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밝은터 개인전, “조형물이 되는 꿈을 꾸다”
인사아트센터 4층 부산갤러리, 2025 5/21(수)~5/26(월)
인사아트센터 부산갤러리(4층)에서 2025년 5월21일(수)에 개막하여 26일(월)까지 열린 김밝은터 작가의 “조형물이 되는 꿈을 꾸다”라는 주제의 일곱 번째 개인전은, “50년/그림인연 전” 이라는 스승과 제자의 공동전시회이기도 하였다. 이미 부산(부산광역시청 제2전시실)에서 개최한 후 서울에서 다시 열고 있는 것이다. 스승과 제자의 공동전은 함께 전시장을 사용하고 있지만, 두 작가는 한 공간을 서로 구분하여 각 자의 작품들을 전시하는, 두 개의 개인전이 각각 열리는 셈이라 할 수 있다.
필자는 김 작가를 처음 만나는 처지이지만, 그의 작품들이 마치 동화적이고 환상적인 분위기에서 밝고 경쾌한 느낌을 전하면서도, 실험적이며 기획적인 의도를 담고 있는 듯한 조형적 미학에 주목하며 작품의 예술적 메시지의 속내를 관심있게 들여다보고자 하였다. 물론 전시장에서 만난 김 작가는 일반 작가와는 다른 조건에서 작품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그의 작품들이 주는 전달 메시지는 추상적이기보다는 구체적이고 명확한 상징을 담고 있다는 선입견을 갖도록 하였다. 그러나 작품을 보는 내내, 색다르고 냉철하면서도 공리(公理)를 따르는 환상적인 진실을 대하면서 필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내면으로부터의 뜨거운 울림을 경험할 수 있었다.
김 밝은터를 화가로 이끈 스승 김용달 화백은 “50년전 김밝은터가 나의 화실을 찾아와 그림을 배우고 싶다고 했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하면서, “손이 아닌 발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김 밝은터의 말에 당혹스러움이 앞섰다고 회상한다. 그러나 이후 열정과 의지로 “팔을 잃은 아픔을 주제로 삼아 자신의 한과 꿈을 화폭에 담아냈다”고 전하고 있다.
김 작가에게 그림을 시작한 50년 전을 회고하며 시간을 되돌린다면, 이번 전시는 자기의 “갈망하는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을 선보이는 기회일지라도 마음 속 기억으로는 “끔찍스러운 조형성”을 연상하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50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오히려 “영적인 생명력”으로 보는 이들에게 ‘감탄적인 동의’를 분명하게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놀라운 반전을 경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번 전시에 대해서는 그의 상실(喪失)을 극복하고 미학으로 재조명하는 ‘손’의 조형미학이 그저 “아름다움이란 추상적인 추론에 의해 포착되는 것이 아니며, 미(美)는 단번에 생생한 인상으로 이해해야 한다“ 라는 도미니크 부우르(Dominique Bouhours, 17c 프랑스 문법학자) 신부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전시장에 흐르는 작품들의 분위기는 사실주의적인 표현과 추상적인 장치를 접목하여 대체로는 동화적이면서도 인공적인 조형미를 드러내고 있지만, 분명 예사롭지 않은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어떤 메시지나 story telling을 은연중에 전하려고 한다. 다양한 표현의 작품들은 공통적인 핵심 모티브로 “손”을 형상화한 조형적 이미지를 중심으로 시각화하면서, 추상성에 의존하기 보다는 작가 내면의 의사를 표출하려는 의도로 다양한 변형이나 창의성을 발휘한 “손의 언어”를 통해 테마화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관된 테마를 중심으로 일련의 표현들이 일정하기 보다는 상상력의 범위를 확장하고 있기에 지루하거나 매몰(埋沒)되지 않는 신선함이 전해지고 있다. 이것은 꽤 고심하면서 체계적으로 자신의 창의적 기획력을 발휘한 까닭도 있고, 시각적으로 표현된 그림의 기본을 충분히 살려내고 있기 때문이라 할 것이다.
우선 그의 표현력이 매우 섬세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색채를 다루는 안목이나 실제 화폭에 나타난 채색은 은근하면서 자연스럽게 배합되고 만들어진 색의 조합과 조화가 있다. 또한 잘못하면 이질적이고 어색한 표현에 그칠 수 있는 색의 선택이 서로 배척하지 않고 보색관계가 되면서도 진부하지 않은 낯설음을 주는 것은 묘한 매력이나 눈길을 끄는 효과를 더해주고 있는데, 이런 식의 형태와 색의 표현은 그림의 기본에 해당하지만, 특히 작위적인 인상을 줄 수 있는 의도가 눈에 들어오면서도 작품들에서는 묘한 성취감을 실감할 만큼 울림을 주기도 한다.
