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와 사자가 싸우면 누가 이기나?

정답있는 사회 만드는 정답없는 시대

by 강하단

“수능시험을 보는 수험생 모두 시험 잘 보세요!”란 말보다 무책임한 말은 없다. 수능시험이란 제도는 어차피 등수를 가르기 위해 치르는 것 아닌가. 정답있는 문제로 등수를 정하니 말이다. 수능 때면 늘상 듣는 선택과목에 따른 유불리를 최소화했다는 정부관계자의 말도 불만을 최소화하면서 효과적으로 등수를 정하는데 최선을 다했다는 말로 들린다. 공정 경쟁을 내세우며 어떻게든 등수를 정해야 하는 것이 국가 교육이다. 학적부와 면접시험으로 당락이 결정되는 수시전형도 정답은 있고 그에 따라 등수는 정해진다. 제도만 주물럭거렸지 순위를 가르지 않고도 가능한 대학교육을 고민한 적 없었다. 정말 대안은 없는 것일까? 세상이 바뀌어 다른 세계 다른 세대가 등장했지만 무대 위는 여전히 구시대 구세대 판이다. 교육의 의도, 의미 그리고 방향성에 대해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호랑이와 사자는 서식지가 달라 만날 일 없다. 만날 일 없으니 싸울 일도 없다. 그런데 호랑이와 사자가 싸우면 누가 이길지 사람들은 궁금해하면서 기어이 승부를 가린다. 호랑이와 사자 결투 전문가들은 싸우지 않는 두 맹수를 굳이 싸워야하는 조건과 상황을 만들어 시뮬레이션 결과를 예측하기도 한다.


호랑이와 사자 사이의 싸움 뿐만 아니라 사람간의 이종 격투기가 있었다. 1976년 도쿄에서는 경쟁이 불가능한 다른 분야의 무술선수가 기어이 결투를 하고 말았다. 레슬링 선수 안토니오 이노키와 복싱 선수 무하마드 알리가 맞붙었다. 왜 이런 결투를 꼭 해야 하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세기의 결투가 벌어졌다. 지금의 격투기로 발전한 기발한 아이디어라고 찬사를 보내는 사람도 있는듯 하다. 하지만 굳이 왜 라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경쟁으로 내 몰면 어떻게든 해낸다. 어떤 조건과 상황에서든 1등은 있기 마련이고 2등이란 개념을 만들어 경쟁사회를 완성시킨다. 그렇게 경쟁에서 이긴 자들은 자신들이 거둔 성과가 공정했다고 믿으며 다른 사람과 다음 세대도 그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쟁의 되물림은 공정이란 윤리로 지켜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대안이 없지 않느냐!” 이 말 한마디면 달리 대응하면서 대안을 함께 고민할 가능성은 사라진다. 대학입시 대안이 있느냐? 해 버리면 반박하기 불가능해진다.


그런데 이런 질문을 한번 던져보자. 진짜 대안이 없는 것인가? 또는 대안없다는 핑계로 다른 길 찾아야 하는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인가? 만약 후자라면 일어 나서는 안되는 사자와 호랑이 싸움, 알리와 이노키 결투를 가정하고는 행사를 준비할 엄청난 예산, 전문가, 제도를 만드는데 시간과 노력을 허비한 것이다. 어떻게든 승부를 내야 하니 공정이라는 룰을 만들고 시합의 정답을 맞추는 승자를 가려 등수를 매겨왔다.


참된 지식은 어떠해야 한다고 가르치면서 학생들은 정답 맞추기 시합에 내모는 학교 교육의 현실은 모두에게 아프다. 대안은 분명 있다. 대안이 없다고 믿을 뿐이다. 사회가 생존하고 문화를 형성, 지탱할 지식을 가지고 사회관계 속에서 일할 구성원이 필요할 뿐이지 않은가? 이런 사회 일꾼을 등수를 꼭 가려서 찾아내려는 것은 병적이란 생각이 든다. 당장 길을 찾기 힘들다고 아예 찾기 않는 것은 또한 무책임하다. 찾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고 급하다.


지식과 능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길이 정답 맞추기 시합의 등수로만 가능하지는 않다. 인구 감소로 대학입학 정원이 줄어 대학의 위기라고 하지만 말고 대학도 새로운 자동화, 디지털 시대 변화를 찾아야 한다. 입학경쟁없이는 공정한 대학제도 마련이 힘들다면, 이번 기회에 대학없이는 사회가 필요로 하는 지식형성이 힘든지 근본적인 고민도 해 봐야 한다.


극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세계 경제 속에서 배부른 소리 하지 마란 주장을 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다른 얘기를 하나 하고 싶다. 최근 수십년을 돌아보면, 바이오, 나노, 신약, 소프트웨어, 인공지능, 시스템 반도체 분야까지 세계 경제를 이끌어 왔고 여전히 이끄는 분야는 대부분 미국이 주도했는데 우린 늘 따라 잡으려 했다는 점이다. 물론 삼성을 비롯한 한국기업과 한국의 지식인과 산업역군들은 미국을 따라 잡는데 엄청난 괴력을 발휘했다. 대단한 것은 분명하다. 자랑할만하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미국 따라 잡기만 할 것인가? 미국 따라잡기 시합에서는 이제 중국이란 경쟁자가 생겨 일등하기 힘들어졌다. 이제 한국이 주도해 세계를 따라오게 하는 산업분야, 지식도 생길 때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야만 등수에 집착하는 사회를 바로 잡을 수 있다.


따라잡는 귀재에서 미국이 따라오게 만드는 산업과 지식을 만들 수 있는 일꾼은 정답 잘 맞추어 높은 순위에 올라가 있는 학생은 결단코 아닐 것이다. 그 경쟁 자체가 정답을 쫓아 가는 체계이기 때문이다. 미래사회는 선언하는 현상일 뿐이다. 지금껏 한번도 하지 않았던 질문을 던져보자. 대학 없는 지식은 가능한가? 대통령과 정치인, 투표제도 없는 민주주의는 불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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