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따진다면, 하지만 중요한 대지 윤리 철학
대지의 윤리(Land Ethics)와 함께 하지 못하는 유기농 친환경 농사와 소비
여기 한 농부가 있어 법 잘 지키고 꼬박꼬박 투표하고 마을 공동체 활동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면서 역할을 충실히 한다. 모범 농민이고 모범 국민이다. 땅에 거름도 하지만 꼭 필요한 최소한의 화학 비료를 쓰고, 병충해가 생기면 마을 사람들과 함께 역시 최소한의 농약을 조심스럽게 이용한다. 의심의 여지 없이 훌륭한 농부이면서 농촌 마을공동체 일원이다. 하지만 이 농부를 일반적으로 대지의 윤리를 지켰다고 보지 않는다. 그가 자신을 마을 공동체 일원으로 생각하고 다른 공동체 구성원과 함께 공동체를 아끼고 사랑하지만 그가 농사 짓는 땅을 그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단정지어 버리기에는 석연찮은 부분이 있다. 살면서 병이 나면 자신의 몸에 항생제와 같은 약 복용하고 주사하지 않는가? 병을 치료하기 위해 아픔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약을 먹었다고 해서 몸이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이 되어 버리지는 않기 때문이다. 앞의 농약을 어쩔 수 없이 사용한 농부로 돌아가 보면, 아프고 병든 몸에 화학 조제약을 쓰듯 땅과 흙에도 약을 썼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요는 대지와 몸을 농업 공동체 속에서 자신과 같은 위치에 두고 생각했는지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순히 농약과 화학 조제약에 노출시켰는지 아닌지가 그 기준이 아니다. 대지 윤리를 주장한 알도 레오폴드도 단순히 땅과 흙에 농약을 뿌리면 대지 윤리를 거역한 것이라고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농부가 땅과 흙을 생태 공동체의 일원으로 보는냐에 달렸다. 땅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했을 때의 농약 뿌림은 그렇기 않았을 때와 비교해서 분명 다를 것이다.
조금 다른 예를 들어보자. 이번에는 친환경 유기농 관련법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농사를 지어 유기농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부가 있다. 이 농부는 화학 농약을 절대 사용하지 않고 퇴비도 동물 분료 퇴비, 그것도 유기농 토양검사에서 문제가 되지 않을 그런 제품만을 엄선해서 사용한다. 그럼 이 농부는 대지윤리를 지키는 사람인가? 결과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한가지 꼭 짚고 넘어가야할 것이 있다. 농부가 땅과 흙을 자신이 속해 있다고 믿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있냐는 것이다. 친환경 유기농 농산물을 판매하기 위해 실천한 것인지 자신과 같은 공동체 일원으로서 땅과 흙을 받아들여 그렇게 한 것인지 물어야 한다. 친환경 유기농 농사 농부도 얼마든지 대지 윤리와 무관할 수 있다. 그냥 장사 잘 되는 농업 비즈니스를 한 것 뿐이다.
농산물 소비자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건강을 위해 유기농 농산물을 구입하는 소비자도 있고 가상의 농업 공동체를 그린 후 농부 뿐만 아니라 땅과 흙을 모두 자신의 대지 윤리 공동체로 초대했기에 유기농 농산물을 구입하는 소비자도 있다. 동일한 소비 행위로 귀결되지만 전자의 유기농 소비자를 대지 윤리 공동체로 초대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