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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갤러리 산책가는 날.33

김남승 개인전, “미수(米壽)기획 회고작품전”

by 강화석

인사아트프라자 갤러리 4층에서 2024년 12/24(화)부터 12/30(월)까지 열린 김남승 화백의 개인전은 작가의 미수(米壽)를 기념하는 회고기획전이었다. 미수(米壽)이니 88세이며, 근 70년에 이르는 세월동안 작품 활동을 한 노(老) 화백의 회고전은 여러 면에서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으며, 또한 우리 현대사의 굴곡과 함께 작가가 겪었을 다양한 인생경험들을 연계하며 작가의 생애에 대한 남다른 인상을 떠올려 보는 것은 자연스런 반응이기도 할 것이다. 더불어 여전히 현역으로서 붓을 놓지 않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귀감이 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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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회고전이지만 작가가 생애동안 그린 작품 세계를 망라(網羅)하지는 않았을 것이며, 전시작품들은 비교적 근작들일 것으로 추측하는데, 놀라운 것은 구순(九旬)을 앞둔 작가의 작품에서 노(老) 화백의 작품이라는 선입견으로라도 느껴질 세월의 무게라든가 연륜에 따른 특정한 풍격(風格)에 매이지 않는 신선함이 전해진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노련하고 재능 많은 신세대 작가의 개인전인 듯 자유분방하고 경쾌하며 과감한 붓 터치touch의 실험적인 채색과 분위기를 맘껏 드러내고 있다.

그의 화력(畵歷)으로 보거나 평생 추구했을 작품 세계에 대한 몰두를 예상해 보건데, 어느 정도 특정한 분위기에 경도된 특성을 드러낼 법도 하지만, 그는 그런 치우침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듯 과하지 않는 한계 내에서 꾸준한 자기 변화와 다양성을 시도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즉 김 화백은 자신이 선택하거나 관련된 대상과 사물을 지속적으로 관찰하거나 기억 속에 담아두면서도 그것을 표현하기 위하여 색을 선택하고 채색하는 데 있어 하나의 기법에 매이지 않으려 한다는 느낌을 전해주고 있으며, 자기 예술관의 다채로운 면모를 드러내고자 서로 상반된 화풍을 보여 주기까지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예술정신과 화법(畵法)을 통해 내적 심상을 미학적으로 발현함에 있어 어느 하나에 구속되지 않으려고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작품들은 대략 50여점(55점)에 이르고 있는데, 작품의 형식을 구분하자면 정물화 6점을 제외한 대다수인 49점의 작품들은 주로 자연경치와 도시 풍경을 그린 풍경화와 비구상적 추상화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고, 비구상화에 속할 작품들이 상당수 차지하고 있으니, 작가의 오랜 화업(畵業)을 회고하는 작품전으로서 그간 작가가 지향하고 있던 다양한 화풍을 아우르는 것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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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산2/ 설산1

이번 전시 작품들은 주로 자연과 도시를 모티브로 하여 ‘실재(實在)’와 ‘기억(記憶)’을 주관적 관점에서 표상화하고 있다. 대체로 작품들은 서정적이면서 자연 친화적인 감성을 바탕으로 경치를 재현(再現)하려 하면서도, 자신의 내적 통제를 통하여 눈앞에 펼쳐진 자연의 아름다움을 주관적 자아로 재해석하려고 노력한 흔적을 드러내고 있다. 즉 대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기 보다는 내재한 감성을 중심으로 자아의식을 발현(發現)하려고 한다. 따라서 그의 작품들은 단순한 서정적 풍경화라고 보기에는 어느 정도 인상주의적이거나, 그 반대편이라 할 표현주의적 작품의 특성들이 공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오래 전(19세기)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Edvard Munch)」는 “나는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게 아니라 본 것을 그린다.”라고 말한 바 있는데, ‘지금 보는(see) 것이 아닌 이미 본(saw) 것을 그린다.’ 는 뜻으로, 뭉크는 “과거에 본 것”을 바탕으로 경험과 기억을 되살려 그린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이것은 곧 “표현주의 접근법”을 의미하며 이미 “보았던 것”을 자기의 기억으로 환원하여 내면에서 융합되어진 것을 자신의 조형적 언어를 통해 드러낸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반대로 “보는(see) 것”은 실재 현장에서 지금 보는 것에 대하여 자신의 느낌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니 이는 “인상주의적인 접근법”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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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가 보이는 풍경