그리고 비현실적 추상을 지향하면서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실재의 대상을 작품 안에 담아내면서 그 배경으로 삼거나 그림의 의미 있는 요소로 다루면서, 그것들이 주는 이중의 의미가 느껴지니 막연하고 무의식적인 추상적 작품화가 아닌 자기의 주제의식을 철저히 담아내고자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김 밝은터 작가의 이번 전시 주제가 “조형물이 되는 꿈을 꾸다”인데, 이는 “손”을 위한 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가 주는 상처에의 위로이거나 치유의 방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며, 대승적인 “꿈”을 위해 자기 터득의 방식으로서의 “손”을 위한 상징과 은유의 미학을 표상해 보려는 것이기도 하면서, 나아가 자기의 유년에 겪은 기억의 고통을 극복하면서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몽상(꿈)을 위한 몽상(꿈)” 이라고 할 수 있다.
‘손’은 인간의 삶과 행복을 이루는 데 필요한 도구이며 수단임은 분명하다. 또한 기능 이전에 신체의 일부로서 그 완성의 조건이 되기도 한다. 당연시 되는 이것의 존재 유무 차이는 해당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또한 기능과 역할을 생각할 때, 그 상실과 결함의 차이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모든 것을 극복하며 그 기본의 필요와 기능조차 대체하면서 그 이상의 결과를 만들어 내는 의지와 힘에 대해 다른 어떤 찬사가 필요한 가 싶다.
이미 김 작가는 50년도 훨씬 전에 이런 참담한 경험을 온 몸으로 겪어 내었고, 그 이후 50년 전부터 대안의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화가에게 ‘손’은 제1의 도구이며,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수단일 수 있지만, 김 작가는 다른 대안으로 시작한 것이다. 그를 지도하는 김용달 화백의 심정도 처음에는 막막할 따름이었겠지만, 그들이 겪은 50년의 세월은 그 모든 과정을 덮어 버릴 만하다 할 것이다.
김 작가는 벌써 여러 번 “손”을 테마로 자신의 예술적 상상력과 현실적 상징을 동반하는 의미있는 조형미학을 추구하는 중이다. 누군가는 그 상실의 기억이나 trauma로 인식될 수 있을 테지만, 김 작가는 용기있는 태도로 ‘손’을 직접 마주한다. 그리고 자신의 솔직한 심정과 이상적인 기대를 담은 주제의식을 그림으로 승화시키고자 하였다. 이번 7번째 전시에 앞서 6번째 개인전에서는 “꿈꾸는 줄기 세포전”이라는 주제로 작품을 선보이면서 “양팔을 잃은 나는 줄기세포가 빨리 연구되어 손상된 신체가 재생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기도 하였는데, 이번에는 “조형물이 되는 꿈을 꾸다” 라는 주제로 보다 깊은 바람을 담은 예술적 지향성을 지속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기와 자신에 관련된 대상에의 인식을 피하거나 숨기려 하지 않는, 그리고 극복하면서 깊어진 내면의 깊은 성찰을 미학적 성취로 대신하려 한다.
김 작가는 작품 속에서 손과 관련된 시각요소들을 담아내고 있다. 손의 다양한 형태들, 손가락의 모양, 손가락 마디, 지문의 모양, 그리고 손의 형태를 한 기계적 이미지를 통하여 오랫동안 추구해온 “손”이라는 주제개념을 시각적으로 해석하고 작품으로 재현하였다.
김 작가는 자기가 이루고자하는 꿈이 실현 가능하기를 기대하거나 기원하고 있는데, 그의 작품들은 한결같이 “꿈꾸는 구조물”, “꿈을 향하여”, “꿈꾸는 미술관”, “꿈은 교류한다”, “창공에 꿈이 있다”, “공구는 꿈꾼다” 나아가,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신념을 담아 작품을 그려내고 있는데, 이는 그의 생애를 건 긴 여정의 기도와도 같다 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의 작품들은 지나치게 뜻과 목적이 그대로 드러나기 보다는 예술적 승화가 이루어져 표현되고 있다. 또한 이런 작업은 그림을 통해 드러남으로써 단순히 주문이나 기도의 의미보다는 작품의 경향이나 작가의 독특한 화풍으로 살아나고 있으므로 매우 다행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런 결과는 50년의 예술 활동을 통해 쌓인 내공이면서, 다양한 삶에의 인식과 통찰의 단면을 내포하는 성숙의 결과라 할 것이다.
