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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사 직전의 심리와 행동

7살 소녀 죽을 뻔한 이야기

by 강현숙

일곱 살 여름이었다.

네 살 위인 오빠는 친구들과 큰 냇가로 가서 수영도 하고 물고기도 잡으며 신나게 노는데 난 아직 어리다고 밖으로 혼자 나가는 걸 부모님은 허용하지 않으셨다. 오빠들 노는 것이 부러웠던 철부지는 어떻게든 냇가로 놀러 가고 싶었다. 놀러 가고 싶다는 간절함이 어린것에게 꾀를 내도록 했다. 세명의 동생이 있는 일곱 살짜리 소녀는 마루 위 대야 속에 들어 있는 매일 빨지 않으면 안 되는 동생의 기저귀가 눈에 띄었다. "바쁜 엄마를 위해 기저귀를 빨아 오겠다면 엄마도 허락하실 거야" 스스로 기특한 생각이라고 자찬하면서 대야에 비누까지 챙겨 들고나가면서 "엄마 기저귀 빨아 올게요" 했다. 손님들과 엄마가 팔아야 할 물건을 흥정하고 있던 엄마는 "바쁘니까 안에서 놀고 있어"라고 대답하시며 신경도 안 썼다. 어쩌면 한 번도 기저귀 같은 건 빨아본 적이 없는 일곱 살 딸이 기저귀대야를 들고 냇가로 혼자 갈 것은 생각도 안 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소녀는 "기저귀 빠는 것은 착한 일이니까. 나중에 아셔도 잘했다고 하실 거야"라는 흐뭇한 생각으로 오빠들이 수영하고 있을 큰 냇가로 갔다. 사실 그때 일곱 살짜리의 눈에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크게 보였다. 기저귀가 담긴 대야도 제 팔길이 보다 컸고 기저귀조차도 제 이불만큼이나 컸다. 첫 번째 기저귀를 주무르다 헹군다고 펼쳤을 때 너무 길어서 감당이 안되어 당황해하다가 간신히 수습하고는 두 번째 기저귀부터는 접힌 채로 주무르다 동생의 노란 똥이 접힌속에 남아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다 빨아졌다고 생각하며 대야에 담았다. 엄마가 아닌 누구라도 어른들이 보았다며 어이없을 빨래를 마치고 오빠들이 수영을 마치고 돌아가기 전에 자신도 얼른 물놀이를 하다가 돌아가려는 생각으로 치마를 걷어 올리고 냇물에 들어갔다.


