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을 담고 인생을 담는 추억’

부제 : 21세기에 만학 이야기를 전하는 20세기 샐러던트

by 강효숙

32. 삶의 열매

많은 부모는 말없이 가족을 위해 희생하며 살아간다. 자식을 키우고, 남편과 아내로, 때로는 며느리와 사위로, 때로는 오롯한 이름도 없이 누군가의 뒷모습으로, 그 모든 수고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삶의 뿌리를 내리는 시간이다.

자녀가 자라 성실한 사람이 되었다면, 누군가의 상처를 덜어줄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면, 그건 이미 삶의 열매를 맺힌 것이다. 내가 직접 받지 못했어도, 누군가가 나의 삶을 통해 열매를 따게 되었다면, 그것은 참된 열매이다.

열매는 화려한 꽃처럼 당장 보이지 않지만, 사계절을 견디고, 바람과 비를 통과한 나무가 맺듯, 삶의 열매는 인내와 시간 속에서 조용히 자란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삶은 언젠가 향기를 남긴다.

진실하게 살아온 사람은 내면의 평안이라는 열매를 얻는다. 그 평안은 가장 값진 인생의 열매 중 하나다.

자녀가 잠든 밤, 그 조그만 숨결 위에 올려두었던 나의 기도는 세상의 기준으로는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았지만, 그 기도의 무게만큼 아이는 자라고, 그 믿음의 씨앗만큼 아이의 삶엔 뿌리가 내린다. 나는 성공한 부모는 아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하나님 앞에서 내 아이들을 품고 그들이 사람답게, 하나님 뜻 안에서 살아가길 바라며 묵묵히 무릎 꿇었다.

그 기도는 누군가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노동이었지만, 사랑의 가장 순수한 형태였고,

믿음의 가장 깊은 실천이었다. 그리고 나는 안다. 내가 죽고 난 뒤에도, 내 아이들의 마음 어딘가에는 그 믿음의 향기와 기도의 체온이 남으리라는 것을.

삶의 열매란 결국, 우리가 남긴 기도의 깊이만큼 다음 세대가 흔들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뿌리가 되어주는 것. 자녀가 아플 때마다, 방황할 때마다, 무기력하게 침묵할 때마다, 조용히 방문을 닫고 무릎을 꿇었다. 눈물은 말을 잃은 기도가 되었고, 한숨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리는 간절함이 되었다. 밤새도록 등불만 켜놓은 채 하나님 앞에 앉아 있던 밤이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런 기도의 밤들이 때론 아무 응답도 없이 지나가는 것 같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눈물의 기도 위에 하나님의 손이 쉬지 않고 일하고 계셨음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은 우리의 조급한 시간보다 더 계획을 갖고 계셨다. 어떤 날은 무너진 아이의 자존감 위에 한 계단씩 올라서는 긍정의 믿음을 선물로 주셨고, 어떤 날은 지친 아이의 눈동자 속에 다시 웃을 용기를 심어주셨다. 하나님이 내 기도를 통해 세우고 계셨다는 것을.

거창한 유산도, 멋진 가르침도 아니었다. 하루하루 믿음으로 살아내려는 몸부림, 좌절 대신 붙들었던 긍정의 시선, 포기하지 않은 작은 희망의 말들. 기도는 눈물이지만, 하늘에 심는 씨앗이기도 하다.

삶의 열매는 ‘성공’이 아니라 의미이다. 열매는 ‘드러남’보다 묵묵함과 우리가 떠난 자리에 사랑의 흔적이 기억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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