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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굿즈 Jul 09. 2022

해녀 할머니-목숨 걸고 일한다는 건

자아성찰 글

여느 날처럼 해안가 근처를 산책하고 있는 날이었습니다.

마침 물질을 마치고 돌아오시는 해녀 할머니들이 뭍으로 올라오고 계셨습니다. 호기심에 근처에 서성여봤지만 먼발치에서 바라만 볼 분이었습니다. 말을 건넬 용기도 그 무엇도 아니었거든요. 그분들께는 지나가는 귀찮은 존재였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깐의 서성이는 동안에도 해녀 할머니의 카리스마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느낌이 강렬해서 오랜 시간이 지나도 항상 이렇게 기록으로 남겨두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느낀 강렬함이 어쩌면 조무래기는 가라 하는 할머니의 무언의 압박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뭍에는 할아버지들이 할머니들을 픽업하기 위해서 나와계셨습니다.

조금 서성이다 작업실에 돌아왔습니다.


며칠 뒤 해녀 할머니들 그림을 그리면서 느꼈습니다. 숨을 참으며 해야 하는 일의 고단함,  무거운 돌을 등에 지고 오리발을 사용하여 몸으로 물과 싸워 전복을 채취하는 일을 상상해봤습니다. 상상만 해도 숨이 찼습니다. 목숨을 걸고 일한다는 건 어떤 것일까 잠시 생각해봤습니다.


<물질을 마치고> 그림 강혜림


목숨 걸고 일을 한다는 건 내 목숨의 책임을 진다는 이야기 같습니다.

내 목숨에 책임을 진다... 일을 하면 숨 쉬고 생존하고 산다? 해녀 할머니의 상황에 빗대어 이야기를 꺼냈는데 중의적인 표현이 된 것 같습니다. 진짜 물속에서 하는 움직임과 사무실이나 작업에서 하는 움직임을 빗댄 것 같은데 죽지 않고 살기 위해 그러한 움직임을 나는 하고 있는가...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일은 사람들에게 필요하기도 하고 선택사항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기 싫다 해도 일을 하는 이유는 안 했을 때보다 더 이득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 탓, 직장 탓해도 하는 것이 더 이득이 있고 그것을 더 원하기 때문에 일 하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저에게 있습니다. 대학원 졸업 이후 약 십여 년을 이렇다 할 뚜렷한 직업 없이 지내왔던 것 같습니다. 어떤 때에는 취직해서 회사에도 다니고, 때때로 이런저런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생활비를 벌고 일이 없을 때에는 부모님께서 주신 용돈으로 충당하며 살아왔습니다. 내 생존을 부모님께 맡겨왔습니다. 물속에서 생존을 위한 움직임을 이 사회에서 나는 제대로 해온 걸까요. 아마도 물 밖에서 편한 숨을 쉬며 엄마, 아빠가 따오시는 뿔소라나 받아서 세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잠수 한 번 제대로 해보지 않았네요. 왜냐 숨 참으면 힘드니까.

그림을 그렸을 당시만 해도 이런 생각은 못했습니다. 바닷속에서 일하는 고단함 정도의 감상에 젖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글을 쓰면서 한층 생각을 정리해 보게 되었습니다. 목숨 걸고 해 보는 일이란 것, 해볼 만한 일일까요? 할머니들이 전복, 뿔소라, 성게알 딴 걸로 제주시에 집도 사고 자식들 공부시키고 하셨던 것처럼 저도 일해서 집도 사고 돈도 많이 벌고 하면 좋을까요? 제가 위에서 말했듯 이건 저의 선택의 문제입니다. 저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많이 부족한 자아성찰의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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