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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단 Aug 01. 2024

돈은 물질인가, 대상인가? 물은 물인가 물이 아닌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돈은 물질인가 또는 대상인가?


사회적 기여는 자신을 객관적 자아로 탈바꿈해야 비로소 가능하다. 물이 생수가 되면 딱 그 만큼 사회적 역할을 할 수 있다. 삼다수, 백산수, 에비앙, 즉, 물에 자아가 하나 생겨 사회적 역할이 가능하다. 사람도 노동자, 자본가, 상인, 기업 채용자와 같이 자신의 본질적 존재에서 떨어져 나와 자아가 되었을 때 사회적 기여가 가능하다. 사회적 기여 뿐만 아니라 자아로서 개발, 성장될 수 있다고 믿게 된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라고 하신 성철스님의 말씀이 조금이나마 이해되는듯 하다


대상이 되지 않고도 바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이 딱 하나 있기는 한데 돈을 통해서다. 이 말을 다르게 표현하면, 객관적 대상으로 자신을 변환시키지 못하면 외계인으로 전락해 버린다는 거다. 돈 밖에 없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돈으로 소통하는 세계가 있다. 그래서 맑스는 덧붙인다. 외계인 존재가 되면 돈이라는 거대권력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고. 돈이란 거대한 힘에 저항하려면 자신을 보편적이고 객관적 대상인 노동자, 자본가, 상인, 특정 기업채용자 등 사회 속 특정 롤모델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롤모델을 만들어도 돈의 위력은 대단해서 그 힘에 눌리기 십상인데 그러지 못하면 훨씬 견디기 힘들어진다.


노동자가 된다 하더라도 임금을 돈으로 받는 것이니 결국 같은 상황이 아닌가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맑스의 생각은 달랐다. 노동자 등으로 자신을 대상화 하지 않으면 돈은 여지 없지 개인을 자신의 분신으로 만들어 버린다고 믿었다. 어찌보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려운 현실이다. 대상화하더라도 돈이 가진 힘을 벗어나기 힘들지만 그나마 저항은 가능해 진다. 대상으로서의 역할이 없으면 돈에 저항할 길마저 막혀 버린다고 맑스는 믿은 것이다. 이는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물은 객관화된 대상을 거쳐 생수 또는 수돗물이 되든지 아니면 존재 자체가 사라져 버린다. 사랑을 주려면 마음에 사랑이 생겨야 할 것 아닌가. 돈이 담당하면 곤란하지 않겠는가. 음악을 즐기려면 그곳에 음악이 있어야 한다. 돈이 음악으로 변장하면 음악이 아닌 돈이 인간을 즐겁게 한다. 음악이 영혼을 맑게 한다면 돈을 써서 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돈의 아이러니다. 자신을 가꾸고 수양하는 개인의 존재는 온데간데 없고 오로지 돈이 정한 지배의 구조 속에 롤 모델을 만든 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자신을 어느듯 발견하게 된다.


우린 교육에서도 이와 비슷한 문구를 읽은 적이 있었다. 학생이 학점때문에 공부하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지만 학점이 없으면 그 누구도 열심히 공부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문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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