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간을 담고 인생을 담는 추억,

부제 : 21세기에 만학 이야기를 전하는 20세기 샐러던트

by 강효숙

81. 엄마의 눈물

엄마의 향기는 내 마음 깊은 곳에 스며든 삶의 뿌리다. 새벽마다 밥을 짓던 부엌의 따스한 쌀 냄새, 손끝에 배어 있던 빨랫비누의 순박한 내음, 여름날 마당 가득 퍼지던 구수한 된장 냄새 속에는 언제나 엄마가 계셨다.

그 향수는 내 어린 시절의 집과 같았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문을 열면 나를 맞이한 엄마의 목소리에 안도했고, 사랑을 느꼈고, 살아갈 힘을 얻었다. 하지만 지금 엄마는 침해로 요양원에 계신다. 낯선 공간,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엄마는 좀처럼 적응하지 못하시고 힘들어하신다. 우리가 면회를 하면 손을 잡으며 ‘우리 집에 가자’ 하시는 말씀에 가슴이 미어진다. 혼자 남겨진 현실이 엄마를 헤아릴수록 나 또한 괴롭다.


평생 자식들을 지키며 살아오신 엄마에게, 요양원의 문턱은 마치 버려짐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자식들이 자신을 이곳으로 보낸다는 생각에, 엄마의 가슴속에는 알 수 없는 원망과 서운함이 켜켜이 쌓여 있을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저항하시고, 때로는 눈물로 말 없는 호소를 하신다.


나는 그 눈빛 속에서 엄마의 소리 없는 절규를 본다. 그것은 단순히 병에서 비롯된 반항이 아니라, 자식 곁에 있고 싶은 엄마의 본능이자, 끝내 지워지지 않는 사랑의 방식이다. 엄마는 이곳에서 적응하지 못하시고, 힘들어하신다. 간병인의 손길이 아무리 정성스러워도, 엄마의 마음은 여전히 우리 곁에 머물러 있다.


엄마의 간절함과 서운함은 말로 다 하지 않아도 눈빛에서 진해지고, 작은 몸짓 속에서도 드러난다. 때로는 저항하시고, 울음을 감추지 못하신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것이 단순한 원망이 아님을. 그것은 여전히 자식 곁에 있고 싶은, 엄마의 마지막 사랑의 표현이다. 엄마의 그 눈물을 볼 때마다 가슴이 저려온다. 자식 된 도리에서 엄마를 이곳에 모실 수밖에 없었던 현실이 더욱 쓰라리게 다가온다. 엄마의 서운함을 달래지 못하는 우리의 무력함이, 부끄러운 자화상처럼 내 마음을 흔든다.


한 여인의 삶이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번역될 때, 그 삶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철저히 타인을 위한 여정이 된다. 엄마는 6남매라는 작은 우주를 품고, 그 우주를 위해 자신의 젊음과 꿈을 소리 없이 내어주셨다. 그 어떤 철학책도, 그 어떤 고전 문학도 가르쳐주지 못하는 참된 ‘인간학’을 나는 엄마의 삶에서 배웠다.

엄마는 언제나 담대하셨다. 한 번도 삶 앞에서 주저앉지 안 의셨다. 가난과 고난이 몰려와도, 여섯 자녀를 품에 안고 웃으며 밥상을 차리셨다. 어둠이 짙게 드리운 순간에도 믿음을 놓지 않으셨고, 당당하게 우리를 키우셨다.


그 길 위에서 엄마는 사랑을 헌신으로 당신의 젊음을 자식의 미래로 바꾸셨고, 당신의 고단한 손길을 자식의 힘으로 빚어내셨다.


내 자식이라면 보낼 수 있을까? 그렇게 냉혹한 선택 앞에서 나는 부끄럽다. 우리는 자신을 위로하며 ‘당연한 결정이었다’ 긍정의 언어로 포장해 보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끝내 지울 수 없는 죄책감이 남아있다. 엄마를 떠올릴 때마다, 그 소리 없는 울부짖음이 들려와 나는 오늘도 눈물을 삼킨다.


처음 엄마를 모시고 요양원에 드나들던 시절, 우리 집에서 함께 1박 2일을 보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걷지도 못하시던 엄마가 TV 앞에서 가요무대를 보며 흥겹게 춤을 추듯 몸을 흔드셨고, 식사도 잘하시며 소녀처럼 웃으셨다. 머리 염색을 해드리니 거울을 보며 뿌듯해하시던 그 모습은 내 마음에 따뜻한 빛처럼 남아있다. 그 추억이 남아서인지, 외출할 때마다 ‘너희 집에 가자’ 하시는 엄마의 말씀이 더욱 절절히 다가온다. 그러나 이제는 전혀 걷지 못하시고, 휠체어에 의지한 채 조용히 앉아계신다. 그 모습 하나하나가 가슴을 저며오고, 내가 드릴 수 있는 것은 손을 잡아드리는 것뿐이다.


엄마의 삶은 강인함과 사랑의 연속이었다. 여섯 남매를 길러내시고, 당당히 자신의 길을 살아내신 분. 지금은 한없이 작아지신 그 모습 앞에, 우리는 오히려 더 큰 깨달음을 얻는다. 그것은 곧 우리의 미래이자, 우리가 모두 걸어갈 길이기 때문이다.


나는 엄마의 눈물 속에서 인간의 존엄과 삶의 진실을 본다. 그 눈물은 원망이 아니라, 여전히 우리를 향한 사랑의 증거일 것이다. 엄마의 침묵 속에 담긴 그 울음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다짐한다. 남은 시간만큼은 엄마 곁에 더 가까이, 더 따뜻하게 머물리라.


내 삶 또한,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따뜻한 빛으로 남을 수 있기를 바란다. 엄마의 눈물은 슬픔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배움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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