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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 줍는 아저씨를 보면서

삶에 정답은 없지만....

by 강현숙

내가 있는 시장 주변에서 폐박스를 모아가는 아저씨가 계시다.

내가 시장에 오기 전부터 그 일을 하셨던 것으로 보아 정확히는 모르지만 6년은 넘으셨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부터 박스를 모아 가시는 아저씨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해서 우리 가게에서 배출되는 것들을 따로 모았다가 가져가시기 좋게 챙겨 드리곤 했었다.

그랬던 아저씨가 작년 겨울 12월쯤부터 보이지 않았다. 대신 아주머니가 혼자 오셔서 아저씨 몫의 박스를 챙겨가셨다. 보이지 않는 아저씨가 궁금해서 한 번은 아주머니께 여쭈어 보았더니 편찮으셔서 못 오신다고 하셨다.

연세도 많으신 분이 편찮으셔서 일을 못하신다고 하니까 괜한 걱정이 되었다.

아주, 다시는 뵙지 못할 거라는 불경한 생각을 했다.


시장에서 일하는 분들은 정말 부지런하고 열심히들 사신다. 남들 잠자는 시간에 일을 하시는 건 물론이고 보통사람들보다 일하는 시간도 훨씬 많다. 게다가 식사는 가게에 전기밥통 하나 가져다 놓고 간단한 반찬 한두 가지로 해결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그것도 식사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다. 손님이 없는 시간이나 배고파서 허기질 지경이 되어야 먹는다. 나 역시도 하루 종일 시장에서 도매와 소매를 겸하여 12시간 이상씩 일을 할 때는 그렇게 힘들게 번 돈으로 끼니마다 입에 맞는 식사를 챙기기 위해 지출하는 돈이 아까워서 간단하게 챙겨 먹기 일쑤였었다. 전기밥솥에 밥만 하면 김치가 되었든 장아찌 종류의 간단한 반찬이 되었든 대충 때운다. 그것도 아니면 라면 한 개 끓여서 건져먹고 국물에 밥 한술 말아먹으면 그것이 식사였다.

제대로 못 자고 제때 챙겨 먹지 못하니 시장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쌓여갈수록 건강은 점차 악화되어감을 몸소 체험했었다. 그래도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 없고, 특별히 배운 것 없이 그나마 자영업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이 감지덕지해서 하루라도 빨리 돈이라도 모으자는 생각에 줄일 수 있는 것은 줄여야 하는데 최소한의 정해진 지출 외에 따로 근사하게 생활하는 것이 아닌 까닭으로 먹는 것 말고는 줄 일 곳도 없었다.


시장 생활을 하루 이틀 할 것이 아니고 평생의 직업으로 생각한다면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먹을 거 챙겨 먹고 쉴 때 쉬어가며 하라고 충고해주는 분들도 계셨다. 그럴 때는 그 말이 감사하기보다는 "자기는 이미 자리를 잡아 장사가 안정적으로 유지되어 먹고 살만 하니까 하는 말"이라고 흘려 들었다.

그러다가 해마다 병명이 늘어나고 어디든 엉덩이만 붙이면 잠이 들어 버릴 만큼 피로에 절어있음을 느낄 때면 다음 달 까지만, 이번 명절까지만 하던 대로 하고 그다음에는 좀 일을 줄여보자고 다짐을 해보지만 장사라는 것이 한번 시작하면 쉽게 접을 수도 없다. 팔고 싶은 물건을 하루치만 사서 하루에 다 파는 것이 아니고 가격이 적당해서 좀 더 싸게 공급하면서 내 마진을 챙길 수 있겠다 싶은 물건들은 한꺼번에 몇 개월 또는 일 년 치 이상을 구매해서 냉동창고에 쌓아두다 보니 그곳에 돈이 묶여버린다. 묶인 돈을 회수하는 방법은 하루라도 빨리 팔아치우는 방법밖에 없으니 하루도 쉰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다. 물건의 노예가 되고 돈의 노예가 되어 어쩔 수 없이 가게문을 열고, 또 문을 열었으니 구색을 갖추어야 하고, 구색을 맞추다 보니 재구매를 하여야 하는, 마치 끊어버릴 수 없는 보이지 않는 고리에 연결되어 있는 듯한 삶이었다. 큰마음먹고 소매를 정리한 우리 냉동고에 아직도 물건들이 쌓여있을 정도로 마무리가 되질 않으니 어지간해선 그 물건에 투자된 돈이 아까워서 쉽게 그만두질 못하는 것이 시장 사람들의 현실이다.


문제는 그렇게 살아서 생각대로 돈이라도 많이 벌어지면 좋겠지만 돈이라는 게 그렇게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어서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돈은 돈대로 뜬구름이 되어 잡을 듯, 잡힐 듯 만 하면서 하루하루 고단한 시간만 쌓여간다. 젊어서 돈 버느라 시간이 없었다면 늙으면 병원에 돈같다주느라 돈 쓸 여력이 없다는 말들을 하는데 아마도 장사하는 사람들을 두고 한 말인 듯하다.


