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세상엿보기7.

“우리의 1984년은 오웰의 <1984년>과 다르다.”

by 강화석

“20세기 최고의 광고”, 애플 매킨토시 론칭 TV광고 <1984>


“1월24일 애플컴퓨터가 맥킨토시를 소개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1984년이 오웰의 ”1984“와 왜 다른지 알게 될 것입니다.”(You'll see why 1984 won't be like "1984").”

1984년 1월22일, 제18회 수퍼볼경기 중계방송에서 매킨토시 런칭 TV광고가 방영되자, 세상 사람들은 충격적인 스타일의 광고에 열광하였다. 단 한번 60초짜리 TV광고가 나갔을 뿐인데, 그 자체로 뉴스거리가 되었고, 미국방송 3사와 로컬방송국 50여 개사가 앞 다투어 취재함으로서 광고를 광고해주는 효과가 발생하였다. 이런 방식의 커뮤니케이션 효과를 예상하기라도 하였을까? 스티브 잡스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하거나 엄두가 나지 않았을 총체적인 커뮤니케이션 전략으로 돈으로는 환산하기 어려울만한 대단한 성과를 일으킬 수 있었으며, 미국 광고전문지 <애드버타이징 에이지>는 “20세기 최고의 광고”라고 높이 평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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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킨토시 TV광고 장면(광고화면 캡쳐)

스티브 잡스는 1976년, 21살에 동네 형인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애플컴퓨터회사”를 창업했다. 워즈니악이 개발한 세계최초의 PC인 컴퓨터 기판을 본 잡스가 워즈니악에게 사업을 제안하고 애지중지하던 오토바이를 판돈으로 아버지의 카센터 한 구석에서 시작하였다. 그리고 “APPLE I”에 이어 “APPLE II”를 출시하며 기업을 공개하였고 20대 초반에 이미 촉망받는 기업가로서 애플을 키워 나갔다.

애플이 창업되고 8년의 세월이 흐른 1984년 1월, 그는 세상에 ‘매킨토시’라는 또 하나의 혁신제품을 선보이게 되는데, 예의 치밀하고 극적인 방식으로 세상 사람들을 충분히 놀라게 할 만하였다. 물론 그만의 스타일이듯 주위사람들과의 갈등도 마다하지 않으며 평범하지 않은 과정을 거친 후였다. 그 과정에서 펩시콜라 사장이며 마케팅의 귀재라는 “존 스컬리”를 전문경영인으로 영입하였을 뿐 아니라, 세계적인 거대기업 IBM과 맞설 당차고 대범한 전략을 준비하며 세상 사람들에게 감탄을 일으키는 것은 그만의 방식에 해당하였다.

당시 애플이 개인용 컴퓨터를 세계 최초로 출시하고 PC시장을 개척하였지만, 컴퓨터업계의 거대기업인 “IBM”이 PC시장에 후발로 참여하면서 하드웨어는 “IBM”이, 소프트웨어인 OS는 “MS(마이크로 소프트)”가 공조하여 PC시장에 영향력을 확장하려는 중이었다. PC시장상황은 1982년 애플II 판매량 약 28만대, IBM PC 24만대에서, 1983년 애플II 42만대, IBM PC 130만대로 판매격차가 애플에 불리하게 벌어지는 중이었으며, <비즈니스 위크>는 “퍼스널 컴퓨터의 승자는 IBM”이라는 제하의 표지기사를 게재하면서, “확실한 시장의 판도변화뿐 아니라 시장지배력에서 경쟁은 끝이 났다. IBM은 시장진입 2년 만에 컴퓨터 시장의 26%를 점유하고 있고, 1985년이면 IBM은 전 세계 시장의 절반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었다.

스티브 잡스가 새로 개발한 개인용 컴퓨터 “매킨토시”는 명령어를 통한 구동방식을 ‘그래픽 유저인터페이스(GUI)’방식으로 변경하였고, 마우스(MOUSE)를 채용한 혁신적인 컴퓨터였으며, “애플I”, “애플II”, “애플III”, “애플 리사”에 이은, 스티브 잡스와 애플의 아이콘인 “혁신”에 어울릴 법한 기종이라 할 만하였다.

스티브 잡스는 소비자와 소통할 획기적인 “광고”와 인상적인 “제품런칭 프레젠테이션”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매킨토시 개발일정을 관리하는 가운데, 제품출시 3개월 전인 1983년 10월에는 사내 Sales 컨퍼런스를 개최하며 MS의 “빌 게이츠”를 초대하여 연설을 시켰다. 이때 빌 게이츠는 맨킨토시를 자신이 본 컴퓨터 중에서 “컴퓨터의 새로운 표준을 창조할 혁신적이고 사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유일한 컴퓨터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스티브 잡스는 런칭광고에 기존 방식을 뛰어넘는 강력하고 획기적인 메시지를 담고자 하였다. 이에 따라 스티브 잡스는 광고회사 “치아트/데이(Chiat/Day)”와 TV광고를 기획하면서 조지오웰의 소설<1984>에서 모티브를 가져왔고, 영화 “블레이드 러너”를 감독한 영화감독 “리들리 스콧Ridley Scott”에게 연출을 맡겼다. 광고는 거대경쟁사인 “IBM”을 <1984>에 나오는 Big Brother로, “매킨토시Macintoshi”는 구원자로 묘사하면서, 매킨토시를 대변하는 햄머를 든 젊은 여성(영국의 운동선수출신이며 배우인 아냐 메이어Anya Major)이 Big Brother가 연설하는 장면의 대형 모니터를 파괴하는 영상을 통하여 “애플”은 강력한 경쟁브랜드인 “IBM”에 대적할 유일한 회사이며, 매킨토시가 새로운 변화를 주도할 것이라는 상징적인 내용을 전달하려고 하였다.

