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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단 Jan 24. 2024

먼 거리, 멀고도 가까운 거리

거리감을 느끼다 그리고 깨닫다

먼 거리, 멀고도 가까운 거리


뉴욕까지의 비행시간이 14시간 이상 걸린다면 먼 거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10년 이상 산 이웃과 이야기 나누는 시간까지는 얼마나 더 가야 가능한가? 20년만에 팔짱 낀 어머니와의 거리는 또 얼마나 먼가. 무지개 스펙트럼에서 파랑색 바로 옆이 녹색이지만 녹색을 완전히 이해한 후에야 파랑으로 건너갈 수 있다면 녹색과 파랑의 거리는 하늘만큼 땅만큼, 저 멀리 우주끝까지의 거리보다 멀다. 가까운 것을 알고 가까이 지내긴 그만큼 어렵다.


멀리 가지 못해 오히려 소중함을 지킬 수 있는 것이 있다. 하지만 한없이 멀리가야만 발견할 수 있는 깊은 의미도 있다.


우스개 소리로 가장 멀게 떨어진 거리는 왼손과 왼손 팔꿈치라는 말이 있다. 한번도 서로 맞닿은 적이 없으니 얼마나 먼 거리인가. 그런데 오른손은 왼손 발꿈치와 쉽게 만난다. 물리적으로 함께 있다고 가까운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꼭 아닌 것이 세상에는 꽤 있다. 자신의 뒷 모습을 직접 볼 수는 없지만 타인의 쓸쓸하고 아픈 뒷모습은 마음 먹으면 얼마든지 볼 수 있다.


미워하며 가까워 지기도 한다. 미워하는 듯 보였지만 실은 가까워지려 노력한 것이었다. 친하게 지내며 한없이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멀게 느껴지는 것은 역설로 먼게 아니란 증명이기도 하다. 멀게 느끼는 순간 가까움이란 존재를 불연듯 깨달았기 때문이다. 관심이란 단어에 거리가 있어 좁히고 싶다는 뜻이 숨겨져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미움이 분노가 되었을 때 거리를 어떻게라도 느껴야 한다. 두 생명간 거리 말이다. 분노가 타인생명의 거부 더 나아가 생명 지움의 야만으로 이어져 버리면 큰 일이다. 생명의 거미줄이 끊어진 것이기에. 끊어지면 거리란 개념 자체가 사라진다. 영원한 끝이다.


타인의 모습이 보기 싫어 힘들 때, 그 모습이 미울 때 우린 그의 뒷모습을 보아야 한다. 그가 가진 엄청난 거리는 나에게는 의외로 가까운 거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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