한 개인의 무능과 무지가 아니다. 그냥 사회적 현상일 뿐이다. 문제는 사회가 미래 가치와 질서에 대한 믿음을 잃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다른 각도로 세상을 보려 해도 동일한 모습만 보인다면 그런 작가와 예술가는 이제 수명이 다한 것이나 진배없다. 무언가 꽉 막혔다고 생각될 때 창의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관점을 달리하면서 시각을 바꾸지 않겠는가. 그럼 새로운 가치와 아름다움이 떠 보이게 된다. 그런데 아무리 시각을 바꾸어도 보이지 않으면 관점을 고정시켜 버린 것은 아닌지 자신을 둘려 보아야 한다. 굳어진 관점을 가진 작가와 예술가는 이제 지킬 것 밖에 없으니 외부를 향해 분노를 쏟아 붓는다. 개인이라면 어떻게 해볼 도리가 있지만 사회라면 큰 일이다. 사회가 무력감에 빠져 오직 지금의 자기 모습 지키기에 급급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명품으로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