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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단 Jan 20. 2024

자본주의, 공리주의자 또는 야바위꾼 위선자

공리주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공리주의 자본주의자 또는 야바위꾼 위선자


공리주의자는 말한다. 99명이 행복하기 위해 1명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99명이 잘 되어 행복해 진 후에 1명을 다시 챙기겠다는 약속을 포함한다. 공리주의의 절대적인 전제 조건이다. 전쟁터에서 총상을 입어 함께 후퇴할 수 없는 전우를 오지에 두고 올 수 밖에 없을 때 전열을 가다듬어 다시 돌아가 구하겠다는 약속을 굳게 한 것이다. 99명이란 절대 다수의 행복을 위해 1명 쯤은 영원히 배제시켜도 좋다고 공리주의가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말했을 리가 없다. 인간 세상에 그런 철학 진리가 어디 있는가? 절대다수는 있을 수 있지만 절대소수란 없는 개념이다.


그럴리도 없겠지만 제레미 벤덤이 돌아와 자신의 공리주의는 그런 것이라 말한다면 난 그에게 분명하게 말할 것이다. 당신이 어떤 공리주의를 말했던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 지금 중요한 것은 내가 이해하고 믿는 공리주의일 뿐이다. 공리주의를 당신이 말하긴 했지만 이미 당신의 손을 떠났다고. 철학의 신념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관점이 중요하다, 아니 그것 뿐이라고 믿는다.


자본주의 시대 사회적 빈곤층은 자신을 대신해 소속된 사회를 위해 열심히 이익을 추구하라는 암묵적인 동의와 사회적 배려를 해준 고마운 구성원이다. 그러니 자산과 자본 부유층은 다시 돌아가 함께 살아갈 궁리를 해야 한다. 그것이 자본주의가 지금의 모습이나마 갖게 된 공리주의 철학이다. 만약 돌아갈 필요 없다고, 경쟁에서 자신이 승리했고 정당하고도 정의로운 성과를 가졌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기업, 또는 집단이 있다면 그는 자본주의 신봉자도 아니고 공리주의는 더더욱 아니며 그냥 약속을 어긴, 또는 거짓 약속을 한 야바위꾼 위선자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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