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21세기에 만학 이야기를 전하는 20세기 샐러던트
31. 자기를 발견하는 것
살아간다는 것은 ‘나’라는 미지의 대륙을 조금씩 탐험해 가는 일이다. 어린 시절에는
어른이 되면 모든 것이 명확해질 줄 알았다. 내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이 나에게 어울리는지. 하지만 나이를 먹어도 ‘나 자신’은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
도리어 세상이 던지는 정답지 속에서 내가 점점 희미해지는 것을 경험한다.
‘자기를 발견한다’라는 말은 요즘 시대에 더 절실하다. 과거에는 정해진 틀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미덕이었고, 개성을 주장하는 사람은 종종 튀는 사람으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우리는 개성을 강조하고, 자기만의 삶을 요구받는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고 있어야만 한다. 정체성이 곧 경쟁력인 시대다. 그러나 정체성은 발견이 아니라 형성의 과정이다.
어느 날 아침에 문득 ‘나는 이런 사람이야.’ 하고 깨닫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시도와 실패, 부끄러움과 충돌 속에서 조각처럼 맞춰가는 것. 우리는 일상의 평범한 경험 속에서, 혹은 고통의 터널을 지나며 비로소 자신을 향해 한 발짝 더 가까워진다.
나는 그림을 잘 그린다고 믿었지만, 그건 칭찬을 듣고 싶었던 욕망일 뿐일 수도 있다. 반대로 글쓰기에 자신이 없었지만, 내면을 표현하고 나누는 일이 결국 나를 숨 쉬게 한다는 걸 뒤늦게 깨달을 수도 있다. 재능은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 ’ 지속할 수 있는 어떤 일’ 속에서 자라난다.
자기를 발견하는 여정은 외로운 길이기도 하다.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어제의 나와 대화하며 걷는 길이다. SNS에서는 누구나 멋지고 단단한 정체성을 완성한 듯 보이지만, 정작 자신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나는 요즘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확신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조금은 안다. 타인의 시선보다 진실을 더 소중히 여기고, 편안한 길보다 의미 있는 길을 택하고 싶은 사람. 자기를 발견한다는 것은 어쩌면 자신이 되고 싶은 사람으로 나를 다듬어가는 길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나는 나를 탐험한다. 어제보다 솔직하게, 조금 더 용기 있게 살아가고 싶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이것이 인생의 시작이라면, 청년의 시간은 그 질문에 끝없이 답을 시도해 보는 시기다. 어릴 땐 장래 희망을 말하면 칭찬을 받았다. 하지만 청년이 되어 장래 희망을 말하면 곧 “현실을 좀 봐”라는 말이 돌아온다. 꿈은 꾸되, 너무 오래 꾸지 말라는 시대. 경쟁은 심하고, 방향은 모호하다. 어떤 길이 맞는지 알 수 없어 수없이 돌아가며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살아보는 모든 시도 속에서 자기 자신을 조각해 간다는 것을. 실패는 방향을 바꾸는 귀중한 신호이고, 비교는 진짜 나를 가리는 거울일 뿐이다. 뜨거운 열정도 좋지만, 때론 멈추고 나를 바라보는 시간이 더 나를 키운다.
청년의 불안은 ‘내가 누구인지’ 모를 때 생긴다. 하지만 지금은 몰라도 괜찮다. 중요한 건, 나에게 정직하게 살아보는 것이다. 그 진심이 결국 나를 나답게 만든다.
중년의 시간은 인생의 반환점이다. 어떤 선택은 이미 고착되었고, 어떤 후회는 돌이킬 수 없다. 가정을 위해, 생계를 위해 달려오느라 내가 누구인지 묻는 시간조차 사치였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거울을 보면, 낯선 내가 서 있다. 자기를 발견한다는 것은, 이미 살아온 인생의 조각을 다시 꺼내어 바라보는 일이다.
그것은 후회가 아니라 해석이다. 그 시절 내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왜 그 일에 열정을 느꼈는지를 성찰하며, 나는 내 안에 잊힌 나를 다시 만나기 시작한다. 이제는 용기가 조금은 생겼다. 이제는 사회의 기준만 따라가지 않고, 나의 내면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르고 싶다. 자기를 발견한다는 것은 늦은 일이 아니다. 그것은 두 번째 인생을 진심으로 살아가기 위한 첫 번째 시작이다.
노년이 된다는 것은 오랜 여정을 지나온 것이다. 수많은 역할을 해왔다. 부모, 배우자, 일터의 동료. 그러나 이제 나는 ‘그 모든 이름을 벗고 내 이름을 되찾는 시간’을 살고 있다. 나는 누구였는가? 어떤 순간 가장 나다웠는가! 돌아보면 나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은 크지 않았다. 다만 평범한 일상 속, 누군가를 따뜻하게 안아준 순간, 책 한 권에 눈물을 흘린 그 순간, 말없이 누군가의 손을 잡아준 그때. 그때가 가장 나다운 순간이었다. 자기를 발견한다는 것은 거창한 일이 아니다. 지금 이 나이에도 ‘나답게 살 수 있는 용기”를 잃지 않는 것이다. 삶이 끝을 향해 간다고 해서 내가 멈춘 건 아니다.
청년에게는 시작의 나침반이고, 중년에게는 방향을 되묻는 성찰이며, 노년에게는 나로 살아가는 마지막 자유이다. 시기마다 나를 찾아가는 여정은 다르지만, 공통된 진실은 하나이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나를 만들어가는 존재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