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진달래꽃」에서 ‘이별’을 읽는 가을에
가을이 한창이다. 곧 단풍이 절정에 이를 것이고, 계절의 아름다움은 쇠락의 길로, 또 무언가의 마지막으로 이를 것이다. 이런 식이면 그 흔한(?) “이별”의 정서를 감당해야 할 일도 머지않았다. 옛날 시들을 뒤적여 보다가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진달래꽃은 봄에 피는 꽃이니 가을과는 뜬금이 없다면, 서정주의 「국화옆에서」는 제격이겠지만, 시를 읽는 것이 굳이 계절에 연연해야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진달래 꽃
나보기가 역겨워/가실 때에는/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진달래꽃/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놓인 그 꽃을/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보기가 역겨워/가실 때에는/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진달래꽃」 전연, 시집 『진달래꽃』 1925년)
김소월 지음, 더스토리(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2025년 3월28일 [사진:교보문고]
김소월(1902~1934)의 본명은 정식이며, 소월(素月)은 호이다. 평북 구성면에서 태어나 정주 오산고등보통학교와 배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으며, 일본 도쿄상과대학을 1년 다니다 관동대지진 당시 중퇴하고 귀국하였다. 1925년 김소월의 시집 『진달래꽃』이 발간되었고, 이 시집에 포함된 「진달래꽃」은 1922년 7월 <개벽> 25호에 발표한 시이다. 「진달래꽃」은 수미상관(首尾相關, 처음과 끝이 서로 이어져 통함) 형태의 4연 12행으로, 7.5조의 전통적 리듬을 담고 있는 민요시에 해당한다. 한국의 민요시는 김소월의 「진달래꽃」이 처음 발표되면서 등장한 것으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백철」이 김소월을 “스승(김억)의 사장(師匠)의 세계를 넘어서 소월 자신의 독자적 세계를 발견했고 특히 민요적인 서정시인으로서 천재(天才)를 보인 작가”(조선신문학사조사,1948)로 평가하였을 뿐 아니라, 김소월에 대해서는 우리 민족의 대표적 현대 시인으로, “향토적 체취를 풍기는 전통적 시인(조연현)”, “진달래꽃을 통해 구체적으로 겨레감정에 호소한 시인(유종호)”, “한국현대시사의 표준이며 역사(김용직)” 등 다양하게 소월의 문학적 가치와 위상을 부여하고 있는데, 그의 「진달래꽃」은 오늘날에도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로 선정되고 있는 중이다.
우리는 「진달래꽃」을 “이별”을 노래한 시로 이해하고 있으며, 이별 중에서도 남녀 간의 사랑 후에 발생하는 “이별”이므로 사랑과 관련된 “이별”의 시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사랑은 속절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꽤 될 것이다. 그러나 ‘영원한 사랑’ 운운하기도 하지만 이는 기대와 염원의 수사(修辭)이고 헛한 도그마dogma일 뿐이라 말한다면, 대꾸할 가치조차 없다고 내치려는 이들도 많으리라. 사랑은 종류가 다양하고 범위가 넓기도 하니 쉽게 운을 떼기도 어렵지만, 이별을 사랑의 반대쯤으로 여기려는 생각이 결코 틀리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곧 남녀 간의 죽고 못 사는 사랑타령에서 결국 울고불고 이별하며 그 사랑의 끝으로 이별을 경험하거나 떠올린다면, 곧 그것이 신파(新派)의 한 장면에 불과해도 우리는 두 상대어의 연관성을 깊이 인식한다. 그러하니 사랑은 그 자체로 고귀하고 영원한지는 모르나, 개별로 들어가면 단속적(斷續的)이고 일시적이며 속절없다는 것에 동의하는 것이 그리 어렵다고는 못할 것이다. 따라서 「진달래꽃」에서의 이별장면은 사랑이 속절없음을 느끼기가 어렵지 않으면서도 애절하다 못해 애가 끓는다. 이런 “이별”을 떠올리면서 오히려 이들의 사랑이 이 정도였나 하는 생각을 해볼 수도 있으니, 끝나버린 사랑에 대한 이별장면이 과거형의 사랑일지라도 다시 사랑의 힘을 되새기게 한다.
그렇다면 원래 사랑자체는 영원하고 고귀한 것이지만, 개개의 사랑들은 이렇게 속절없고 단속적인 것이었을망정, 부분적이라도 그것들의 완성이 쌓여 만들어가는 견고한 퇴적층 같은 것이었나 생각해 보면서, 결국 사랑의 귀결은 이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완성으로 매듭지어지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까지 미치게 된다. 아무튼,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이별의 노래임을 누구라도 알 수 있고, 확고하게 굳어진 것이니 이의 부정은 불가하지만, 그동안 우리는 이런 이별을 당연시하면서 그저 교과서에 등재(登載)된 고전적 현대시의 내용으로서 남 말처럼 보기도 했으나, 다시 곰씹어 봄으로써 때늦은 감이 있더라도 합당한 수사요, 가당한 표현인지는 되짚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나를 보기 역겨워 떠나는 그 밉상일 당신을 위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변의 진달래꽃을 뿌려놓을 테니, 내 가슴속 여리디 여린 순(純) 속살 같은 연분홍빛의 그 꽃들을 사뿐히 즈려(짓무르게) 밟고 갈 테면 가라는 끔찍한 간청(懇請)을, 아무리 그 이별의 사유가 무엇일지라도, 또는 떠나는 이가 모질고도 다급한 상황일지라도 어디 발걸음이야 뗄 수 있겠는가?
