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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테나 Aug 06. 2019

일본을 한방에 보내버린 존재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 원폭을 투하한 특급 배달부, B-29 슈퍼포트리스

지난 8월 6일은 지구 역사상 최초로 원자폭탄이 전쟁에 사용된 지 74년이 되는 날이다. 인류 최초로 원자폭탄의 공포를 경험한 나라는 과거 주변국에 침략 전쟁을 일삼고 오늘날까지 적반하장의 자세와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위험속에서도 방사능 올림픽을 개최할려고 하는 일본으로, 태평양전쟁을 끝내기 위한 극약처방으로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했다.

인류 최초로 원자폭탄을 제대로 맛본 일본은 1945년 8월10일 신처럼 모시는 일본천황의 무조건 항복 의사와 함께 항복을 선언함으로 태평양전쟁은 막을 내리게 되었고, 동시에 한반도도 일제 식민지에서 벗어나 광복을 맞이하게 됐다.

미국 대통령 해리 트루먼에 의해 ‘리틀 보이와 팻 맨’이라는 애칭을 가진 2개의 원자폭탄은 히로시미와 나가사키에 2번의 투하 작전에 걸쳐 이루어졌으며, 이를 일본으로 가져다 투하한 특급 배달부는 미국 보잉의 B-29 슈퍼포트리스(이하, B-29) 전략폭격기이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작전은 의외로 미 공군이 아닌 미 육군의 제509 혼성전대에 의해 이루어졌다. ‘에놀라 게이’로 불리는 B-29를 직접 조종해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폴 티비츠 육군 항공대령이 지휘관으로 있던 제509 혼성전대는 1944년 12월 미국 유타주 웬도버 육군 항공기지에 원자폭탄 투하를 목적으로 창설된 부대이다.

제509 혼성전대의 핵심전력은 제393 폭격비행대대로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지폭탄 투하 작전 수행을 위해 총 15대의 B-29를 보유하고 있었다.

특별한 임무 수행을 위해 조종사, 항법사, 폭격수 등 비행요원들은 유럽전선 등에서 실전경험을 쌓은 베테랑들로 구성했으며, 이들은 한번도 해보지 않은 최초의 원자폭탄 투하를 위해 9,000m 고도에서 폭탄 투하와 투하 후, 급선회와 급강하를 통해 충격파에서 안전하게 벗어나는 훈련을 거듭했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본토 융단폭격의 주인공인 B-29는 강력한 4개의 프로펠러 엔진이 장착된 전략폭격기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속에 자주 등장하는 대형폭격기 B-17 플라잉 포트리스보다 2배 이상의 이륙 중량을 가진 B-29는 미국 군용 및 민간 항공기 제작사 보잉에서 제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과 태평양 전쟁 전후로 가장 성능이 우수한 폭격기였던 B-29는 1942년 초도 비행 이후에 4,000대 가까이 생산되어 전장에 투입된 기체이다.

크기는 전장 30.17m, 전폭 43.05m, 전고 8.46m이며, 연료 및 무장 탑재 시에 60톤에 이르는 기체를 최대고도 30,000ft 이상, 최대속도 574Km, 순항속도 350Km로 비행하게 해주는 2,200마력의 출력을 가진 4기의 라이트 R-3350-23/23A 복열 18기통 공랭식 성형 엔진을 장착하고 있다.

최대항속거리는 9000Km, 전투 작전반경 5,320Km, 탑재 무장은 작전에 따라 9톤에 이르는 각종 폭탄을 폭탄창에 탑재하며, 기체 위아래와 후미에 12.7mm M2 브라우닝 중기관총과 20mm M2 기관포를 기체 위아래와 후미에 장착하고 있다.

당시 4,000대 가까이 생산되었지만 세월이 흘러 현재 남아있는 기체는 20대가 조금 넘으며, 우리나라에도 1대가 경남 사천항공우주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진주만공습으로 본격 시작된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본토 융단폭격을 위해 반짝이는 은빛 동체가 상공에 나타나면 기겁을 하던 일본에게는 지금도 B-29는 세계 최초로 핵폭탄을 경험한 나라로서 공포의 상징으로, 연합군과 우리에게는 자유의 날개로 기억되고 있다.


[사진: 사천항공우주박물관, 보잉, 미 공군, 미항공우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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