필자는 김남승 화백의 작품들을 뭉크의 의견을 근거로 두 가지 표현법으로 나누어 읽어 보려는 시도의 적절성을 따지기 보다는, 이런 관점으로 김 화백의 작품들을 살펴보는 것에 무리는 없어 보인다는 판단이 들었다. 이에 따라 김 화백의 전시작품들을 두 가지 표현방식으로 나누어 읽으려 생각하였는데, 즉 자연을 관찰하며 “인상주의”적인 표현방식으로 그린 풍경화와 도회지의 풍경(주로 도시 뒷골목)을 통하여 기억의 ‘회상(回想)’이나 ‘잔상(殘像)’을 “표현주의”적인 접근방식으로 그려낸 작품들로 구분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따라서 전자(前者)의 작품들은 경치를 사실적으로 재현했다기보다는 작가가 대상을 대하며 느낀 인상을 중심으로 자기의 개성을 담아 그린 풍경화에 가깝다고 할 수 있으며, 후자(後者)의 경우는 “표현주의”의 특성을 강조하며 그린 비구상적 풍경화이거나, 나아가 추상화에 해당하는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전자에는 풍경화에 속하면서도 “표현주의” 특색이 강한 작품들이 포함되어 있으니, 김 화백은 표현방식에 구애받음이 없이 자유롭게 특정한 대상이나 주어진 목적에서 벗어나 자기의 감정이나 생각을 표현하려는 예술적 자율성을 강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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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시선-회상9

김 화백은 자연의 사계(四季)를 그린 작품들에서 경치를 그대로 재현하려 하기 보다는 경치의 본질을 빠르게 포착하고 이해한 후 대상의 세밀한 묘사보다는 색채를 강조하며 그려내었다. 붓 자국을 남기며, 자유스럽게 화면을 처리하려는 듯 그리는 한편, 빛의 효과를 강조함으로써 밝고 활기찬 인상을 담아내려 한다. 물론 강한 빛이나 화려한 색채를 두드러지게 그리지는 않았지만, 기본적인 의도는 빛과 색채를 강조하는 인상주의 작가의 발상을 담아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그림들은 즉흥적이면서 감각적으로 표현됨으로써, 전하는 느낌은 강렬하고 생기가 넘쳐난다. 더불어 작가의 내면에선 긍정의 의지와 생동감 넘치는 기운이 솟아나는 듯한 정서나 감정이 전해지고 있다. 이렇게 대상에 대한 자신의 인상(印象, impression)을 담아내기 위하여 작가는 깊은 교감을 겪는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하였다. 따라서 이런 순간을 담기 위하여 정밀한 원근법이나 세심한 마무리를 통한 자연의 모방보다는 색과 빛의 효과에 주목하면서 자연으로부터 느끼는 개인의 감정 등에 집중하여 회화적으로 표현하고자 하였다.

한편 작품들 중 “회상”시리즈와 “잔상”시리즈의 연작들은 주로 도시의 뒷골목 풍경을 모티브로 하여 그렸는데, 비구상적 풍경화로 분류할 수 있으며, 특히 “잔상” 시리즈 연작들은 추상화에 속하는 작품들이다. 이 연작들은 앞에서도 언급을 했지만 “표현주의적 접근방식”의 특색이 드러나고 있다. 표현주의 작가들은 “보이는 것을 그대로 그리지 않고 보이는 것이 있는 것처럼” 그리고자 하였는데, 대상의 본질을 표현하기 위하여 감정적 경험의 의미, 즉 인간 내면의 깊숙한 곳에 있는 잘 알 수 없는 기운을 통하여 확인하고 이를 드러내려고 한다.

