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서웨이 셔츠를 입은 남자”
현대광고의 아버지, 데이비드 오길비가 만든 광고
"The Man in the Hathaway shirt", 이 광고는 단지 사진 한 컷의 지면광고에 불과하지만, 광고사에 획을 긋는 중요한 유산으로서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광고 천재가 만든, “브랜드 이미지 광고”의 효시로서 마케팅 컨셉트(Marketing concept)를 적용한 선진적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의 표본이라 할 만하다.
20세기 최고의 광고인으로 불리는 데이비드 오길비David Ogilvy(1911~1999)가 1951년 9월에 제작하여 “뉴요커NewYoker”지에 게재한 이 광고는 무명의 브랜드인 “해서웨이Hatherway 셔츠”를 일약 업계의 유명 브랜드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아직은 광고계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던 오길비를 스타 광고인으로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오길비가 동료와 함께 1948년 광고회사(Ogilvy & Mather)를 설립한 지 3년 후의 일이다. 세상의 일은 이렇게 성공의 과정에서 특별한 스토리를 품고 있는 법이지만, 실제로는 잘 알려지지 않은 비결이라든가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데이비드 오길비는 영국태생으로 옥스퍼드대를 중퇴한 후 호텔 보조 요리사, 주방용품 외판원 등으로 지내던 중 런던의 한 광고회사에 취업을 하게 되는데, 그가 외판원으로 일하며 경험하고 터득한 마케팅 판매기법에 대하여 쓴 책 “아가쿠커 판매의 이론과 실제(Theory and Practice of Selling the AGA cooker)”라는 책이 포춘지에 소개가 되면서 그 회사에 스카우트된 것이었다. 그는 광고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되면서 광고의 선진국은 미국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결국 미국을 선망하게 되어 꿈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게 되었다. 그러나 자신의 조건에 대해 자신감이 부족했던 오길비는 평소 존경하고 있던 레이먼드 루비캄Raymond Rubicam이 사장으로 있는 광고회사 Y&R(Young & Rubicam)의 입사를 도전하는 대신, 조사회사 갤럽연구소에 선택하게 되는데 그가 27세 때인 1938년이었다. 갤럽Gallup에서 3년간 일한 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워싱턴에 있는 주미영국대사관에서 정보분석관으로 전쟁이 끝날 때까지 근무하였고, 그 후엔 3년간 필라델피아의 농장에서 농사짓는 일을 하게 된다. 이런 특이한 이력을 가진 오길비였으나, 갤럽연구소에서 3년간 근무하는 동안 400여건이 넘는 조사업무를 담당하면서 시장조사와 소비자심리연구에 대한 노하우Knowhow를 확립하게 되었으며, 사실과 원칙에 입각한 시장과 소비자에 대한 연구의 중요성을 터득한 경험을 바탕으로, 1948년 2명의 동료와 함께 6천 달러를 투자하여 자기의 광고회사(Hewitt, Ogilvy, Ben Son & Mather, 1년 후 Ogilvy & Mather로 사명 변경)를 설립하고 광고계에 본격적으로 입문하게 된다.
오길비는 시장조사를 매우 중요시 하였다. 따라서 언제나 소비자 중심의 광고를 만들고자 하였고, 소비자에 의해 인식되는 제품의 개성이나 제품이미지를 특히 중요하게 여겼다. 그는 광고를 통해 소비자에게 제품의 개성이나 고유한 이미지를 심어주려고 하였으며, 이는 오늘날 브랜드 자산가치를 평가하는 핵심적 요소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처럼 오길비는 당시 소비자 중심적 마케팅의 개념이나 소비자심리를 이용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기본 베이스Base가 확립되기도 전에 이런 개념들을 제안하고 활용한 선각자였는데, 소비자행동 중심의 마케팅에 대한 학문적 토대의 정립이나 체계적인 연구 분위기조차 조성되기 전의 일이었다.