작년에는 시장에서 여러분이 떠나셨다 다른 일 하려고 가신 것이 아니고 하늘의 부름을 받고 떠나셨다.

다들 열심히 남들보다 더 일하고 남들보다 덜먹으며 그렇게 사시면서 자식들 훌륭하게 키우시고 장사도 자리가 잡혀 걱정이 없다고 느끼던 분들이다.

한분은 급성 백혈병으로 진단받은 지 한 달 만에 떠나셨고, 한분은 췌장암으로 1년 이상 치료를 받으셨는데 그 몸으로도 장사를 계속하시다가 다시 증세가 있어 병원에 가신지 한 달도 안되어서 떠나셨다. 한분은 오랜 병으로 고생하시던 남편을 보내드리고 일주일 만에 패혈증으로 갑자기 돌아가셨다. 어느 날 갑자기 보이지 않아 왜 안 보이는지 궁금해하던 분이 병원에 입원 중이라는 소식을 듣게 되면 얼마 후엔 비보가 전해져 온다.

고생 고생하다가 먹고 살만 하면 떠나는 경우를 시장에 있으면 많이 보게 된다.


폐지 줍는 아저씨의 경우는 안부를 물을 정도로 친한 분이 아니었고 자신의 이야기를 한마디도 하지 않으시며 폐지만 주워가던 분이어서 '폐지 줍는 아저씨'말고는 아는 것이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으니 당연히 험한 생각을 했고 그저 마음으로만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오늘 오전에 볼일이 있어 가게에 갔다가 시장 입구에서 그 아저씨를 보았다. 그냥 지나치다가 아무래도 그분이라는 생각에 너무나 반가운 마음이 들어서 뒤돌아가 보니 그분이 맞았다. 9개월여 만에 만난 아저씨는 작년 겨울의 피로가 가득했던 그 얼굴이 아니고 피부톤도 환해지고 화색이 도는 건강한 아저씨로 변해있었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하니 "예!" 하며 작년의 말을 아끼며 묵묵히 일만 하던 그 모습 그대로 박스를 정리하면서 바라보셨다. "그동안 왜 안보이셨어요?" 하고 물어도 웃음으로만 대답하시는 아저씨께 더 무언가를 물으면 안 될 것 같아 "날씨도 뜨거운데 이럴 때는 좀 쉬시면서 하세요, 너무 더워요"라고 말하고 내 볼일을 보았다.

마음속으로 혹시나 고생만 하시다 좋은 세상 마음껏 누려보지도 못하시고 떠나셨나 해서 안타깝게 생각했던 그분이 건강한 모습으로 전에 하시던 일을 그대로 하고 계시니 참으로 반가웠다. 그리고 작년에 떠나신 그분들이 한 분 한 분 떠오르면서 지나온 내 삶도 돌아보았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요즘은 '젊어 고생은 골병만 남는다'라는 말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래서 3D업종이 생겨나더니 요즘은 아예 조금만 힘들어도 기피하는 현상으로 인력난에 애를 먹고 있고, 반면에 직업을 갖지 못한 젊은 청년들이 넘쳐나고 있다. 주변에서 일자리 좀 알아봐 달라는 부탁을 종종 받기도 하는데 정작 우리 일에 사람이 필요해서 구하려면 이런저런 이유로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다가 새벽에 5시간 정도 하는 아르바이트생을 구하는 광고를 내면 그때는 또 지원자가 너무 많다. 짧은 시간 부담 없이 조금 벌면서 좋은 직장이 구해지길 기다리는 분들도 있고 정식직원이 아니니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어서 하시는 분들도 있다. 먹을 것만 해결되면 힘든 줄 모르고 일하던 나 어릴 때와는 정말 많이 달라졌다.


생각해 보면 이가 아직 튼튼할 때 맛있는 것들 먹어야 한다는 말도 맞는 것 같고, 다리에 힘 있을 때 세상 구경하며 살리라는 말도 맞는 것 같고...... 다 맞는 것 같은데 그것들을 누리기 위해서는 돈이 있어야 하니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하는 것도 또한 맞는 것 같다. 좋은 거 먹으면서 세상의 멋진 곳 돌아보며 살아도 어디 묻어둔 돈이 때마다 알아서 쓸 수 있는 만큼 생겨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금수저 흙수저의 삶은 정말 타고나는 것일까?

정답을 알 수 없는 쉽지 않은 삶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몸의 건강도 챙기면서 하고 싶은 것들 하면서 사는 것이 그래도 나은 삶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으니 무슨 일을 하더라도 끼니만큼은 정성껏 챙기려고 한다. 그리고 시장으로 장 보러 갈 경우에 밥값이라도 아끼려고 먹을 것 마저 줄이며 사는 그분들의 애로를 생각하여 물건값을 깎는 행위는 하지 않으려 한다. 내가 조금 이익을 보았을 때 누군가는 그만큼의 손해가 발생된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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