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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양사 쌍계루

자연이 빚은 데칼코마니

by 강현숙

백암산 백양사에 가면 입구에서 맞이하는 명소가 있다. 바로 쌍계루라 하는 정자이다.

이곳에 오르면 웅장한 바위산인 백암봉이 보이고 아래로 개천이 보이는데 단풍철이면 특히 아름다운 경치를 자아낸다. 그 아름다움을 마음에 담아가지고만 갈 수 없었던 시인들의 표현들이 편액 되어 빽빽하게 걸려있다.

전날 백양사를 쉽게 떠나지 못하고 절 아래 마을에서 묵었다. 다음날 새벽 다시 절을 찾아 인사를 드리고 아침 풍경을 마음에 담다가 다음 일정이 있어 나오는 길이었다. 막 떠오른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산의 풍경이 아름다워 둘러보다가 쌍계루 아래로 눈길이 갔다. 운문암 계곡과 천진암 계곡에서 흘러 합수한 물이 잠시 머물며 작은 호수를 이룬 곳이었다. 아침잠에 빠져 있기라도 한 듯 너무나 잔잔하여 거울 같았다. 그곳에 비친 쌍계루의 모습은 나그네의 발길을 잡기에 충분했다. 자연이 빚은 작품, 데칼코마니가 그곳에 있었다. 어느 예술가가 저렇게 아름다운 작품을 빚을 수 있을까?




쌍계루의 역사는 670여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쌍계루를 소개한 안내판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있고 포은 정몽주의 시 한 편을 소개하고 있었다.

백제 무왕 33년, 신라사람 여환 선사가 현재 백양사인 백암사를 창건하고, 1350년 고려 충정왕 2년에 각진국사가 현 쌍계루를 최초 건축하였다. 그 후 1370년 고려 공민왕 19년에 폭우로 교루가 손실을 당하여, 1377년 고려 우왕 3년에 청수 스님이 교루를 중수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삼봉 정도전이 백암산 정토사 교류기를 지었다. 1381년 고려 우왕 7년에 목은 이색이 교루의 이름을 쌍계루라 짓고 백암산 정토사 쌍계루기를 지었고, 포은 정몽주가 시를 지었다. 쌍계루는 여러 번 다시 짓기를 거치다 1950년 한국전쟁으로 소실 되었던 것을 1985년에 복원 하였으나 주춧돌이 땅에 묻혀있고 처마가 썩어 2009년에 해체하고 다시 지어 현재에 이른다. 쌍계루에는 면앙정 송순, 하서 김인후, 사암 박순, 노사 기정진, 월성 최익현, 송사 기우만, 서옹스님, 산암 변시연, 약천 조순, 등의 현판 180여 점이 있으며 이는 종교와 사상을 초월하여 스님과 선비들이 소통하고 교류했던 화합의 공간이었음을 보여준다.


寄題 雙溪樓
정몽주

求詩今見白巖僧 지금 시를 써 달라 청하는 백암사의 스님을 만나니,
把筆沈吟愧不能 붓을 잡고 생각에 잠겨도 능히 읊지 못해 재주 없음이 부끄럽구나.
淸叟起樓名始重 청수 스님이 누각을 세우니 이름이 더욱 중후하고,
牧翁作記價還增 목은 선생이 기문을 지으니 그 가치가 도리어 빛나도다.
烟光縹緲暮山紫 노을빛 아득하니 저무는 산이 붉고,
月影徘徊秋水澄 달빛이 흘러 돌아 가을 물이 맑구나.
久向人間煩熱惱 오랫동안 인간세상에서 시달렸는데,
拂衣何日共君登 어느 날 옷을 떨치고 자네와 함께 올라보리
쌍계루에 걸린 포은의 시

고려시대 당대 최고의 문인 정몽주가 백양사를 방문하여 지은 시로 마지막 구절 '자네'는 임금을 칭하는 것이라 한다. 어지러운 시기에, '언젠가 편안하게 임금을 모시고 멋진 쌍계루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갖고 싶다'는 정몽주의 바람이 깃든 시이다.





나도 시인인데 이 좋은 경치에서 한수 읊지 않을 수 없었다.


쌍계루

강효정


수백 년 세월

하루같이 갈고닦은 쌍계루의 자태


위로는 백암봉을 우러르고

아래로는 운문, 천진 합수한 맑은 물을 배웅하네


찾아오는 시인 묵객 쌍계루의 아름다움

노래로 노래로 읊으니 그 詩 셀 수 없이 많도다.


최고의 언어로 예찬해 보지만 그 아름다움 어찌 다 표현하리

아쉬워, 아쉬워, 머물다, 머물다 떠나니


씁쓸한 나그네 뒷모습 바라보는 쌍계루

말로 글로 남기려말고 그저 마음에만 담아가라 하네




아쉬움을 뒤로하고 돌아오는길,

나는 지금 늙어서, 누각에 밝은 달빛이 가득할때
그 속에서 한번 이라도 묵을 길이 없으니
소년 시절에 그곳의 객이 되지 못한 것이 한 스럽기만 하다.


라고 읊었던 목은 선생의 찬기 마지막 구절의 의미를 이해 할수 있었다.


자연이 만든 쌍계루 데칼코마니
쌍계루에서 바라본 연못의 모습과 백암봉
쌍계루를 예찬한 글귀들, 가운데 사진 오른쪽 현판이 정몽주의 시이고, 사진의 맨 오른쪽 현판이 목은선생이 찬한 글이다.
쌍계루도 수면을 거울 삼아 자신의 모습을 갈고닦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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