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 굳이 만들어 제거하려는 영웅놀이
아무리 지독한 악당이 활약해도 요즘 서부영화를 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악당 없는 서부영화라면 오히려 호기심을 자극해서 관심을 끌 수도 있다. “악당 없는 서부영화”라는 새로운 시네마 장르가 생겼다는 해석이기도 하다. 부산 영화의 전당 이지훈의 시네필로에서 이지훈 영화평론가는 뉴 웨스턴 무비를 언급했다.
황폐화되는 산과 들, 바다는 있지만 잘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기후위기를 극복하고 국가간 이산화탄소 감축 합의를 지키기 위해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늘리는 것은 시대적 요청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태양광 발전 패널을 어쩔 수 없이 설치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좁은 국토에서 산과 들, 심지어 농토를 포기하면서 까지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다. 정부도 태양광패널을 설치하는 지주에게 여러 혜택을 준다. 들쑥날쑥 날씨와 태풍피해, 시장 상황을 걱정해야 하는 농산물과는 달리 비교적 안정적인 수익을 거둘 수 있는 태양광패널을 농지 지주들이 설치하는 것을 탓하기 힘들다. 기후위기 극복 위해 노력하는 정부도 잘못된 정책을 편 것이 아니다. 태양광발전 보급 기업도 국가를 위해 정당한 사업을 한 것이다. 농토 지주, 정부, 관련 기업 모두 윈윈한 상황 처럼 보인다. 그런데 농사 짓던 땅, 농산물이 생산되어야 할 농토는 사라지고 심지어 태양광 패널 설치로 인해 토지는 황폐화 되며 비소 등과 같은 중금속으로 오염되어 일단 태양광패널을 설치하면 농토로 되돌리는 것이 어려워진다. 잘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악당없는 서부영화 현실이다.
태양광 상황만 그런 것이 아니다. 원자력발전도 마찬가지다. 국가산업의 지속적인 성장, 국민 에너지의 안정적 확보, 그리고 2022년 유럽연합에서 녹색에너지로 분류되기 시작하면서 기후위기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는데 원자력은 현실적인 대안으로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원자력 발전소가 집중 설치되어 있는 부산, 울진을 포함한 경상도 지역은 늘 불안할 수밖에 없다. 또한 고준위 핵폐기물 저장소 위치를 정하지 못해 원자력발전소내 임시 저장하는 방향으로 정해지고 있어 원자력 발전소 뿐만 아니라 핵폐기물 저장까지 떠 안아야 하는 현실이다. 태양광 발전과 마찬가지로 누구 하나 잘못한 사람은 없지만 피해를 보는 지역과 사람은 존재한다.
여기서 한가지 특이한 상황이 벌어진다. 악당없는 서부영화에서 선한 주인공 역할을 하면서 영웅이 되려는 사람은 많다는 사실이다. 서부영화에서는 선한 주인공이 약자를 악당으로부터 구해주지만 “악당없는 서부영화” 현실에서는 피해자를 구하기 보단 자신의 권력을 위해 이들은 맹활약한다. 태양광 중심 신재생에너지 또는 원자력발전을 통한 탄소중립 달성이란 목표만 내 세울 뿐 영웅놀이하는 주인공이 농민, 피해 주민들을 위해 노력한다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재미도 없고 짜증까지 나게 만드는 싸구려 영화가 되어 버렸다.
악당없는 서부영화 현실이지만 기어코 악당을 만들어 내고야 만다. 원자력발전 정책을 펼치는 주인공은 태양광 발전 분야 악당을, 원자력발전 쪽은 반대로 태양광발전 분야 악당을 어떻게든 만든다. 악당이 있어야 영웅이 있을 것 아니냐고 주장하는듯 하다.
영화 “알카라스의 여름(2022)”은 스페인 까탈루니아 지역 알카라스의 한 복숭아 농장의 지주가 정부와 유럽연합 토지세 지원과 안정적인 수익을 위해 태양광패널 설치를 결정함으로써 무너지는 가족 공동체 얘기를 담았다. 지주도 농민 가족에게 나쁜 짓을 일삼는 악당이 아니며 스페인정부도 신재생에너지를 확장하려는 정책을 펴고 있을 뿐이다. 뉴 웨스턴 뮤비의 전형과도 같다.
현재 국내 현실은 “악당없는 서부영화”보다 훨씬 더 가혹하다. 악당을 굳이 만드려는 자 때문이다. 나쁜 놈은 없으나 멋진 총잡이 클린트 이스트우드 역할을 하려는 배우가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