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컷 그림의 비하인드 스토리
뉴욕에 3개월 모아둔 돈을 전부 쏟아붓고
대출받고 해서 무작정 여행을 다녀왔다
말이 안 통하는데 그림으로 슥슥
그려서 보여주니까 이해하더라
-
어쩌면 그것이 계기가 되었을지도...
처음에는 그림에 대한 아이디어를
그려내는 데 사용했던 작은 메모장 같은
의미로 쓰게 되었다
기승전결을 그림으로 확인하기에 글
메모보다는 보기에 더 편했다
그렇게 한국에 돌아와서 네 컷 그림을 그리던 중
어떤 동호회 모임에 나갔는데 일러스트 그린다는
사람들이 내 아이디어 노트였던 네 컷 그림을
공모전 용이라느니 인기가 없다느니 한국에선
안된다느니 조롱하는 듯한 말투로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
-
그 동호회는 다신 나가지 않았다
난 더 이 네 컷 그림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아이디어만 도출하려고 했던 그림 메모에
내 생각을 담아내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네 컷 그림으로 이루어진 만화들을
많이 보게 되었는데 더 욕심을 부려서 대사가 없는
만화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하게 되었다
이것은 난독증이 있는 사람들 혹은 만화가 글 같은 의미 혹은
전달의 용도로 사용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여행을 가서 인스타그램을 하기 시작했기에 해외에 있는
사람들도 언어가 같지 않아도 그림만 보고 얼추 이야기를
상상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
-
2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그렸다
처음에는 하루에 4개씩 그렸다
그러다가 아이디어가 고갈되는 느낌이 심해지고
날림으로 그리는 느낌이 들어서 3개로 바꾸었다
그러다 2개가 되고 결국은 한 개에 더 집중하자는
쪽으로 결론이 났는데 네 컷 그림을 한 개씩 그리는
것도 직장을 다니면서 그리려니 힘이 들더라
다음 날 그림을 못 그릴 것 같으면
새벽같이 출근해서 2개를 그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미친 것 같은 집착이었다
-
-
동생이 병원에 입원하고 나서 2년 동안 그리던
네 컷 그림을 도저히 그릴 수가 없었다
머릿속에 죽음밖에 떠오르는 단어가 없었다
그 뒤에 몇 개 더 그렸는데 잠깐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러스트와 단편만화를 그리는 데에
더 집중했다. 헤어 나오는 데에 1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
-
회사를 전전하다 보니
영상회사, 에이전시, 광고대행사를
거쳐 어느새 간판회사까지 가 있더라
전부 그렇지는 않겠지만 내가 겪었던 회사의 경우
간판 견적은 있는데 디자인 견적이 없었다
디자이너인 나는 도저히 견디지 못해서 그만두었다
당시에 출간 계획이 잡혀 퇴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만두기를 잘 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2018년 3월 첫 도서가 출간되었다
원태연 작가님은 원래 팬이었기에 더 감정적으로
집중했다. 그렇지만 지나고 나면 부끄러운 건
어떤 작업이던 어쩔 수 없다
-
-
3월에 출간을 위해 프리랜서를 선언하고 난 후
우연찮게 이런저런 일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거의 다 프로모션 관련된 디자인이나 브로슈어 혹은
웹툰 관련이었는데 하고 나면 돈을 벌었지만 왠지
허무함을 지울 수 없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외주를 하고 있습니다
광고주님들 사랑합니다)
책 작업은 좀처럼 그렇게 많이 들어오지는 않았다
출판업계는 힘들었고 나는 아직 먹고살 만큼
유명하지 않았다
-
-
내가 꾸준히 해 왔던 것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2년 동안 인스타그램에 그려왔던 네 컷 그림들이 있었다
거의 한 번도 그림에 대해 나의 생각이라던지
글이라던지 풀어낼 기회가 없었다
이게 여기서 멈추기에는 너무 아까운 거다
네 컷 만화는 기타 웹툰과는 다르게
은유와 비유가 만화의 내용 전부일 때가 있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내 그림은 시와 닮아 있었다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연인과의 감정이
주로 많았기에 먼지 쌓인 네 컷 그림을 꺼내었다
대신 조금 작았던 사이즈를 더 크게 그리고
없었던 주인공을 만들었다
지금은 각 그림들에 맞는 생각을 글과 함께 그려내고 있다
다시 시작했다
다시 시작한 지 벌써 한 달이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