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을 사다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두번째로 싼 와인
돈의 위력이 얼마나 강했으면 자신의 캐릭터와 정체성도 구입할 수 있는 무엇으로 보기 시작했겠는가. 개성은 삶 속 행위를 통해서 형성되고 또 결정되는 것이라고 믿었던 사람들도 구입가능한 무엇이 아닐까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를 합리적 의심이라고 생각한데는 나름의 근거가 있는데 개성을 형성하는 행위가 대부분 소비로 이루어 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소비를 제외하면 개성을 드러낼 행위가 따로 있기는 한지 궁금해진다. 돈으로 사람들이 경쟁하는지 혹은 돈들이 인간 없이 경쟁하고 있는지 혼란스럽기 까지 하다. 한치의 오차와 틀림없이 세상을 연결하고 있었던 생태의 유기체 관계는 이제 돈없이 설명하기 힘든 감각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오감 너머 정신 감각, 깨달음 감각이 자연을 극복하는 자유 속에서 확인되어 왔었다면 이제 그 자리를 돈이 하나씩 궤차게 되었다. 사람은 돈 감각만 있으면 전지전능해지기 때문이다.
친목 파티에 수백만원 짜리 와인이 제공되면 와인은 친목을 강화하는 목적을 이루는 도구가 된다. 하지만 친목 파티가 아니라면 고가의 와인은 도구가 아닌 하나의 대상이 되어 버린다. 친목이라는 목적이 사라지니 최고급 와인을 마실 수 있는 자격이 무엇인지 파티에 참석한 사람은 따지게 된다. 뚜렷한 목적이 사라질 때 최고급 와인을 마실 자격은 돈으로 치환되어 돈이 파티에 있어야 하는 존재들의 목적이 되어준 셈이다. 목적의 부재를 돈이 메꿔주는 사회의 대표적인 모습이다. 모인 사람들의 연대 목적은 따로 없고 연대하는 공간을 통과하는 자격만 남게 된다. 그것은 돈이 정한다. 돈에게 명성을 허락했던 사회는 이제 명예까지 내어주고 있다. 셀럽급 인사들의 면면을 모두 알아 사람들이 좋아하고 심지어 존경한다고 당신은 생각하는가? 이런 사회 구성원의 마음을 이해하기 힘든데 단서 하나가 있기는 하다.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사람들은 가장 싼 와인을 주문하지 않는다고 한다. 최소한 두번째 싼 와인을 주문하는 것으로 자존심을 지킨다고 한다. 자신의 개성을 사회로 환원시키지 못하는 소비자는 그 또한 돈을 통해 이루려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