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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에도 철학이

낚시가 가르쳐 준 삶

by 강현숙



사업상, 한 달이면 네댓 번 완도를 내려가야 한다.

사업장이 대전에 있는 우리는 처음엔 시간 맞춰 완도에 갔다가 일이 끝나면 바로 뒤집어 올라오는 강행군을 했었다. 왕복 8시간이 걸리는 완도에 한번 갔다 오면 피로가 누적되어 며칠씩 피로를 달고 살아야 했었다.


어느 날 남편이 완도에서 할 일을 주말로 잡고 내려갔다가 일박을 하고 오자고 하였다.

사람을 만나고 물건을 받아오는데 문제가 없다면 나도 좋다고 하였다.

사업차 갈 때는 운전도 힘들고 주변 경치를 보고 감흥도 일지 않았었다. 사실 운전은 남편이 하니까 난 옆자리에서 열심히 졸거나 자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니 주변의 경관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 주말로 약속을 잡아놓고 1박 할 준비를 하고 출발하니 이것이 바로 여행이었다.


완도에 도착하면 선착장에서 여장을 푼다.

여장이라고 해봐야 텐트 대용으로 윙바디 탑차에 난방용 스티로폼을 깔고 그위에 돗자리를 펴고 식사를 준비하는 것이 다이지만 하루를 사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윙바디 한쪽을 열면 바다를 품은 창이 된다.

해풍을 맞으며 밥도 해 먹고 잠도 잔다.


누가 다녀간지도 모르는 숙박시설에서 누가 덮었던 이불 인지도 모르는 이불을 덮고 자는 것보다 훨씬 마음이 편했다. 더구나 요즘같이 감염병이 걱정되는 시점에선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한 하룻밤을 보낼 수 있었다.


내가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남편은 낚시 준비를 한다.

완도 바다의 모든 물고기들을 다 낚아 올릴 듯이 준비를 하지만 밤새 한두 마리 잡으면 만족한다. 그것도 낚시를 접어야 할 시간이 되면 살림망에 가두었던 잡은 물고기들을 모두 바다로 돌려보낸다.

‘그럴 거면 뭣하러 힘들게 잠 안 자고 낚시를 하는지’ 불만이었지만 어느새 나도 그냥 낚시를 즐기는 남편을 따라 즐기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매주 내려가서 잡아 올리는 물고기들을 다 가져오면 지금도 포화 상태인 냉장고가 견디지 못할 것이기에 차라리 살려주는 편이 마음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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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를 담그고 바다를 바라보는 남편의 모습은 강태공이 울고 갈 포스이다.

산책 나온 사람들이 한 번씩 들여다보고 갈 정도로 제대로 폼을 잡고 있다.


“뭣좀 나오요?”

“아니요, 입질도 없네요”


지나다 들여다보는 사람들과의 대화이다.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무언가를 낚으려고 폼을 잡고 있지만 제대로 잡아 올리는 건 본 적이 없다 그래도 주말이면 많은 사람들이 완도 선착장을 찾는다.


‘진정한 낚시꾼은 물고기를 잡는 것이 아니라 세월을 낚아 올리는 거라잖여’ 하면서....


물고기는 못 잡아도 저 멀리 통통배들이 만선의 기적을 울리며 선착장을 드나드는 모습은 구경거리이다. 섬 사이로 안개라도 흐르는 날엔 한 폭의 그림이 따로 없다. 어두워진 밤바다에 가벼운 바람이라도 지날 때면 매여진 배들이 파도소리를 음악 삼아 무도회를 연다. 짭조름한 바다향도 좋기만 하다.


낚시꾼들은 그런 모습을 즐기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미끼를 물어주는 물고기도 없는데 밤새 빈 낚시질을 하면서 세상 해탈한 모습을 지을 수가 있을까?


어느새 나 역시 그런 시간을 즐기고 있다. 바다를 바라보며 독서하다 무료해지면 남편이 내 것이라고 준비해준 작은 낚싯대를 던져 본다. 물고기들이 나 같은 초보자의 미끼에 관심을 둘리 만무하지만 그냥 그렇게 하는 행위에 만족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즐거움은 살림망을 가득 채우지 않고서도 충분히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낚시를 하면서 느껴본다.

2020년 5월 17일 완도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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