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에 비해 전투기와 여객기 같은 비행기는 영화의 소재로 스펙타클한 장면과 시각적 파괴력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존재로서, 주인공과 함께 관람객의 시선을 사롭자는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고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설정이 있어도 관객 입장에서는 적당히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우리 기억 속에 비행기를 소재로 한 영화로는 얼마 전 개봉한 “1986 탑건의 속편 탑건: 매버릭, 2001년 9.11 테러 당시 마지막으로 추락한 여객기의 마지막 순간을 다룬 플라이트 93, 테러리스트에 의해 공중 납치된 미국 대통령 전용기가 배경인 에어포스 원, 실제 버드 스트라이크로 비상 착륙한 여객기를 다룬 허드슨 강의 기적, 기체 이상으로 긴급 회항하는 여객기를 위해 승무원과 지상직원들이 손발을 맞추어 무사히 착륙시키는 해피 플라이트” 등 외에도 무수히 많다.
대부분 해외 영화이나 국내 영화에서도 가끔 볼 수 있는데, 대표적인 작품으로 1960년대 개봉한 ‘빨간 마후라’와 1986년 개봉한 ‘탑건’을 흉내 내다 말아먹은 2012년 개봉한 졸작 ‘R2B: 리턴 투 베이스’가 있다.
‘R2B: 리턴 투 베이스’ 이후, 10년 만에 비행기를 소재로 하는 영화 ‘비상선언’이 오는 8월3일 개봉을 앞두고 대대적인 흥행 몰이에 나서기에 적잖은 기대를 갖고 시사회를 다녀왔다.
아래는 개봉하는 영화마다 극찬을 아끼지 않는 영화를 다루는 기자, 평론가들과 달리 항공분야를 다루는 입장에서 본 지극히 주관적인 관람평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코로나19 팬데믹 속에 있는 우리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고자 하는 감독의 제작 의도가 보이는 작품으로 각자 역할에 맡는 연기를 펼친 배우들에 비해 옥에 티는 현실감 없는 비행상황이다.
2020년 코로나19 속에 제작되어 2년 만에 개봉하는 영화 ‘비상선언’은 주연 및 조연 배우 모두가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들이 출연하고 있다,
바이러스 테러를 당한 하와이 호늘루루행 스카이코리아 501편 B777-200ER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베테랑 형사 송강호, 과거 비행사고로 비행 공포증을 가진 전직 기장 이병헌,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가진 국토부장관 전도연, 바이러스에 감염된 기장 대신 조종간을 잡은 부기장 김남길, 빌런으로 등장해 기내에서 죽음을 맞은 테러범 임시완, 비상상황에서 조종석과 기내를 오가며 승객과 동료 승무원을 먼저 챙기는 객실사무장 김소연,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장으로 현실적인 판단을 내려야만 하는 박해준까지 극중 배역에 맞는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옥에 티는 B777-200ER여객기가 30,000피트 전후 고도에서 900Km/h로 비행 중에 조종간이 밀리면서 30도 이상의 각도로 급강하뫄 360도 선회 비행을 거쳐 3,000피트에서 기체가 기적적으로 회복되는 장면을 시작으로 엔딩까지 보여주는 비현실적인 비행상황이다.
오늘날 제트 여객기 중에 가장 강력한 출력을 가진 B777의 엔진이 정상출력을 내고 양력이 살아있고 조종 불능 상태가 아니라면 급강하 중이라도 기체가 회복되지만, 영화 속에서 구현한 비행 상태라면 음속을 돌파해 스톨에 빠졌을 가능성이 높다. 이외에도 실제 상황이라면 조종사들을 열번도 더 비상선언과 더불어 메이데이까지 가는 비행 장면이 다수 등장한다.
고속열차 KTX가 소재인 재난영화 부산행의 비행기 버전이 연상되는 영화 ‘비상선언’의 제목인 비상선언(Emergency Declaration)은 비행기가 운항 중에 조종 불능, 납치, 테러, 응급환자 발생 등으로 정상운항이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무조건적인 착륙을 요청하는 비상사태를 뜻한다.
연료 부족 또는 기체에 기술적인 문제로 더 이상 비행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기장은 지역 관제소와 항로 주변에 운항 중인 다른 비행기에게 비상선언을 통보하고 가장 가까운 공항으로 비상착륙을 진행한다.
접근 공항과 이착륙 중인 다른 비행기는 비상선언을 선언한 비행기를 우선적으로 착륙시키기 위해 협조를 하게 된다.
현실과 차이가 나는 비행장면을 제외하면 비상선언은 2시간이 넘는 상영시간 동안 절체절명의 상황 속에서 하늘과 땅에서 함께 재난에 맞서는 이들의 모습을 리얼하게 그려내며 코로나19 속에 우리의 현실과 맞물려 공감을 갖게 하는 작품이다.
극중 돋보이는 부분은 재난의 무대인 B777 조종석과 기내 세트로서 회항을 위해 선회하는 장면에서 실제 상공에서 태양빛이 기내에 비치는 각도까지 시각적 사실감을 더한 장면이다.
배우들과 함께 주인공인 B777 여객기는 미국의 항공기 제작사 보잉의 중장거리용 대형 기종으로 대당 가격은 4,000억원 내외이다.
이륙중량제한으로 승객과 화물을 오프-로드한 경우가 거의 없는 강력한 성능을 가진 B777은 운항 승무원들의 무한 신뢰를 받고 있는 기종으로 보잉 엔지니어들이 연구개발비용 제한없이 만든 마지막 기체이다.
B777-200부터 B777-200ER, B777-300, 777-300ER, B777-200LR 여객기와 B777F 화물기, 최신형 B777-8과 B777-9까지 구성된 모델의 지금까지 판매대수는 2,000대에 이르며, 우리 항공사들도 60대가 넘는 기체를 도입 운용중이다,
중장거리용 기종답게 최대 항속거리는 B777-200의 9,200Km부터 B777-200LR의 17,395Km이며, 비상선언에 등장한 B777-200ER은 14,310Km이다.
주요 배경인 여객기의 운항 및 객실 연출에 필요한 지원은 티웨이항공에서 협조했으며, B777 면장을 가진 기장과 객실승무원들이 배우들의 교육을 담당 했다.
코로나19 감염자가 다시 증가하는 우리나라 상황에 입으로만 방역을 외치는 무책임의 끝을 보여주는 질병관리청장과 달리 영화지만, 바이러스로부터 공중과 지상에 있는 국민들을 살리기 위해 끝까지 노력하는 국토부장관 전도연에게서 오늘날 우리가 바라는 책임자로서 헌신적인 모습과 감동을 느낀다.
한편, 그녀가 허무하게 서있는 장면에 블러 처리된 B777 여객기는 누가 보아도 아시아나항공 기체인데, 항공사 협조없이 사용된 것으로 파악된다.
후문에 따르면 제작 초기 아시아나항공에 협조 요청이 들어왔으나, 2013년 OZ214편 추락사고의 동일 기체이기도 한 자사 여객기가 극중에 테러 당한 여객기로 비쳐지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우려되어 거절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