“해서웨이(Hathaway) 셔츠”는 1837년에 창업한 매우 긴 역사를 지닌 회사로서 남북 전쟁 중에 군복을 만들어 납품한 적이 있기는 했지만, 광고 한번 해본 적이 없는 무명의 작은 회사에 불과하였다. 1951년 이 회사의 사장 ‘일러튼 제트Ellerton Jette’는 광고예산 3만 불을 준비하여 오길비를 찾아왔다. 그리고 유명 셔츠회사들의 등살에 치어있는 자신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광고를 제작해 줄 것을 요청하면서, 광고제작에 관여하거나, 뒷날 회사가 커지더라도 다른 대행사로 옮기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을 전하며 오길비를 설득하였다. 이런 호의적인 제안에 오길비는 최선를 다하여 광고기획을 하였을 법하다. 결국 상기한 “해서웨이 셔츠를 입은 남자”라는 concept의 광고는 단지 “NewYorker”지에 1회 광고했을 뿐인데 1주일 만에 셔츠 재고는 완판이 되었을 뿐 아니라 그 해 매출은 전년 대비 3배의 성장을 기록하게 된다. 그리고 타임, 포춘, 라이프 등 잡지에 이 광고에 대한 분석 취재기사가 실리면서 마케팅 효과가 배가되었으며, 오길비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 광고 집행를 통해 오길비가 챙긴 수익은 불과 3천 달러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오길비는 이 광고를 만들기 위하여 제품연구를 철저히 하였으며, 광고제작에 필요한 concept추출을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와 함께 18개에 달하는 광고concept를 정리하였고, 결국 선택한 것이 “The Man in the Hathaway shirt”였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 광고를 통해 오길비의 광고적 혜안이 명확히 드러나고 있다고 하였다. 즉 부유하고 귀족의 풍미가 느껴지는 중년 남자에게 특별한 스토리를 부여하고자 한 것인데, 이 남자에게 검은 색의 안대를 착용하게 하면서 이를 보는 소비자들로 하여금 궁금증을 불러일으킬 단서를 제시한 것이다. 광고의 copy에서는 제품설명을 제외하고는 ‘검은 색 안대를 착용한 모델’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이 없었지만, 소비자들은 스스로 스토리를 만들어 가면서 상상력을 확대하며 빠져드는 효과를 유발한 것이다. 이처럼 “왜 한쪽 눈을 잃게 되었을까?”에 관한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만들어 내는 것은 소비자의 몫이 되면서 평범할 뻔 했던 광고에 상호작용적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깊은 충성심을 유발하는 광고로 승화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치명적인 시각적 요소는 소비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한편, 점잖고 고귀한 이미지의 vip고객의 치수를 재는 남자를 등장시켜 속세적 배경에 대한 대중의 관심까지 유발하는 장치를 visual에 담아냄으로써 한 컷만으로 여러 의도를 전달하는 효과를 달성하고 있다. 오길비는 이렇게 경쟁과 비교했을 때 특별한 차별성이나 브랜드의 정체성 요소가 부재한 제품을 단지 ‘검은색의 안대’를 통해 “해서웨이”만의 고유하고 명확한 브랜드 이미지를 정립할 수 있도록 하였다.
현재에도 그렇지만 남자의 셔츠를 선택하고 구매하는 소비자는 주로 부인이라 할 수 있으므로, 부인들의 마음속에 간직하는 “셔츠를 입은 남자”의 이미지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다면 자연스럽게 “고상하면서 야성적인 그러나 특별한 인생스토리”가 있는 남성에 대해 관심을 가질 것이며, 이를 자신의 남편에게 이입하고자 하는 내면의 욕구가 있을 것으로 오길비는 생각하였다. 그런데 오길비는 이런 소비자의 욕구가 있다는 것을 이미 시장조사를 통해서 확인한 객관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하였던 것이다.
오길비는 이 광고를 통해 브랜드 이미지의 정립과 브랜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첫 걸음을 세상에 선보였다. 광고는 제품구매를 설득하려는 것이지만 브랜드 이미지를 정립하고 브랜드 가치를 높이려는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활동이라는 것을 이미 오래 전에 스스로 터득하고 이를 선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늘 사실과 원칙에 충실한 광고를 제작하고자 하였다. 광고를 위한 광고를 철저히 경계하였고, 또한 “광고는 재미보다 설득을 위한 것이다. 무조건 팔아라.”라고 강조하기도 하였다.
오길비는 1950년대의 마케팅이 생산중심의, 또는 판매중심의 마케팅 개념이 주를 이루던 시절에 소비자를 이해하고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하는 소비자중심의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을 주창하였으며, 상품이 아니라 (상품을 소비하는) 사람에 초점을 맞춘 광고를 최초로 세상에 보여준 선각자였다. 제품이란 곧 소비자의 개성을 표현하는 것이며, 제품의 품질만이 아닌 소비자의 제품에 대한 인식이 또한 중요하므로 소비자의 인식 속에 제품과 브랜드 이미지를 연결하고자 하였다. 이처럼 오길비는 마케팅concept의 시장단계가 도래하기 훨씬 전부터 이를 터득하고 있었던 것이 새삼 놀라울 뿐이다. (강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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