또한 ‘잔상’의 뜻이 ‘지워지지 않는 과거의 모습’이므로 작가에게는 잊을 수 없는 기억의 일부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기억이란 생각과 감정에 따라 만들어 지는 것이며, 기억을 회상하거나 기억 속의 잔상을 그린다는 것은 작가의 생각대로 해석하고 구성하여 시각화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20세기 최고의 추상화가중 한 명인 피카소(Pablo Picasso)는 “나는 보이는 대로 그리지 않는다. 내가 생각한 대로 그린다.”라고 하였는데, 김남승 화백 역시 도시풍경을 모티브로 삼아 “회상”과 “잔상”을 표상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대상을 그리는 것이 아닌, 선과 면, 색상 등 조형 언어를 통해 단순화하고 평면화하면서 자신의 내면세계를 표현하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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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시선-회상5

작품들 중 도시의 뒷골목 풍경을 모티브로 한 “마음의 시선-회상” 시리즈는 표현주의 특성이 부각되어 그려진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 대상을 강렬하며 화려한 색상과 나이브naive한 화풍으로 빠르고 거칠게 직선적인 붓질과 나이프knife를 이용하여 화폭에 두텁게 물감을 칠하는 등 질감의 효과를 중시하는 한편, 대상의 구도나 원근법에 변형deformation을 가하고 있다. 대체로 작품 속 골목길은 낡고 남루한 이미지이지만 빛과 색상의 처리를 통해 이미지의 변화를 가져온다. 그의 기억 속에서 그 장소와 그 시절이 여전히 화려하고 아름다운 한 때(화양연화花樣年華)로 남아 있다는 의미를 드러내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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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상2

다만 독자들에게는 작품의 내용이나 생각을 세세하게 읽어내기가 수월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나마 밝고 화려한 칼라를 통해 전해지는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마음의 시선” 시리즈와 “마음의 잔상” 시리즈에 공통적으로 “파랑새”를 주제로 한 작품이 있는 것을 통해 ‘파랑새’가 상징하는 의미와 연관성을 떠올리면서, 작가의 내면세계가 어느 정도는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순간으로 기억하면서 그 때를 표상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따라서 김 화백에게 도시의 뒷골목 풍경은 잊혀 질 수 없는 과거 어느 시기와 관련된 장소를 상징할 것이며, 뜻 깊은 대상이면서 기억일 것이라는 추측을 해보게 된다.


이렇게 미수를 맞은 노 화백은 자신의 생애와 관련된 사실이나 사건에서 비롯된 기억을 떠올리면서 “그 때” 기억과 “지금”을 관련지으면서 생애를 돌아보거나 삶의 뜻을 살피는 성찰의 순간들을 몸소 겪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또한 이런 과정은 예술가로서 무겁지 않게 본연의 역할과 생애를 통해 터득한 깊은 통찰을 바탕으로 하여 보다 높은 뜻과 이치를 받아들이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면서, 한편 원숙한 사람의 바른 모습이며 태도에 부합하는 것일 것이다.

김남승 화백은 작가노트에서 “우거(寓居)에 안빈낙도(安貧樂道)하면서 작품세계의 모색(摸索)과 탐구(探究)와 연찬(硏鑽)을 멈추지 않고 예리(銳利)한 심안(心眼)과 원숙(圓熟)한 필력(筆力)을 연마(硏磨)하며 살고 있다”고 쓰고 있다. 이번 회고작품전은 이처럼 오래도록 작품에 매진하는 삶을 살았으면서도 모색과 탐구를 지속하며 예리한 심안과 원숙한 필력을 연마하고 있는 노 화백의 삶의 자세와 예술정신을 담아낸 작품들을 선보이는 전시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예술가들의 기본 정신은 세상의 사물과 대상으로부터 화제(畵題)를 만나지만 늘 그 특정한 대상으로부터, 주어진 목적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와 의무를 가지고 있으며, 자신만의 감정이나 의식을 표현하려는 창조적 자유를 추구하려 한다는 것을 보여준 전시라 할 수 있을 것이다.(강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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