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도 그랬다. 학교에서 숙제만 받아오면 이것저것 할 일이 많았다. 숙제를 안 하기 위한 핑곗거리는 어찌나 그리도 생겨나던지 한밤이 되어서야 연필과 공책을 챙겨놓고 부랴부랴 되는 말 안 되는 말 적어서 학교에 가지만 간신히 손바닥 맞는 것만 면할 수 있었다.
얼마 전 최진우 작가님께서 출간하신 곱슬머리라는 소설을 읽고 리뷰를 작성해 줄 작가를 모신다는 글을 보았다. 책 욕심에 보자마자 댓글을 남겼다. 첫 번째의 댓글이었다. 작가님께서는 흔쾌히 귀한 책을 보내주셔서 받은 지 2주일쯤 되는 것 같다. 그날부터였다. 새벽일을 마치고 나면 갑자기 완도로 조치원으로 볼일이 생겨 왔다 갔다 하다 보니 글을 쓰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작가분들의 글을 읽는 시간도 주어지지 않았다. 이동하면서 읽는다고 책은 부지런히 챙겨갖고 다녔지만 신경 쓰는 일 때문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러다 잠깐 펼쳐본 책을 순식간에 한편을 다 읽고서야 다른 일들이 생각날정도로 몰입감이 있었다. 한 권으로 6편의 소설을 읽는 효과까지 있으니 실속면에서도 나무랄 데가 없는 책이다.
소설 <곱슬머리>는 브런치에서 활동하시는 작가님의 출간 작품이다. 제목만 보고 상상했던 이미지는 고집스러운 사람의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수수한 표지의 책과 전혀 기교를 부리지 않은 책의 구성에 대해 살펴보면서 만약에 서점에서 만났다면 선뜻 집어오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게다가 독립출판물에 인지도도 없는 무명작가의 작품이니 내용 역시 그저 그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그래도 리뷰를 써달라는 조건으로 무료로 받은 책이니 어떻든 간에 읽어야 한다는 숙제 같은 부담을 가지게 되었던 책이었는데 첫 편을 읽고 작가분에게 미리 상상했던 부분에 대해 진심으로 죄송했다. 하는 일이 있으니 어쩔 수 없이 한 번에 다 읽지 못하고 책을 접어가면서 읽었음에도 책을 읽으며 느꼈던 느낌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6개의 단편소설로 엮인 <곱슬머리>는 책에 수록된 소설의 제목이다.
곱슬머리, 나무에도 심장이 있어?, 파장(罷場), 네가 그렇게 특별 할리 없어, 드림캐처, 빗속의 고래라는 단편소설들을 한 권으로 묶었다. 내용은 각각의 독립성을 지녔다.
첫 번째 소설 '곱슬머리'는 '사랑'이라는 마음에 대해 정답을 찾는 과정을 이야기하였다. 남자 주인공은 학교에서 아무런 감점 없이 친해졌다고 느꼈던 생머리의 여자가 파마를 하고 온날 처음으로 여자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낀다. 그러나 곱슬머리의 여자에게 흐르는 감정이 사랑인지를 확신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사랑이 아니라는 결정도 못하면서 계속 만나야 될지 고민을 하다 어쩔 수 없이 약속이 잡힌 그 만남을 피하기 위해 우연히라도 마주치지 않을 만한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여자를 피해 도착한 여행지 일본에서 한 여자를 만나게 된다. 우연히 우동 집에서 만나 우동을 함께 먹었던 여자를 생각지도 못할 장소인 온천의 남탕에서 다시 만나게 되고 그 여자도 곱슬머리라는 공통점을 만들며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의 곱슬머리 여자의 이야기를 하고 여자의 남자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정답은 독자들에게 맡긴다. 알 수 없는 감정에 도망쳤다가 돌아오는 시간에 곱슬머리 여자의 머리는 다시 생머리가 되어있었다. 자신의 사랑의 감정이 곱슬머리 때문이 아니라는 걸 확인하면서 소설은 끝난다.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 이야기 속에서 독자들 각자의 사랑의 정답을 생각해 보게 하는 이야기이다.
