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주의" 몰라도 다들 행동은 한다

결국 상과 벌이지만 폼나게 디자인하는 행동주의

by 강하단

일상에서 생존하기 위해, 보상받기 위해, 벌 받지 않기 위해 하는 행동을 제외한 행동을 떠 올려보자. 밥 먹고 잠자고 돈벌고 일하고 국민과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며 질서를 지키는 일 외 일을 떠 올려보는 것이다. 이를 자발적 행동이라 부른다.


즐겁게 운동하는 사람도 처음에는 건강해 지기 위해 하다보니 운동이 좋아졌을 수 있다. 이런 사람의 경우, 운동을 멈추면 다시 힘들어 지고 생존과 연계되니 자발적 행동이 아닐 수도 있다. 자신의 일자리에서 돈 벌기 위해 일하다 보니 일이 좋아 즐겁게 일하기도 한다. 하지만 직장일은 언젠가는 끝이 나고 반복되는 성과위주의 일이 아무리 직장생활이 즐겁다 하더라도 한계에 다다를 수 있다. 예상치 못한 직장 속 계기가 생기면 한계를 단박에 알게 된다. 자발적으로 교통질서를 지켰다고 해서 이를 자발적 행동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생존과 사회 질서유지와 경쟁력 향상을 위해 행해지는 비자발적인 행동은 물론 타인과 함께 하고 사회 목표를 이루는 차원에서 당연히 가치롭고 소중하다. 다만 개인의 행복이란 차원에서는 기름기와 치장을 걷어내고 나면 무엇이 남는지 살펴봐야 한다.


자발적 행동 예를 들어보면, 모닝커피를 좋아하는 원두 선택해서 손으로 직접 돌려 갈아 천천히 물을 내려 마신다. 아무렇게나 걸친 옷과 구겨 신은 운동화 차림으로 아주 천천히 운동이 될 것 같지 않게 걸어 멀리 항구와 바다가 보이는 언덕까지 걸어가 멍하니 바라보다 사진 한 장 찍고 돌아온다. 늦가을 정원에 아직 남아 있는 국화와 천인국에 몰려든 꿀벌에 눈길을 주고는 핸드폰 카메라로 사진 찍는다. 제대로 걸어야 운동될 것 아니냐고 핀잔줘도, 전시도 하고 돈이 되는 사진이 되려면 제대로 된 카메라 사서 찍어야 한다고 잔소리를 해도 그냥 웃는다.


행동주의는 이런 자발적 행동에 뻔한 상과 벌이 아닌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차원 높은 상과 벌을 사회 속에 마련할 것을 제안한다. 예를 들어보면, 2022년 이대호 선수의 은퇴경기가 이어졌다. 이대호선수를 좋아한 팬들은 이대호선수가 사인한 유니폼, 야구공을 받지 않아도 경기장으로 온다. 은퇴경기를 보지 않는다고 큰 일 날것도 없다. 팬들은 이대호선수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보기 위해 야구장으로 자발적으로 달려온 것이다. 하지만 정확히 누군지는 모르지만 누군가 이대호선수 은퇴경기를 2022년 시간 속에 설계한 것이다. 이를 통해 팬은 경기 전 시간, 경기 한 순간순간, 경기 후 시간에 각자에게 맞는 다양한 보상을 챙겼을 것이다. 생존의 문제도 아니고, 돈을 버는 차원도 아니며, 사회질서 지킴은 더우기 아니다. 분류할 수만 없을 뿐 뚜렷하고 분명한 보상이 팬 개인 각자에게 듬뿍 주어졌다.


이대호은퇴경기 속에서 팬들은 행복한 시간을 즐기면서 각자 자신에게 보상했다. 그리고 한가지 질문이 생긴다. 함께 한 경기 시간 속에서 지식이 없고 삶의 지혜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어려운 세계 속 생존 전략과 사회 경쟁력의 열쇠가 이대호선수 은퇴경기와 같은 공동의 경험 속에 숨어 있을 수 있다. 사인볼 받으려 그리고 은퇴경기 가지 않으면 평생 후회한다는 협박이 무서워 경기장에 갔다면 얻을 수 없었던 소중한 보상이다. 기후위기 극복 정책과 실천이 이렇게 폼나게 설계될 수는 없을까? 경제성장의 열쇠가 우리 사회 속에서 이 정도로 치밀하게 디자인되어 멋진 상을 선사할 수만 있다면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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