오빠와 오빠의 친구들은 아래쪽 깊은 곳에서 놀고 있었다. 서로 물장구를 치고 소리를 지르고 큰소리로 웃는 오빠들이 너무나 신나 보였다. 그곳에 끼고 싶었지만 엄마가 허락하지 않은 동생의 출현에 오빠도 분명 잔소리를 할 것 같아 그냥 혼자 놀기로 했다. 종아리까지 잠긴 물결은 말할 수 없는 희열을 주었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지만 물속의 다리는 시원하기만 했다. 쫄쫄 흐르며 종아리를 간질이는 느낌에 기분 좋아진 일곱 살 소녀는 아무도 없는 곳에 물세례를 퍼부우며 놀았다. 엄마가 물조심 하라던 말씀을 왜 하셨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렇게 재밌는데... 후훗~" 잠시 돌아본 오빠들의 모습은 더 재미있어 보였다. 가슴팍까지 몸을 담그고 물장구를 치고 헤엄을 쳤다. 물 위를 두 팔을 휘저으며 둥둥 떠 있는 모습이 재미있어 보였다. 소녀도 헤엄을 쳐보기로 했다. 슬그머니 엎드려 몸을 띄워 보려 했지만 땅바닥을 짚은 손을 올려도 몸은 뜨지 않았다. "물이 얕아서 그런가?" 생각하며 조금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엉덩이까지 잠겼다. 흐르는 물살에 몸이 기우뚱하는 것을 수영할 만큼 떠 오르는 것이라고 느낀 소녀는 물 위에 엎드렸다가 물속으로 처박혀 물만 실컷 먹었다. 겨우 중심을 잡고 일어나 "컥컥" 억지로 삼켜진 물을 뱉으려 했지만 이미 넘어간 물은 다시 나오지 않았다. 콧물만 '팽' 풀어버린 후 오빠들의 몸이 가슴만 보이던 것을 기억하고 그만큼 들어가야 몸이 떠서 수영을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수영에 기술이 필요하다는 걸 일곱 살 소녀가 알리가 없었다. 좀 더 깊은 곳으로 가기 위해 한걸음 내딛는 순간 그만 미끄러져 넘어지고 말았다. 미끄러져 넘어졌다기보다는 흐르는 물살에 휩쓸려 버린 것이다. 물속에 잠긴 소녀는 다시 나오려고 일어섰지만 물의 깊이는 소녀의 머리를 넘어서 까치발을 서서 고개를 들어도 고개가 물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숨이 턱턱 막히면서 어른들이 이야기하던 것이 생각났다. "저그 윗동네 김씨네 아줌마가 방죽에 빠져서 죽을 뻔했는데 허우적거리며 ‘사람 살려’라고 소리치던걸 마침 물꼬 보러 갔던 이 씨가 듣고 건져서 살았다는 구먼" 나도 살려 달라고 소리치면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망설이지 않고 "사람 살려" 하려니 소리는 나오지 않고 물만 먹었다. 그 짧은 시간 물속에서 일곱 살짜리 소녀는 머리를 굴렸다. "누군가에게 소리가 들리려면 물밖로 얼굴이 나가야 되나 봐""어떻게 나가지?"" 그래 발을 힘껏 바닥을 치고 물 위로 올라가는 거야" 첫 번째 시도를 했다. 간신히 얼굴만 물밖로 나왔다. 얼른 “사람 살려~” 하려 했지만 ‘사...’ 한마디 하고 물속으로 잠겼다. 다시 바닥을 차고 물밖로 얼굴이 나가기에 더 빠르게 소리치려 했지만 역시 ‘사...’ 한마디밖에 할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물에 빠지면 익사 전에 세 번을 물 위로 튀어 오른다고 말한다. 물밖의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그저 죽기 전의 몸부림쯤으로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그 세 번을 튀어 오르기 위해 당사자에게는 어찌하면 물밖로 나갈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했다는 것이다. 세 번을 시도했지만 '사람 살려'라는 말을 한 번도 할 수 없음을 깨달은 일곱 살 소녀는 차라리 기어서 가는 것이 물밖에 나가는 빠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흐르는 물의 폭이 넓지 않았으니 금방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건 어린아이의 생각일 뿐이었고 현실은 물속에서 숨을 쉬지 못하고 물만 실컷 먹고 기절하고 말았다. 아무런 고통도 없이 세상이 단절되고 말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정신이 살짝 드는데 주변에 오빠와 오빠 친구들이 몰려 있었고 내 몸에 붙은 거머리를 떼어 내며 시끌시끌했다. 난 먹은 물을 컥컥 거리며 토하고 있었다. 오빠의 친구들은 "네 동생 살아난 것 같으니까 얼른 데리고 집으로 가"라고 했고, 오빠는 울지도 못하는 소녀를 데리고 소녀가 가져간 기저귀 대야를 챙겨서 집에 가자 했다.


화가 난 건지 죽을 뻔한 동생을 걱정하는 건지 오빠는 집으로 오면서 좀 전의 상황을 흥분해서 이야기했다.

“난 네가 물속에서 놀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좀 있으니까 둥둥 떠내려 오더라. 형들이 너 죽었다고 해서 겁났었다. 형들이랑 너를 둑방 위로 끌어냈는데 네가 숨을 안 쉬는가, 다들 너 죽은 거라고 하며 얼른 엄마한테 말하라고 했는데, 네 등에 거머리가 잔뜩 붙어 있잖아, 거머리라도 떼어놓고 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네가 물을 토하면서 컥컥거리는가, 다음엔 너 혼자 오지 마, 집에 가서 죽을 뻔한 이야기도 하지 말고, 오빠 혼난다.”

지금 같으면 아마도 병원에 며칠은 입원했어야 할 만큼 소녀의 상태는 심각했었다. 며칠을 계속 컥컥거리면서도 엄마가 다시 빠는 기저귀를 보면서 말하지 못했다. 오빠는 오빠대로 동생을 챙기지 않아 혼날지도 모르니 입을 꾹 다물었다. 다행히도 큰 후유증 없이 회복이 되었고 지금까지 잘살고 있다.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 해마다 여러 건의 익사사고 소식을 듣게 되는데 올해는 윗글의 일곱 살짜리 소녀가 겪었던 <익사 직전의 심리와 행동>을 몸소 체험하는 일이 없도록 안전 물놀이를 적극 지도하고 어른들의 세심한 보살핌이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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