두 번째 소설 '나무에도 심장이 있어?'는 딸을 키우는 아버지의 마음을 잘 표현한 이야기이다. 동심으로 가득 찬 6살 딸이 들었던 나무의 심장소리를 함께 들어주고 그 동심이 깨져 상처 받은 딸을 안아주며 위로해 주는 아빠였다. 아이가 자라면서 세대차이를 느끼고 자신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딸의 모습에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아버지로서 딸이 원하는 것들은 모두 해주고 싶어 한다. 딸이 성장하면서 자신의 삶을 사느라 아버지를 돌아보지 않을 때도 아버지는 딸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믿음으로 서운함을 감춘다. 결혼과 이혼의 과정을 거치면서 상처 받았을 딸을 온전히 딸의 편이 되어 보듬고 감싸는 아버지의 가슴 뭉클한 정이 잘 그려진 작품이다.
세 번째 소설 '파장(罷場)'은 친구인 네 남자의 이야기이다. 영철, 상현, 성민, 진성이라는 네 남자는 특별한 주제도 없이 자주 만나는 사이였는데 네 명 모두 특별한 직업도 없고 확실한 미래도 없다. 그리고 기성세대들이 살아온 삶이 마음에 들지도 않는다. 파장을 맞이한 그날 네 명의 친구 중 영철은 사업을 하자며 친구들을 설득한다. 자신들이 뭉치면 못해낼 게 없다는 어린 시절의 우정까지 들먹이며 설득하지만 맞장구를 쳐주는 두 친구와 달리 원래 말수가 적었던 상현은 그나마도 현실에 안주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영철의 제안에 끝내 동의하지 않는다. 마지막 영철은 날씨를 걸고 설득했다. 자신이 군대에서 썼던 방법인데 거의 틀리지 않았다는 것으로 자신의 삶에 대한 촉이 좋다고 믿는다. 결과는?????
네 번째 소설 '네가 그렇게 특별 할리가 없어'는 어린 시절 동화와 위인전을 많이 읽었던 영향으로 자신이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느끼는 한 사람이 성장하면서 자신도 보통의 사람과 다를 바가 없음을 깨닫고 좌절한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특별하다는 확인을 하려고 특별한 실험을 하려 한다. 손목의 동맥을 끊고 물이 가득 찬 욕조에 몸을 담가도 죽는지 안 죽는지 보겠다는 것이다. 절대로 죽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가진 이 남자 성장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두가 공감할만한 이야기를 적은 소설이다.
다섯 번째 소설 '드림캐처'는 가위눌림에 시달리던 주인공이 '드림캐처'라는 좋은 꿈으로 리드하는 기계를 사게 된다. 신기하게도 드림캐처를 사고부터는 기분 좋은 꿈을 꾸게 된다. 더불어 회사일도 잘 풀린다고 생각했던 주인공에게 직장 돌료들은 개인적인 관심을 보이며 원하지 않는 위로를 하는 것이 못마땅하다. 여자 친구의 불만스러움에도 이해의 마음을 열려고 하지 않으면서 결별하고 만다. 실연의 아픔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바쁜 직장생활을 이어가던 중 실연을 위로하고 싶다는 팀장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좋은 줄을 잡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상상을 하면서 퇴폐라고 생각했던 장소까지 동행하지만 다음날 말이 바뀐 팀장의 태도에 돌연 퇴직을 선언하고 옛 애인을 찾아간다. 아직 자신이 들어갈 마음의 여지를 남겨놓은 것을 확인한 주인공은 미리 구매했던 비행기를 타고 별이 쏟아지는 곳으로 함께 여행을 간다. 그곳에서 '드림캐처' 없이도 아름답고 행복한 꿈같은 시간을 보낸다.
여섯 번째 소설 '빗속의 고래'는 아버지를 싫어했던 남자가, 자신은 전혀 아버지를 닮지 않았다고 믿었던 남자가 아버지를 꼭 닮았다는 말에 자식이 원하지 않아도 유전적으로 아버지를 닮으면서 진화를 발전시켜가는 것을 육지동물이었던 고래가 다시 바다 동물이 된 이유를 찾는 것에 비유한 이야기이다. 고래가 육지 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바다로 가기까지 어떤 이유가 있었던 것처럼 자신도 아버지를 닮은 삶을 살지 않으려면 고래처럼 다른 세계로 가서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주인공은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단편소설의 내용들은 위와 같다고 이해를 했다. 드문드문 읽어서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읽기에 부담 없는 책이다. 사랑에 빠진 청춘들이나, 힘든 직장생활에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 고민스러운 직장인, 그리고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고 싶은 20대가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PS : 최진우 작가님 좀 더 성실하고 멋진 리뷰를 쓰고 싶었는데 더 미루면 안 될 것 같아서 급하게 마무리했습니다. 작가님의 의도와 다르게 이해했다면 많이 죄송할 것 같습니다. 귀한 책 많은 분들이 읽으시길 진심으로 기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