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을 품은 산들이, 빈계산, 금수봉, 도덕봉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지는 산으로 대체로 평범한 산이다.
빈계산에서 도덕봉까지 완주하면 보통 5시간 정도 걸린다.
이런저런 핑계로 운동을 하지 못하니 뱃살이 불어나 컨디션이 좋지 않다. 큰 맘먹고 운동삼아 집 뒷산을 다녔는데 1시간도 안 걸리는 뒷산을 걷는 것만으로도 처음엔 다리가 떨리고 종아리에 알이 생겨 고생했다.
운동부족을 절실하게 느꼈다.
좀 고강도의 운동이 필요함을 느끼고 수통골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확실히 운동의 효과인지 컨디션이 많이 좋아져 좀 더 운동량을 늘리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래 봐야 멀리는 갈 수 없으니 수통골 봉우리들을 다 돌아오는 등산으로 결정했다.
오늘이 그 첫날이다.
몇 걸음 오르다가 차오른 숨 고르고 물 한 모금 마신다.
그리고 다시 걷는다. 집 뒷산 하곤 확실히 맛이 다르다.
힘겹게 한고비를 넘고 이제는 좀 쉬워지려나 기대하면 또다시 가파른 오르막길과 계단이 앞에 버티고 있다.
오르고 내리 고를 반복하다 보면 등산의 모습이 삶의 모습과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삶에서도 한고비 넘기고 나서 순탄하기를 기대 하지만 더 힘든 시련이 기다리고 있기도 했었다.
물론 주변의 경치를 즐기며 호젓하게 걷기만 하는 능선길 같은 시기도 있었지만 '고달프다'라고 느낀 길이 더 많았던 것 같다.
힘이 빠진 다리를 쉬자며 편한 자리에 앉았다.
간식을 먹으며 이런저런 생각으로 한참을 쉬었다.
푹 쉬고 일어서니 더 힘이 든다.
요즘 나는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에 대한 회의감에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나를 구원하기 위해 비수기인 여름 한 서너 달 정도 쉬기로 했다. 가게를 안 열고 있으니 단골 분들이 더 자주 오시는 느낌이 든다. 집이 가까워서 오셨다는 전화를 받으면 얼른 뛰어가 필요한 물건들을 챙겨 드리곤 했다. 처음엔 그렇게 전화를 하시고 조금씩 기다려 주시던 분들이 불편하셨던 모양이다. 문 닫은 지 한 달 정도 될 때까지도 전화가 자주 왔었는데 지금은 전화가 거의 없다. 죄송한 마음에 가게를 예정보다 당겨서 열어야 하나 고민이 되지만 문 열기가 쉽지 않다.
쉬는 것도 적당해야지 오랫동안 쉬다 보니 일의 감각이 무뎌지고 마음의 긴장도 풀려 버린 듯하다. 무엇보다 휴식의 즐거움을 포기할 마음이 아직은 생기지 않는다.
주중 5일 일하고 주말 이틀 쉬는 것은 누가 정했는지 정말 탁월한 결정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좀 더 쉬고 싶을 때는 일주일쯤 휴가로 가벼운 여행이라도 한다면 그 정도가 딱 좋다.
서너 달 쉬는 것은 정말이지 조금 재미없다.
완주하기로 한 산행을 중도에 포기해야 할 것 같다. 다리가 풀려서 무리한다면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할 것 같다. 수통골 가운데 가장 높은 봉우리인 금수봉을 넘어 도덕봉까지 가는 것을 포기하고 쉽고 빠른 지름길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지름길이 있을 리가 없다. 정해진 등산로 그곳이 지름길이었다.
삶의 모습도 그러하지 않았던가?.
서둘러 목표에 도달하려 편법을 사용했다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루어야 한다.
사는 모습이 여유롭고 좋아 보여서 부러워했던 어느 집 남편이 한동안 보이지 않았다. 궁금하여 알만한 분께 안부를 물어보니 나라의 큰집에서 수양 중이라고 한다. 얼마 전 죗값을 다 치르고 다시 돌아오기는 했지만 단 일 년 만에 예전의 생활을 회복하기 힘든 상황에 처해져 있는 것을 보았다. 정직하게 한걸음 한걸음 쌓아온 여유였다면 지금 그런 모습이 되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인내심을 가지고 정해진 등산로까지 와서 가파른 길과 계단을 힘이 빠진 다리로 내려오려니 오르는 것 못지않게 힘이 든다 게다가 위험하기까지 하다.
정신없이 위만 보고 일만 하다가 한순간의 실수로 처음 시작하던 위치까지 내려와야 할 때 몸과 마음이 휘청거리는 모습과 닮았다.
그다지 높지 않은 산이라 생각하고 그 정도는 다녀올 수 있겠지 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계획했던 수통골 3봉 완주의 목표는 이루지 못했다. 목표를 정했다가 달성하지 못하면 많이 서운하고 허망하기까지 하다.
차라리 목표를 낮게 잡고 그 목표에 도달했을 때가 기분이 훨씬 좋다.
등산을 하는데도 계획이 필요했는데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는 말해 무엇하랴?
쉬운 일이든 힘든 일이든 적절한 목표를 세우고 시작한다면 삶으로 인해 받는 상처는 훨씬 줄어 들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