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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단 Jan 22. 2024

정치인도 가성비를 따져서 뽑자?

민주주의 정치

정치인의 가성비?


“아! 걔, 한 물 갔잖아”, “이제 그만 해먹지” 이렇게 정치인을 얘기하곤 한다. 물론 모두가 그렇게 말하지는 않지만 꽤 많이들 그런다. 이런 말의 배경에는 자본주의 몇몇 기둥 중 꽤 큰 몫을 담당하는 가성비라는 개념이 암암리에 들어가 있다. 이제 그 정치인은 쓰임이 다했다, 즉, 같은 값이라면 다른 정치인이 훨씬 더 일 잘해, 신선해 라는 생각이 들어가 있다. 이런 얘기를 한참 듣고 하다 보면 문뜩 드는 생각이 있다. “내 자신의 가성비는 괜찮은 것일까?”


“난 정치 안 하잖아, 하고 싶지도 않고. 그러니 정치인을 비판할 수 있지. 그게 민주주의 아냐?”


아니다. 가성비 마음으로 정치인을 비판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최소한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어떤 정치학자, 정치가의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곰곰이 스스로 생각한 민주주의는 우리 모두가 정치인이 되는 그런 사회를 말함이다. 정치는 서로가 서로를 설득하는 일인진대 거기에 정치인이 따로 있을 수 없다는 믿음이 민주주의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정치인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소중한 우리 자신이라고 증명될 수 있다. 개념의 출발을 정치의 선함에 두면 정치에 대한 논리가 그렇게 유도되어 진다는 뜻이다.


그럼 협잡꾼, 독재 이런 사람들도 모두 소중하단 말인가?


아니다. 협잡꾼, 독재세력이 소중하다고 하지 않았다. 당연히 그렇지 않다. 그런 자들은 정치인도 아니라는 말을 꼭 덧붙여야 한다. 정치인은 타인을 설득하고 가치에 대해 스스로와 대화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다. 정치 개념의 정의에 충실하면 독재자가 어떻게 정치인이 될 수 있겠는가?


한 사람 한 사람으로서의 정치인이 모두 소중한 것은 그들 뿐만 아니라 “우리” 시민은 사실 모두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함께 한다는 믿음에 대한 희망은 끊어내 버리지 말자. “나도 내가 마음에 들지 않고 만족한 적은 정말 손꼽을 정도이니” 우리 모두도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용기내어 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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