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21세기에 만학 이야기를 전하는 20세기 샐러던트
8. 탁구 한번 치실까요?
몽테스키외는 일찍이 “인간이란 우정을 그리워하는 것”이라고 했다.
모든 욕망, 모든 사업, 모든 사상, 자기의 표현에는 뜻 맞는 벗과 따뜻한 우정으로 돌아가는 것이 상징이다. 남성과 여성 사이의 교섭도 우정의 하나이다. 또 애정은 인간 사이의 마음에서 따뜻한 교통이다. 자연을 사랑하는 것도 예술을 사랑하는 것도 같은 애정의 발로라고 한다. 인간 감정의 최초의 발로는 곧 사랑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삶 속에서 꿈을 가지며 살아가고 있다. 또한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도전하기도 한다. 나는 중요한 순간마다 어떤 선택을 했었는가?
지난날을 돌아보며 회한에 잠길 때도 있지만 슬며시 미소가 떠오르는 추억도 있다. 내가 중학생 때, 단발머리 소녀이던 1960년대 학교에선 선후배 간에 동생과 언니를 맺는 이상한 열풍이 유행하고 있었다. 나는 농구, 배구, 탁구, 다양한 운동을 했었다.
규율부로 활동하면서 숫기 없는 선머슴애 같은 나에게도 어느 날, 무용하는 예쁜 후배가 찾아와 언니가 되어달라는 게 아닌가, 집에서 장녀로 태어난 나에겐 동생들이 줄줄이 있었지만, 수업이 끝나면 “언니!”하고 부르며 교실로 찾아오는 후배가 사랑스러워서 전에 느껴 보지 못한 색다른 우정을 느끼곤 했던 것 같다.
s 자매끼리 정이 뚝뚝 묻어나는 손 편지를 주고받거나 같이 음악 감상도 하고 탁구를 하면서 여가를 즐기기도 했는데,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로 소통하는 영상시대에서 돌아보니 전설 같은 풍경이다.
어느 날, 탁구장에서 호리호리한 소년이 다가와 당당한 목소리로,
``저하고 탁구 한번 치실까요? “하고 게임을 신청했다. 그 후로 탁구장에선 언제나 그를 만날 수 있었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실력을 겨루곤 했다. 나보다 탁구를 잘 치면서 코치도 해주었다. 그때 당시에는 특별한 놀이 문화가 없어서 농구나 탁구로 활동을 했다.
나는 후배인 동생 생일날에 초대를 받고 처음으로 집을 방문한 날, 그 집에 탁구 치던 소년이 있는 게 아닌가, 깜짝 놀라게 하였다. 알고 보니 그가 소녀의 오빠였다.
보기와는 다르게 그는 중학생이 아니고 고교생이었다. 나는 내 또래 중학생인 줄 알고 반말을 했던 게 다소 미안하게 느껴졌다.
그의 부모님은 시각장애인 농아학원을 운영하시는 부유한 집안답게 거실엔 피아노까지 있었다. 그때 함께 연주하며 합창했던 고전의 선율들은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고 귓가에 맴돈다. 물 건너온 미제노트, 만년필이나 노트 같은 선물도 종종 받곤 했다. 그의 누나는 독일에 성악으로 유학 중이었고, 동생은 무용으로, 예술가 집안이었다. 그는 동생과 함께 피아노를 치면서 클래식과 가곡으로 들려주곤 했었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유원지에 여러 곳을 거닐며 산책도 했다.
어느 날, 공직에 계신 아버지의 전근 발령으로 우리 집은 아버지의 임지를 따라 이사하게 되었는데 떠나기 전, 농아학원 옆의 숲 속에서 그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자기는 장래에 과학자가 되고 싶다며 나더러 자신의 한쪽 팔이 되어달라는 것이었다. 수줍은 프러포즈였을까? 나는 그 말이 의미하는 깊은 뜻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우리는 헤어졌고, 전학을 가면 꼭 편지하자던 약속도 흐지부지 지켜지지 못했다.
동심초, 가고파, 돌아오라 소렌토로, 가곡이나 쇼팽 이별도, 등이 어디선가 들려오면 꿈같은 그 시절이 생각난다. 그 소녀는 특기를 살려 무용가가 되었을까, 그 오빠는 자신이 꿈꾸던 과학자가 되었을까?
인터넷에서 이름을 검색해 보면 훌륭하게 성공해서 사회에 이바지한 모습들을 분명히 찾을 수 있을 것 같지만 난 이쯤에서 추억의 페이지를 덮기로 했다. , 미완성의 소나타가 더욱 아름답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