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을 담고 인생을 담는 추억’

부제 : 21세기에 만학 이야기를 전하는 20세기 샐러던트

by 강효숙

24. 나이가 드는 것은

인간은 시간을 거스를 수 없다. 나이는 누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며, 그 흐름을 멈추려는 시도는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나이가 듦의 의미를 다양한 방식으로 경험한다. 어린 시절, 나이는 기대와 동의어였다. 조금 더 나이가 들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성인이 되어서는 사회적 책임과 성취가 나이와 연결되었고, 그 무게를 감당하며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고 여겼다. 그러나 일정한 시점을 지나면, 나이란 이제는 성취의 척도가 아니라 삶의 본질을 이해하는 계기로 변화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단순한 숫자의 증가가 아니다. 그것은 경험이 축적되고, 감정이 정제되며, 인식의 폭이 넓어지는 과정이다. 젊음의 시절에는 순간의 감정에 휘둘리고, 사소한 일에도 큰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사물을 꿰뚫어 보는 눈이 생기고, 삶의 소음 속에서도 중심을 잡는 법을 배운다. 세상을 향한 시선이 더욱 유연해지고, 사람의 허물을 이해하며, 무엇이 중요한지를 선명하게 구별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나이가 든다는 것은 손실과 마주하는 일이기도 하다. 몸은 예전 같지 않고, 익숙했던 사람들이 하나둘 곁을 떠나며, 세상은 점점 낯선 모습으로 변한다. 그러나 이 모든 변화 속에서도 지혜는 깊어지고, 삶의 본질적인 가치를 깨닫는 기회가 주어진다. 젊음은 가능성의 시기지만, 노년은 완숙함의 시기다. 한때는 인생의 목표를 향해 질주했다면, 이제는 삶을 음미하고 성찰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나이 듦이란 단순한 세월의 무게를 견디는 것이 아니라, 그 무게 속에서 삶의 결을 정제하는 과정이다. 그것은 잃어가는 일이 아니라, 깊어지는 일이다. 젊음이 찬란한 불꽃이라면, 나이가 든다는 것은 그 불꽃이 잿더미로 사그라드는 것이 아니라, 은은한 온기를 머금은 숯이 되어 오래도록 지속되는 일이다.

젊은 날에는 세상을 향해 무언가를 증명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살아간다. 바쁘게 움직이며, 끝없는 목표를 세우고,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끊임없이 현재를 희생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알게 된다. 세상은 언제나 불완전하고, 삶은 완벽할 필요가 없으며, 모든 것은 흘러가는 것이 자연의 섭리라는 사실을.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는 비로소 깨닫는다. 관계의 소중함을, 사소한 순간들이 쌓여 인생을 만든다는 것을, 무엇보다 ‘지금’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순간임을, 젊은 날에는 미래를 꿈꾸느라 현재를 놓치지만, 나이가 들면 현재를 붙잡음으로써 비로소 삶이 온전히 내 것이 된다.

흔히 나이가 들면 모든 것이 사라진다고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잃어가는 것이 아니라, 채워가는 것이다. 세월은 몸을 무겁게 하지만, 마음은 가벼워진다. 세상의 소음이 줄어들수록, 내면의 목소리는 더욱 선명해진다.

결국, 나이가 듦이란 지혜와 평온이 어우러진 완숙함의 순간이다. 그것은 청춘의 화려함을 지나, 삶의 본질과 만나는 길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나이 드는 것이 아니라, 나이 듦의 가치를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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