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21세기에 만학 이야기를 전하는 20세기 샐러던트
29. 따뜻하고 위로가 되는 공간
‘공간은 단지 머무는 곳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감싸 안는 ’또 하나의 생명‘이다.’
어떤 공간은 들어서는 순간 마음이 내려앉고, 어떤 공간은 아무리 화려해도 영혼이 위축된다. 공간은 말이 없지만,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할 수 있다.
아름다운 조명, 향기로운 차, 소박한 꽃 한 송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 공간을 준비한 사람의 ‘마음’이다. 진심 어린 배려는 공간을 통해 그대로 전해진다.
위로되는 공간은 비판보다 수용이 있고, 고요한 침묵 속에도 온기가 흐른다. 실수해도 괜찮고, 말없이 앉아 있어도 불편하지 않은 곳, 그곳이 진정한 ‘안식의 공간’이다.
우리가 그리워하는 공간은 물건 때문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시간과 사람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주방, 고요한 도서관, 오래된 성당. 그 공간 안에는 우리는 자신을 회복했고, 어쩌면 하나님을 조용히 만났는지도 모른다.
가장 귀한 공간은 머무는 자리가 아니라, 그 자리에 머무는 사람의 태도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각자의 일상에서 누군가에게 따뜻한 공간이 될 수 있다. 말 한마디, 미소 하나, 조용한 배려 하나가 그 사람의 하루를 바꾸는 공간이 될 수 있다. 집이든, 교회든, 내 마음이든 누군가의 마음을 녹이는 ‘머무르고 싶은 자리’를 지을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그 삶으로 위로를 남기고 있어야 한다.
살다 보면 누구나 버거운 현실 앞에 기대고 싶어질 때가 있다. 불확실한 선택의 기로, 깊은 상실감, 설명되지 않는 외로움 앞에서 우리는 묻고 싶다. ‘내 마음을 어디에 둘 수 있을까. 잠시라도 기대어, 편히 쉴 수 있는 자리는 어디에 있을까.’
청년은 속도를 강요당하면서도, 방향을 잃고 방황을 한다. 요건, 취업, 외로움, 비교의 늪 속에서, 말하지 못한 상처는 더 깊어진다. 이들에게 필요한 공간은 답을 주는 곳이 아니라, 들어주는 자리다. 따뜻한 말 한마디, 커피 한 잔의 여유, 괜찮아, 너 잘하고 있어 ‘라고 말해 주는 목소리. 그 공간은 사람일 수 있고, 책일 수 있고, 진심은 가장 따뜻한 공간이다.
중년은 누군가의 부모이자 자녀이고, 일터의 버팀목이자 가정의 중심이다. 너무 많은 역할 속에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기 쉽다. 이들에게 필요한 공간은 ’ 내가 나일 수 있는 자리다. 부담 내려놓고, 한 사람으로 불릴 수 있는 작은 독서실, 고요한 산책길, 또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아도 공감받는 친구와의 대화다.
노년은 흔히 정리의 시기로만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삶의 깊이를 통찰할 수 있는 유일한 시기다. 그러나 때로는 잊힌 느낌, 쓸모없음에 대한 두려움, 몸의 쇠약함 속에서 오는 존재적 허기가 찾아온다. 이들에게 필요한 공간은 존중받고,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다. 오래된 교회 벤치, 손주가 손잡아주는 그 순간, 그리고, ‘내가 살아온 삶이 누군가에게 의미가 되었구나’라는 확인. 내 이야기를 귀 기울여주는 사람이다.
‘공간이란 단지 머무는 곳이 아니라, 누군가가 나를 온전히 받아주는 태도다.’ 이 시대는 빠르게 변하지만, 사람은 여전히 따뜻한 공간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잠시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또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어주는 존재이다. 사랑이 있는 곳이 공간이 되고, 침묵 속의 공감이 피난처가 되며, 아무 말 없어도 곁에 있어 주는 존재가 성전이 된다.
‘나는 누군가의 피난처였을까. 내 곁에 머물렀던 이들이 잠시라도 마음을 누이고 숨을 고를 수 있었다면, 그것이야말로 내가 남긴 가장 따뜻한 공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