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21세기에 만학 이야기를 전하는 20세기 샐러던트
33. 아직도 내 가슴에 설렘이 있을까?
주름진 내 모습, 익숙해진 고요, 조용히 흐르는 하루의 반복 속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청춘의 기억 속에서 수없이 많은 설렘이 있었다. 처음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보던 날, 장마 뒤의 햇살처럼 예고 없이 찾아왔던 감정, 어설프지만 진심이었던 고백, 그리고 실패 앞에서도 찬란했던 도전의 몸짓. 그 시절의 나는 마음이 먼저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생각은 늘 감정보다 느렸고, 가슴은 늘 설명할 수 없는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인생은 설렘보다는 책임과 인내를 요구하는 쪽으로 우리를 이끈다.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키우고, 삶을 관리하고 정돈해 나가는 과정에서 설렘은 감정이 아니라 사치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언제부턴가 나는 기대를 줄이는 법을 배웠고, 희망 대신 현실을 선택하는 법을 익혔다.
그것은 성숙이라 불리는 이름으로 감정을 포장한 일종의 훈련이었다. 요즘 들어 자주 그런 생각이 든다. 설렘이 없는 삶은 마치 향기를 잃은 꽃 같다는 생각. 우리는 삶이 주는 무게를 견디며 자신을 지켜내느라, 무너지지 않으려 애써 잊고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설렘은 새로운 사람만이 아니라 새롭게 바라보는 나 자신을 통해서도 피어난다. 하루의 햇살을 다르게 느끼는 감각, 익숙한 길을 걷다 갑자기 멈추어 서게 만드는 생각, 오래 접어두었던 책장을 다시 펼치는 마음, 가슴이 다시 움직이는 이 순간, 나는 깨닫는다. 설렘은 떠나간 감정이 아니라, 잠시 조용해졌던 내 감정의 숨결이었다는 것을.
수많은 계절을 건너온 지금, 나의 가슴 한쪽에는 여전히 말간 물결처럼 출렁이는 무엇이 있을까. 그것은 사랑일까, 꿈일까, 혹은 살아있다는 감각일까.
시간이 내 몸 위에 고요히 주름을 새기고, 세상의 소음들이 마음을 잠재워도 저 깊은 심연 어딘가에서 여전히 나를 깨우는 떨림이 있다면, 그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젊음이 지나간 뒤, 모든 감정이 희미해질 줄 알았다. 그러나 나이 든 지금, 나는 비로소 진짜 설렘이 무엇인지, 깊은 고요 속에서 뛰는 가슴이 얼마니? 귀한지 알아간다.
하나님께서 내게 생명의 호흡을 여전히 허락하셨다면, 아직 이 심장은 사랑을 기억하고, 오늘도 무언가를 향해 뜨거워질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 설렘은 젊음이 아니라 ‘소명’에서 오는 것일지 모른다.
삶의 굴곡마다 나는 기도했다. 무너지는 마음을 붙들고, 때로는 밤새워 울며, 자녀의 미래를 놓고, 가정의 어려움을 놓고, 간절히 부르짖던 시간이 있었다. 그때마다 놀랍게도 기도는 상황을 바꾸기보다 내 마음을 바꾸고, 내 영혼을 일으켜 세웠다.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며 나는 배웠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은 세상의 성공이나 소유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뜻을 신뢰하며 살아가는 작고도 묵직한 순종의 열매에서 온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 세월이 흘러 아이들이 각자의 길을 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깨닫는다. 내가 드린 기도와 헌신이 결국 믿음의 유산이 되어 자녀의 삶에 심어졌다는 사실을. 그 사실이 지금, 나의 가슴을 또다시 설레게 한다. 어릴 적 심장이 뛰던 그 설렘과는 다르지만, 지금의 설렘은 더 깊고, 더 성숙하며, 하나님 안에서의 감사와 감동으로 채워진다.
설렘은 나이와 무관하다는 것을. 내가 여전히 기도할 수 있고, 누군가를 축복할 수 있으며, 말씀을 묵상하며 눈물을 흘릴 수 있다면. 그 자체가 설렘의 증거 아닐까.
내 가슴엔 지금도 새로운 하루에 대한 기대가 있고, 작은 섬김에도 기쁨이 있고, 자녀의 앞날을 향한 중보의 기도가 있으며, 하나님이 나를 여전히 부르고 계신다는 거룩한 설렘이 살아 있다.
설렘은 젊음의 특권이 아니라, 신앙 안에서 진리를 살아낸 자의 유산이다. 나이 들수록 더 아름다운 설렘을 간직하며, 그 설렘이 곧 믿음이 되고, 그 믿음이 또다시 자녀에게 흘러가는 복이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