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활을 채우는 ‘말’
듣는 걸 좋아하고 말하는 걸 좋아하니
말에 대한 감지, 특히 ‘말이 뿜는 온도를
감지하는 게 빠른 편’이라는 평을 들어왔다.
결혼 후에 심적으로 여유가 생기니
유독 그 말들이 뿜는 온도,
그게 차갑거나 미지근하거나 따뜻한 정도를
더 빠르게 읽는다는 얘기를 듣는다.
사실 최근에는 남모를 고민이 있다.
유독 이 언어의 온도가 차가운 동료가 있는데,
그를 어떤 태도로 대해야 할지 모를 때가 있다.
한 가지 그나마 다행인 건,
일정 기간 동안 그의 언어습관을 들어보니
비단 나에게만 한정되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10년 동안 변하지 않는 MBTI.
나는 정말 ‘위 아 더 월드’를 지향하는 타입이기에
타인에게 건네는 말 한마디에 예민하고,
반대로 듣는 말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편이다.
종종 어떤 사람들은 말을 쉽게 툭 툭 던지곤 하는데,
나는 그러고 싶은 생각조차 없을뿐더러
관계 형성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런 말을 들을
경우에는 되려 무례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같이 지냈던 동료들에게는
‘항상 말을 기분 나쁘지 않게, 조심스럽게 하신다 ‘
라는 얘기를 많이 듣는 편이었다.
어쩌면 다른 부서 사람들로부터 마음을 여는
나만의 방법일지도 모른다.
지나고 나니 이 언어습관은
동료들 뿐만 아니라, 나를 둘러싼 이들 모두에게
영향을 크게 미쳤던 것 같다.
감사한 일로 여기고 넘겼지만, 그게 쌓여서 자산이 된 게 아닐까.
내가 느낀 차가움을,
다른 누군가가 나로부터 느끼지 않기를.
언어습관 하나에 주의하다 보니
나에게 돌아오는 언어들도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남기기 시작한 기록들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걸 알았을 때,
내 페이스를 잡고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더 조심스러운 언어로 기록하고,
나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
상대방이 차갑다고 해서,
나까지 차가워질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건 그 사람의 성향이고 언어습관이니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넘기면 된다.
‘무례함’으로 느껴진다면 잠시 거리를 두고
대화와 접촉을 멈추는 것이 좋더라.
어느 정도 흘려 넘기는 것도 필요하고,
나의 온도를 낭비 없이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다.
아직 다녀야 할 곳이 많고,
만나야 할 사람도 많다.
그들의 언어습관을 통해
나와는 다른 온도를 가진 사람을 알게 된다.
굳이 차가운 이에게 차갑게,
따뜻한 이에게 따뜻하게 대하지 않아도 좋다.
나와 온도가 비슷한 이들은 내 주변에 머무르고,
내 온도를 바꿔가면서까지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유독 언어 온도 감지를 잘해왔던 나이기에
같은 언어라 하더라도 더 빨리,
말이 가진 온도를 파악해서
그에 맞는 태도를 갖추고 지내게 됐다.
그리고 이젠 지켜야 할 가족도 있다.
아내는 나의 이런 부분을 장점으로 생각해 줘서,
머릿속에 균형을 잡지 못할 때 큰 도움을 준다.
내 성격의 이런 부분 때문에 결혼했다고 하니
그 자체로 감사할 일이다.
칼을 잘 아는 사람은
무딘 면을 쓰기도 하고, 날카로운 면을 쓰기도 한다.
그만큼 ‘어떻게 하면 잘 베일지’ 안다는 것이다.
난 언어습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상대방이 가장 잘 베일 말들을 알고 있고,
그래서 베이지 않는 말을 쓰는 사람들에게
더 마음이 가는 게 맞다. 그 자체로 배려 아닐까.
늘 조심스러운 탓에 스스로 답답할 때도 있지만,
덕분에 소중한 사람들이 곁에 있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