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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단 Oct 25. 2022

영화 “캐릭터”: ‘캐릭터’ 존재는 ‘나’인가?

캐릭터에 취한 자들에게 일갈하다

캐릭터는 존재했던 존재 중 하나다. 캐릭터로 존재하지 못하는 존재는 눈에 띄지 못하고 주위 사람들 기억에 남지도 않는다. 우리는 캐릭터를 갖기 위해 살지만 캐릭터로 사는 순간 존재는 사라진다. 캐릭터로 살지 또는 존재를 지킬지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상갓집에서 만난 대학동창들은 날 별나게 기억한다. 당시 군사훈련 교련이란 과목이 있었는데 어느 누구도 교련과목을 공부하고 외워서 시험을 보지는 않았다고 한다. 교련과목 마저도 컨닝 페이퍼 없이 열심히 공부해 시험을 본 내가 신기 했나 보다. 즉, 뭔가 굳이 지킬 필요없는 규칙도 지키는 고리타분한 융통성 없는 친구로 기억하는 것이다. 교련도 공부하는 모범생 캐릭터, 그게 친구들의 뇌리에 남아 있는 우스꽝스런 모습이었다.


사회에는 모범생 캐릭터가 어느 조직에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모범생은 언제든 필요하면 불러 가져다 쓰면 되는 존재쯤으로 안다. 겉으로야 법없이도 살 수 있다고 칭찬하는 척 하지만 자신들이 진정 하고 싶은 일, 기쁨을 나누고 싶은 순간이 오면 모범생을 찾지는 않는다. 우선 재미없고 무엇보다 관심을 두고 싶지 않으며 소중한 순간을 나누고 싶은 캐릭터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범생 캐릭터를 가진 사람은 외롭고 사회 여러 분야에서 성공하지도 못한다.


모범생 캐릭터와 다른듯 비슷한 캐릭터가 있다. 존재감없는 캐릭터다. 어린 시절부터 공부, 운동, 미술 또는 음악 모든 과목을 조금씩은 하지만 어떤 한 분야에서 특출나지 못하고 사귀는 친구도 없어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캐릭터다. 동창회를 잘 나오지도 않지만 친구들과 앨범을 보며 회상해 봐도 그런 친구가 있었나 잘 기억나질 않는 캐릭터다.


모범생 캐릭터와 존재감없는 캐릭터는 둘러보면 주위에 많다. 사람들은 인정해 주지도 않으면서 늘 그곳에 있어야 하는 의무를 지우기 까지 한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 찌질한 캐릭터로만 기억하거나 또는 아예 기억하지 못한다. 사회의 모든 성공한 사람들이 인정받고 부각되도록 밑바닥 평균을 깔아주기 위해서만 모범생, 존재감없는 캐릭터는 필요하다고 여긴다. 두 캐릭터가 동병상련을 느끼는 지점이다.


찌질 캐릭터는 세상 모든 잘난 존재에게 생의 마지막 순간 말한다. “당신은 날 무시하고 기억하지도 못하며 때론 나에게 아픔을 준 캐릭터였습니다. 그래서 고맙습니다. 난 당신이라는 캐릭터 때문에 나의 존재를 늘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캐릭터였을 뿐 존재를 잃었다는 것을 난 압니다. 그래서 당신이 가엽습니다”


영화 ‘캐릭터’ (2022년, 니가이 아키라 감독)에서 연쇄살인범 모로즈미에게 판사는 이름, 생년월일, 주소, 소속 등을 묻는다. 대답하지 않고 묵묵히 서 있던 모로즈미는 반대로 판사에게 묻는다. “나는 누구입니까?” 그렇게 찌질한 캐릭터는 세상의 모든 잘난 존재에게 “당신이 누구인지 압니까?”라고 묻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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