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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일 피해자야”

미팅에서 모두의 표정이 굳었다

by 인천사람

‘가능성을 본 브랜드에서’를 끝내고

조금이나마 부정적인 기운을 뿜는 글은 쓰지 않겠다 다짐했건만 일주일을 못 가는구나.



이런저런 히스토리가 있지만 짧게 요약하면 이건 어제 일어난 일. 그리고 어제 들었던 얘기.


팀원 한 명과 다른 팀 팀원, 그리고 나까지 오너의 미팅 요청에 이제는 초연한 마음으로 참석했다. 의사 결정권자께서 작년 00 클로의 감사제에 꽂힌 것에서 출발, 감사제의 일환으로 고객들과 뭐라도 하나 하고 싶다는 의지에서 금요일 저녁 3시간 미팅을 진행했던 그 건을, 올해는 꼭 해야 된다는 본능 때문에 준비 중이었다.


메인 PM은 해당 파트를 회사에서 매일 파악해야 하는 우리 팀 팀원이 맡았고 각 영역별로 도움을 주기 위해 붙었다. 5명 최소 인원으로 진행 중인 프로젝트. 팀원 개인의 역량이 제일 눈에 띄는 일의 형태다. 0부터 100까지 팀장이 판단하는 형태는 지양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이 같은 형태를 권했다.


문제는 여기서 생겼다. PM 자체가 처음이니 오너와의 소통이나 중간보고가 누락된 상태에서 일이 진행되고 있던 것. 호흡이 잘 안 이뤄지니 오너의 팀 전체 소환이 생긴 것이다.


제일 큰 문제는 또 있다. 담당 PM인 친구가 2주 뒤면 퇴사한다는 것. 여차저차 말하고 싶지는 않고, 이미 마음이 뜰 대로 뜰 수 있는 상황이기에 평소의 그 사람이라면 안 했을 실수나, 꼭 했어야 할 일들이 누락되는 상황이 계속해서 생기고 있었다. 일어난 사실만 기록하면 그렇다.




그전에 팀원끼리 이미 충분한 피드백 시간을 가진 상태였고, 오너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맞은편 PM 친구의 표정은 물론 옆자리 팀원도 그 얘기를 듣는 표정이 안 좋다. 자초지종을 설명해도 도통 통하지 않는다. 애초에 이 상황을 만든 내 불찰이다. 내가 잘했다면 이렇게까지 오지는 않았을 텐데.


미팅의 목적이 뭔지 정확하게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 시간은 몇 년이 지나도 그렇다. ‘말하고 싶은 게 그래서 뭔지’ 묻고 싶은 마음이 목 끝까지 차 오른다. 차라리 시원하게 욕이라도 하면서 피드백이 남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뭐라도 남으니까. 그렇다고 사람을 싫어할 것도 아니고 일은 일일 뿐. 그간의 직장생활에서 일로만 세게 피드백하셨던 분들을 한 번도 인간적으로 싫어했던 적은 없다.


소모적인 이야기가 오가다가 결국 그 말이 나온다.

“결국 내가 제일 피해자야. 돈 천만 원 쓰고 아무것도 안 남잖아. 내가 제일 피해자라고.”


그의 어록에 하나가 추가되었다. 왜 그렇게 표현했는지 맥락은 이해가 된다. 그런데 꼭 그렇게 말해야 했을까. 천만 원 소요된다고 예산 보고를 한 적도 없을뿐더러 그 정도의 용의가 있는지도 중간 단계에 건너 건너 듣게 됐다. 늘 비용 절감이 그에게 최고의 KPI였으니까.


중요한 건 발화자의 마인드다.

생각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수정과 보완이 이뤄질 수는 있다. 그런데 어찌 됐든 그 베이스에는 팀원들이 하고자 하는 의지가 스스로에게 있고, 그 끝에는 ‘이걸 통해 회사가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래서 목표를 세우고 움직인다.


이 배경을 보고 들은 상태에서 돈 쓴 사람이 제일 피해자라 호소하는 상황이 맞을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회사가 어떻게든 잘 되게 해 보려고 이 기획에 붙은 사람들이 제일 힘들 거다. 아마 다들 말은 안 했지만 이걸 하고자 하는 의지가 많이 꺾였을 거다.


어쩌면 내가 이전의 기록을 멈춘 건 ‘가능성을 본 브랜드에서’라는 타이틀 아래 부딪치고 도전하고 배움을 얻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으나, 현실적으로 그게 불가능해서일지도 모른다. 내가 본 건 가능성이 맞았을까.


가능성이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피땀 흘렸을 전임자 분들이 어떤 마음이었을지 조금은 예상이 된다. 기회가 된다면 그분들을 만나 보고 싶다.


일은 벌어졌고 행사는 당장에 다음 주.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이 건을 일단 수습해야 한다. 오늘은 어제보다 출근 전철에 사람이 덜 탔는데도 유독 숨이 턱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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