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하단 Oct 30. 2022

영화 ‘리멤버’: “기억의 힘을 믿습니다”

60년 기억을 통해 영화 ‘26년’, 광주에 대답하다

기억이 만약 문자로 남는다면 역사 속 악인은 어떻게든 빠져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기억은 문자가 아니라 이미지로 남는다. 이미지는 그 누구도 조작할 수 없는 정의의 코드다. 악인과 희생자 모두 예외가 없다. 이미지로 남은 기억은 끝끝내 악인을 벌한다. 이를 믿고 우리는 아픔이 절망이 되지 않도록 희생자의 기억과 함께 해야 한다.


악인은 자신들 기억을 지우려 노력해도 불가능하다. 기억의 힘이다. 악인들은 예외없이 잘 먹고 잘 사는듯 보이지만 우린 안다. 그들이 얼마나 추한 모습으로 썩어가는지를. 죄와 벌의 모습이다. 오죽 힘들면 악인 중 자수해 법으로 씻어 보려는 자도 있고 참회해 용서를 받으려고 하겠는가. 일제 친일파의 종말은 확인하기 힘들었지만 광주의 학살자를 어떻게 벌했는지 마지막 순간 그의 얼굴을 통해 우린 확인했다. 기억의 힘이라 믿는다. 친일파의 종말도 그러했을 것이다. 역사의 기억은 악인 속에 이미지로 남아 학살자의 뇌를 한시도 쉬지 않고 응징했을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승자 또는 패자가 아닌 진실이 쓴 역사이다.


악인도 물론 기억에 저항한다. 자기와의 타협을 시도하면서, 그 시대 모두 그렇게 살았다고, 가치 보다는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개인보다는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논리를 편다. 당신도 방관자이지 않았냐고 역공을 취하기도 한다.


악인의 항변대로 일제 침략기, 한국전쟁 시대에는 가치보다는 생존을 위해 살아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후는 다시 가치로 돌아와야 할 시간이었다. 머리 속에서 끊임없이 전쟁만 하고 있는 악인들은 기억을 삶의 시간으로 끌고와 그럴듯 한 논리로 기억에서 빠져 나오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니 여전히 전쟁용어가 그들 입에서 떠나질 않는다. 공산당, 빨갱이, 종북, 국가수호 전쟁 등등. 그들처럼 해서는 일제 침략의 시간과 전쟁 포화 속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그들이 강조하는 생존 논리는 벌 받지 않은 죄를 기억 속에서 지우려는 생존 몸부림일 뿐이다. 어찌 그들과 함께 하겠는가. 잊지만 않고 두면 악인은 그렇게 썩어 뭉그러 질 것이다. 대신 희생자의 기억과는 더 적극적으로 함께 해야 한다. 충분한 애도란 없다. 기억이란 말이 없어질 때까지 계속 되어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한 걸음이라도 내디딜 수 있다. 악인을 용서하라는 것이 아니라 응징은 기억에게 맡기고 희생자의 기억을 함께 하는 것이 가치의 시대라는 말이다.


악인을 섣불리 응징하면 그들을 기억으로부터 해방시켜 주는 과오를 범하게 된다. 국가와 법이 범하는 흔한 과오이다. 기억이 벌하는 가치의 시대는 국가와 법이 아닌 오직 대중만이 지켜 올바로 세울 수 있는 이유이다.


아픔의 기억을 가진 단 한 사람이라도 남겨지면 가치의 시대라고 할 수 없다. 생존자, 이미 타계한 분들 모두를 포함한다. 위안부 할머니, 제주와 광주 영혼의 기억을 함께 할 때 시대의 가치는 지켜진다. 누군가 지우려 덫 칠 하기도 하지만 대중 삶 속에서 어김없이 발견된다. 발견되면 아주 충분히 애도해야 한다. 이를 법으로 해결하려는 국가에 맡길 수는 없다. 법과 문자의 역사 그리고 정치하는 정부로부터 벗어나 있는 대중의 온전한 몫이다.


영화 ‘리멤버(2022년, 이일형감독, 이성민, 남주혁 주연)’를 보는 내내 기억의 힘을 믿어라 외치는 목소리를 들었다. 중국, 몽골 침략은 눈 감으면서 일본의 침략에만 유독 가혹하게 심판하느냐고 ‘리멤버’ 영화 속 악인은 화내듯 항변한다. 그리고, 왜 나만 가지고 그러냐고 억울해 한다. 영화는 대답했다. 중국과 몽골의 침략을 받고 올바로 기억하고 희생자를 충분히 애도하지 못해 생긴 결과가 일제 침략의 아픔으로 이어졌기에 이번만은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고 영화는 대답했다. 가치의 시대, 악인의 복수는 기억에 맡기고 희생자의 아픔은 충분히 애도해야 한다고 젊은 세대 ‘제이슨(남주혁)’은 강조한다. 그 애도의 몫은 당연히 제이슨과 같은 “대중”의 몫이다. 2012년 광주의 아픔을 다룬 영화 ’26년’ 마지막 총성의 의미를 영화 ‘리멤버’는 이렇게 답하고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