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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단 Jul 29. 2024

입시제도가 최소한 20개 정도는 되어야 한다!

지금의 교육 진보는 진보라고 하기에는 어림없다

입시제도가 20개 정도는 되어야 한다


시험이란 도구로 지식을 전달하는 경쟁방식 학교 교육을 극복하는 길은 없는 것일까? 일부 교육 혁신이란 눈 가리고 아웅식 개혁도 백약이 무효라는 것을 오랫동안 겪어 왔다. 앞의 교육자와 생물학자의 대화로 돌아가 보자. 교육자의 소신으로 생물학자의 한계를 극복하지 않으면 된다. 즉, 학생이 물려 받은 유산을 인정하지만 이를 최대한 보완할 수 있는 길을 찾는 식으로 공정 교육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설사 물려 받은 유산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될 정도의 교육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교육의 변화를 정답찾기 시험을 장착한 경쟁식 교육과정을 그대로 둔채 길을 찾는데 문제의 뿌리가 있다.


2024년 총선 때 잠시 참여한 한 연합 정당 정책 개발 위원회에서 진보학자로 꽤 알려진 분이 대학 개혁을 위해서는 대학졸업시험을 두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는 것을 듣고는 한국 교육이 갖는 문제 발생의 근본이 어디에 있는지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학생들을 성적으로 줄 세우는 방법을 다른 줄 세우기로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그들이 얘기하고 규정하는 최고의 대학, 최고의 직장, 최고의 경력이란 길을 걸어온 진보 인사의 진보란 겨우 그런 것이었다.


입장권 사기 위해 긴 줄 서고 슈퍼마켓에서도 때로 계산 줄이 길어지기도 한다. 그때 운이 좋으면 표를 판매하는, 계산을 해주는 다른 줄이 갑자기 생겨 순식간에 표 사고 계산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교육에서 가장 중히 다루는 입시의 줄을 하나에서 만약 2개 또는 3개로 늘려보자. 서야하는 줄의 선택이 늘어난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줄도 줄 나름이다. 특별전형이란 줄은 특목고 학생들의 전유물 처럼 되어 버렸다면 일반고 출신 학생들이 갈 수 있는 줄은 여전히 하나에 불과하다. 그런데 줄이 한 10개-20개 정도로 늘어났다고 해보자. 먼저 혼란스럽고 입시제도를 왜 이렇게 혼돈 속으로 몰아 넣냐 하면서 학생과 학부모는 항의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런 학생과 학부모는 하나의 줄을 섰을 때 유리한 대상일 가능성이 높다. 입시제도가 한개에서 2개, 3개 그리고 10개 또는 20개로 늘어 났다는 것은 교육의 목적이 여러 개로 증가해 각각의 방식을 선택해 대학에 가더라도 그 나름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지표가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입시 제도가 수능 줄 세우기 딱 하나라면 수학능력시험 점수를 높게 받은 학생이 대학을 거쳐 사회로 진출해 사회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입시제도가 2개, 3개로 늘어나면 그것이 역시 사회로 나가 긍정적으로 기여할 가능성이 있는 길이라는 것을 사회가 인정한 것이다.


입시제도가 이번에는 10개, 20개가 될 수만 있다면, 학생들이 사회로 나가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평가하는 지표가 우리 사회는 하나, 둘, 셋 대신 10개, 20개를 갖고 있다는 것이고 이는 어떤 다른 국가의 다른 사회와는 비견할 수 없는 우리 사회 만의 능력이 생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10개, 20개 이상의 입시제도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럴 능력이 없으면 여태껏 잘해 왔듯이 해오던 일 잘하고 개혁이란 이름을 오염시키지 말았으면 한다. 즉, 이런 시도에 장애가 되지 않는 것이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상의 개혁임을 명심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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