이 시의 주인공은, 이리 생각해보니 한편 찌질하고 끈질긴, 모지리와도 같은 짓을 하면서 자신의 끝나지 않은, 아니 끝낼 수 없는 사랑의 뒤끝을 토로하는 것이 아닌가! 할 수도 있다. 사람의 마음이란 변덕스럽고 솔직하지 못하니, 그것은 사람의 존재 자체가, 또는 자아(自我) 자체가 깔끔한 솔로solo가 아니라 멀티플multiple 자아라서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랬다저랬다, 조변석개(朝變夕改)뿐 아니라 수시로 달라지는 속마음의 변화무쌍한 행태를 보면, 자신이라 해도 도무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맥락이라면 아직은 이별자체가 이뤄지기 전인 진행과정 같다는 생각도 든다.
실제, 「진달래꽃」에서의 이별은 결정된 이별을 노래하는 시가 아니다. 시의 내용으로 보면 아직 “이별”이 발생한 상태는 아님을 알 수 있다. “가실 때에는/ 가실 길에” 등의 표현은 아직 이별의 순간이 온 것은 아니며, 단지 이별을 염려한 것이라 할 수 있고, 따라서 이별을 두려워하며, 이별을 결코 원치 않음을 강조하는 것이니, 이는 이별의 아픔을 노래하는 “이별의 시”가 아닌 여전히 사랑을 지속하거나 사랑을 간절히 바라는 “사랑의 시”라는 역설적인 생각을 해볼 수 있다. 그렇기에 시인 홀로의 심정으로는 다 끝난 사랑일지언정 사랑완결의 극치라 할 이별을 통해, 나의 사랑, 우리의 사랑을 마무리하거나 정리해두고자 한 것이라 할만하다. 따라서 이 시는 이별의 극치를 보여준 멋지고 아름다운 남자,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사랑이란? 아름답고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가? 와 더불어 이별이야 말로 사랑의 완성을 위해 빠져있던 조각이며, 사랑은 이별과 함께하며 하나가 되는 서로 반대의 조합이라는 생각에 까지 이르게 한다. 우리가 아는 음양의 조화, 즉 땅과 하늘, 낮과 밤을 떠올리듯, 남과 여의 서로 다르나 하나의 조합으로 완성되듯이, 사랑과 이별도 그런 조합쯤으로 여기면서 갈라서면 불가할 상호작용적 대응의 두 기운쯤으로 상승적인 인식을 해보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관점과 인식에서 들어다 보면 볼수록 김소월은 뼈 때리는 슬픔을 겪으면서, 기꺼이 자신을 다 내어주며 이별의 극치를 사랑의 빛으로 승화시키려 한 것이라는 추정적인 인식에 이르게 한다.
김소월은 사랑을 생각하고 사랑을 누리는 상황에서도 이별의 아픔을 염려하였던 것인가? 엄격한 유교주의자인 조부의 손에 키워진 소월은 14살에 결혼을 하였고, 현대식 교육을 받기는 했지만, 일본 유학을 중도포기하고 돌아온 이후론 생활의 곤궁함을 겪기도 하였다. 그의 삶은 불안정하였고, 고통스러웠다. 오래도록 류마티스를 앓았으며, 치료를 위해 아편을 맞기도 하였다. 그는 아내에게 사는 것이 힘들다고 토로하기도 하였는데, 그래서 자신이 바라고 원하는, 사랑하는 것들로부터의 이별을 염려하였기에 이런 심정에서 이별을 떠올린 것이었을까? 현재 주어지는 그 나마의 사랑과 행복조차 떠나가는 것을 염려하였기에, 이런 안타까운 심정으로 처절한 마음을 담은 영변의 약산에 가득 핀 진달래꽃을 바라보면서 자기 스스로 뿌려놓은 삶의 길 위의 진달래꽃이 으깨지는 통한의 슬픔을 피 토하듯, 그러나 너그러운 체념을 생각하며 스스로 떠나가는 자신을 사랑하는 연인에 빗대어 이입한 것일까. 결국 소월은 33세의 한참 나이에 세상을 등지고 떠나갔다. 사인은 뇌졸중이었지만, 오랜 지병을 치료하기 위해 과다 복용한 아편 탓이라고 세상 사람들은 말하기도 하였다.
비평가와 학자들은 김소월의 문학적 세계와 「진달래꽃」을 세밀히 연구하면서, 소월은 여러 시인들의 시와 관념을 탐색하며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이 김소월의 시 세계나 「진달래꽃」의 고유성과 가치에 부정적이거나 불리한 영향을 주었다는 의견으로 들리지는 않는다.
아무튼 가을은 나이든 중노인에게는 이런 저런 잡생각으로 머릿속이 분주한 계절임이 분명한 듯하다. (강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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