매킨토시의 제품출시 이틀 전인 1984년 1월22일 제18회 수퍼볼대회 3Q초반, LA레이더스가 워싱턴 레드스킨스을 상대로 터치다운을 성공 시킨 후 광고가 나가기 시작하였는데, 갑자기 중계 TV화면이 어두워지면서 햄머를 든 젊은 여성이 무장한 군인(사상경찰)들을 따돌리고 실내로 뛰어 들어와 ‘BIG Brother’의 연설을 비춰주는 대형화면을 향해 햄머를 집어 던져 박살을 내는 장면은 TV를 보던 미국인 9,600만 명과 전 세계인들 모두를 충격에 빠지게 하였다.

“매킨토시” 광고는 대 히트였을 뿐 아니라, 그해 수퍼볼 챔피언인 “LA레이더스”보다 더 주목을 받았다. 또한 미국의 3대 방송국(NBC,ABC,CBS)와 지방 50여개 방송국에서의 취재프로 덕분에 마케팅 효과는 이루 측정할 수도 없을 정도였다.

불과 서른도 안 된 청년기업인 스티브 잡스는 이렇게 세상을 충격에 빠지게 할 만한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고 있었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였을까? 그에 걸맞을 반전 역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런칭 후 1년여 만에 매킨토시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참담하게 변하였다. 매킨토시 광고와 스티브 잡스가 직접 실시한 신제품 발표 프레젠테이션으로 제품런칭은 성공적으로 이루어 졌으나, 시장의 반응이 호의적이지는 않았다. 매킨토시는 지금까지 접해 본 적이 없는 최초의 선도적인 제품이었고, 분명 뛰어난 제품이었으나 완벽하진 않았다. 제품에 대한 가치인식에 비해 고가였고, 시장의 욕구보다 앞서 나갔으며, 제품의 기능에서도 결함이 있었기에 판매는 부진하였다. 결국 제품 출시 1년여가 지난 시점에서 매킨토시는 실패로 판정이 났다. 이것은 시장의 욕구보다 앞서 시장진입이 이루어 졌고, 제품의 기능발휘에 대해 제대로 예상하지 못한 부분 등 최초의 제품이 겪을 수 있는 시행착오에 해당할 한계이기도 하였지만, 개발책임자로서 스티브 잡스는 이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스티브 잡스가 감당할 대가는 적지 않았다. 단순한 실패의 과정이 아니었다. 자신이 창업하였고, 대주주이며, 이사회 의장임에도 불구하고 스티브 잡스는 애플로부터 퇴출당하는 불운의 주인공이 되었다. 1985년 가을의 일이었으며, 스티브가 30세가 된 때였다.

그는 자신의 애플 주식을 단 1주만 남긴 체 모두 처분하고 애플을 떠났다. 그만큼 실망과 분노는 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1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시간은 변화가 충분히 발생할 만큼 짧지 않았으며, 그 사이 애플과 스티브 잡스의 운명은 뒤바뀌어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새로 창업한 컴퓨터회사 ‘NeXT’와 3D컴퓨터 애니메이션 회사 ‘픽사PIXAR’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는 반면, 애플은 망하기 직전의 형편없는 상태로 추락해 있었다. 이렇게 천재와 범재간의 갈등은 결국 신의 뜻대로 흘러간 셈이 되었다. 자기를 쫓아낸 배신자들이 다시 찾아와 읍소하는 것을 거절할 수 없었던 것은 애플에 대한 애정뿐 아니라 그 이상의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1997년 연봉 1달러를 받기로 하고 12년 만에 다시 애플로 컴백하였으며, 이후의 애플스토리는 모두가 다 아는 바와 같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만큼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기업가를 다시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는 생전에 누구보다 혁신과 창의성으로 세상을 혁신한 인물이며, 디지털 시대를 이끈 선도자로 평가 받고 있다. 그의 자서전을 집필한 전기작가 “월터 아이작슨”은 스티브 잡스를 “우리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하나라고 표현하면서, “독창성, 상상력, 지속가능한 혁신의 아이콘이며, 단지 제품의 진보를 일궈낸 것이 아니라 소비자들이 미처 필요를 생각하기도 전에 완전히 새로운 기기와 서비스를 개발해 냈다.“고 전기에서 적고 있다.

스티브 잡스는 56세 때인 2011년 가을에 세상을 떠났다. 신은 자신이 창조한 인간의 재능을 시기라도 하듯 특별한 천재기업인을 비교적 이른 나이에 데려간 셈이다. 그러나 그가 창업하고 유산으로 남긴 애플은 여전히 세계최고의 기업으로, 그가 새롭게 선보였던 창의적인 제품과 애플의 기업정신은 여전히 지금도 세계인에게 귀감이 되고 영향을 주고 있는 중이다.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지금까지 애플은 지속가능한 성공을 이어가며 세계시장과 소비자에 깊은 영감과 가치를 제공하고 있고, 기업의 경제적 가치는 언제라도 세계 최고인 회사로서의 존재를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러면서 자기가 개발한 제품들을 세상에 처음으로 소개하는 PRESENTATION만큼은 반드시 직접 하였던, 검은 색 터틀넥 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무대에 서있는 스티브 잡스의 모습도 변함없이 많은 이들의 그리움 속에 아련히 자리하고 있다는 것도 분명해 보인다.(강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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