김 작가에게 “꿈”은 그대로 “꿈”이다. 상상이나 관념적인 것이 아닌 현실에 기반한 명백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런 “꿈‘을 시각적 조형미를 통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각적 실체를 제시하듯 화폭으로 재현하고 있는데, 이런 꿈의 대상들은 꽤 다양하게 변형되어 나타나고 있다. ”꿈꾸는 이정표“, ”이정표의 꿈“, ”공구의 꿈“, ”꿈꾸는 탑“, ”꿈꾸는 들녘“ 등과 같이 직접적이거나 은유적으로 꿈을 대비하거나 대유(代喩)하면서 손과 연관된 개념이나 연상이미지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녹색 초원이 끝없는 지평선까지 이어져 있고, 두 손은 역동적인 느낌으로 자유롭게 움직이는 모습을 통해 손으로 해낼 수 있는 삶의 방향이나 가능성에의 암시를 연상하게 하거나(꿈꾸는 이정표), 동명의 또 다른 작품에서는 도구인 듯 ’기계(사물)‘로 시각화한 ‘손’형태의 조형물이 멀리 바다로 향하는 금빛 로드(road)가 곧게 뻗어 있는 길가에 세워져 있다. 붉은 기운이 감도는 하늘은 마치 새로운 조짐을 예고하는 듯 고조되어 있는데, ‘바다’로 향하는 길을 안내하는 이정표를 부각하여 강조한다. 작가에게 의미있는 대상이거나 특정한 상징일 수 있는, 그 ‘바다’는 길의 끝, 산 뒤쪽으로 감추어 있는 듯 짙은 청색으로 그려져 있다.
작품 “꿈을 향하여”는 짙은 청색의 바다가 펼쳐진 해변에 솟아있는 “손”의 조형물을 통해 “꿈”을 향한 자신의 갈망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작가의 고향 부산의 바다는 “빛의 바다”였고, 이상과 동경의 대상이며, 그를 향하는 접점이거나 출구였을 것이다. 자기 꿈의 실현이 가능하도록 길을 열어주는 관문이기도 하며, 꿈의 실현을 시작하는 출발점이었을 것이다.
여러 의미를 담고 있는 바다를 중심으로 작가는 손의 조형물을 연계하여 수다스럽지 않게, 감정을 씻어내며, 담백하게 자신의 갈망을 담은 꿈을 담아내고자 한다. 이렇게 바다는 그의 감성을 안아 들이며,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바람을 은연중에 내 비치고 있다.
작품 “꿈은 시련을 견뎌낸다”에서는 살이 없이 뼈마디뿐인 손이 눈 덮인 벌판에 솟아있다. 하늘은 옅은 구름이 낀 상태이지만 맑고 푸르며, 구릉이 진 벌판은 눈으로 덮여있으니 한 겨울임을 알게 한다. 따라서 세찬 겨울바람에 깃발이 날리 듯 뼈마디뿐인 손이 바람결에 휘어져 쏠리고 있다. 단조롭고 절제된 이 시각적 표현이 주는 이미지에 눈물이 난다. 지나치지 않아도 충분히 전달되는 춥고 고통스런 시각언어를 이리 담백하고 냉정하게 그려내는 작가의 심정 또한 예사롭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불어 작품의 이면에 담겨있는 극복과 강인함의 메시지는 그야말로 “고통의 언어”가 아니고 무엇인가라는 반문을 야기한다.
작품 “공공의 안녕을 기원하는 문”은 커다란 손의 조형물을 주된 표현대상으로 삼았다. 손으로 할 수 있는 여러 행위들과 반대로 할 수 없게 된 대비의 의미도 있을 것이며, 다수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도가 어렵지 않게 다가오니 작가의 절실하면서도 간절한 바람이 매우 평이하게 표현되고 있는데, 이런 방식은 오히려 독자들을 가슴 찡하게 할 것이다.
김 작가에게 철들기 전인 어린 시절에 겪은 불행한 기억을 극복하며 꾸게 된 꿈이란 상상하기 어려운 위대한 자기 극복이나 혁신노력을 필요로 하였을 것이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는 자신의 책 “몽상의 시학”에서 유년시절을 향한 몽상에 대해 말한다. “기억은 심리적인 폐허의 영역이며 추억의 골동품이다. 우리의 유년시절은 모두 다시 상상되어야 한다. 그것을 다시 상상하게 되면 우리는 고독한 어린이에 대한 몽상의 삶 자체 속에서 그걸 되찾을 가능성을 갖게 된다.” 그리고 “고독 속에서 꿈을 꿀 때 어린 애는 한없는 존재를 알았던 것이다. 그의 몽상은 단순한 도피의 몽상이 아니었으며, 그것은 비상(飛上)의 몽상이었다.”
김 밝은터 작가의 꿈(몽상)은 ‘고통의 언어’가 담겨있으되 상상력의 씨앗을 살피면서 현실의 고통을 ‘순수한 생명력’으로 표상하는 행복한 연금술을 펼침으로서 김 작가 스스로뿐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도 아름다운 몽상을 기대하게 한다. 이렇게 하여 김 작가가 어린 시절 겪었던 고통의 기억은 새로운 몽상(꿈)을 꾸게 한 순간으로부터 ‘도피’가 아닌 ‘비상’의 몽상이었을 것이며, 그로부터 50년 동안 그의 몽상이 만들어낸 조형의 미학, 그것들이 지금 “조형물이 되는 꿈을 꾸다.”에서 아름답게 표상되고 있는 것이다. (강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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