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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숙 Jul 19. 2021

한여름 밥도둑, 깻잎지

반찬으로 먹고 건강도 챙기고...

들깨는 일찍 심으면 열매가 달리지 않는다 하여 보통은 하지가 지나고 감자를 수확한 다음에 심는다.

그러나 초보 농사꾼은 무엇이 언제가 적기인지를 잘 몰라서 때를 놓치기도 하고 일찍 심기도 하여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듯하다.


올해 첫 텃밭 농사를 짓게 된 나는 작물마다 때를 잘 알지 못하여 남들이 심은걸 보고서야 파종을 하거나 모종을 심었다. 그래도 눈치가 있어서 아주 실패하지 않은 농사를 지을 수가 있었다. 물론 먹을 만큼 보다 조금 더 많아서 몇 집이 나누어 먹을 정도였지만 스스로 서운하지는 않다. 유기농으로 지은 들깻잎을 지금 풍성하게 먹을 수 있는 결과도 잘 알지 못하는 초보였기에 있을 수 있는 일이 되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다가오면서 무엇을 심을까 고민하던 나와 남편은 서로 심고 싶은 작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남편은 자기가 좋아하는 감자를 심어서 우리도 먹고 주변에 나누어 먹자고 하였다.

나는 거름이 없어도 잘 자라고 가뭄에도 강하다는 참깨를 심어서 깨소금과 참기름을 먹자고 하였다. 고추와 상추 그 외 몇 가지 작물은 곁들여 심어서 필요할 때마다 싱싱한 상태로 따다 먹자고 합의를 하고 감자부터 심기 시작했다.


묵은 밭을 경운기를 이용해서 밭갈이를 하고 두둑을 높이 만들어서 감자종자를 넣었다. 그리고 옆에는 고추 몇 포기와 가지 2포기, 방울토마토 2포기를 심었다. 참외와 수박, 옥수수와 열무, 상추와 쌈채소들도 골고루 심었다. 뿌리를 내리도록 몇 차례 물을 주며 잘 자라서 풍성한 식탁을 꾸며 주기를 바라던 어느 날, 아직 비어있는 밭에 들깨 싹이 다북하게 자라고 있는 것을 보았다. 전에 사 짓던 분이 들깨를 심어 수확하면서 씨앗을 떨어뜨린 것인듯한데 양이 꽤 되어서 들깨 모종을 따로 사지 않아도 충분할 듯 보였다. 종자값 벌었다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비가 온 어느 날 거의 뽑아다 남편이 만들어 놓은 터에 심었다.


열심히 심고 있는데 이웃집 아주머니가 지나가면서 한 말씀하신다. "들깨를 벌써 심어? 지금 심는 들깨는 깨가 안 열려, 몇 개만 심어서 잎이나 따먹고 나중에 심어"하셨다. 어느새 한 줄을 다심은 상태였는데 깨가 안 열린다는 말을 들으니 헛수고했다는 기분에 조금 실망스러웠다. 그래도 잎은 따먹을 수 있다 했으니 고기를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쌈채소로 먹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가끔씩 물을 주며 키웠다. 심다만 모종은 끝순만 따서 볶아 먹으니 훌륭한 반찬이 되었다. 겨우겨우 자리를 잡은 듯했던 들깨는 어느 날부터 넘치게 잎을 키워선 쌈으로는 다 먹을 수가 없을 정도가 되었다. 하루는 쌈으로 먹고 남은 깻잎을 양념장에 절여 지인에게도 보내고 딸에게도 보냈다. 다들 너무 맛있어서 잃었던 입맛을 찾았다는 말에 싱싱한 깻잎이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들깨를 먹기 위한 정식 모종을 심기 전까지 깻잎을 이용한 반찬을 만들어 주변분들과도 나누어 먹자는 생각을 하며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열리면 먹고, 벌레가 먹고 남으면 먹는다는 생각으로 따로 거름도 안 주고, 벌레를 잡는 약도 주지 않았고, 어쩌다 물 몇 번 준 것이 내가 한 일의 전부인데 들깨는 스스로 알아서 잎을 다닥다닥 달고 있었다. 엊그제 갔더니 주중에 내린 비를 충분히 맞아서 인지 들깨는 더욱 키도 크고 넓어진 잎들이 풍성하게 나를 반겼다. 싱싱한 깻잎을 보면서 함께 먹을 몇몇을 생각하니 마음이 설레었다. 벌레들에게 빼앗기기 전에 얼른 잎을 따기로 했다. 적지 않은 바구니에 금세 한 바구니가 되었다. 냉장고에 넣어두면 오래 먹을 수 있는 깻잎김치를 담기로 했다.  



가끔씩 상처 입고 벌레에 뜯긴 자국도 있지만 스스로 치유하며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깻잎들이 너무나 감사했다. 깻잎지를 담기 위한 손길은 잎을 딸 때부터 인내를 요구한다. 아니다 씨앗을 뿌릴 때부터? 어쩌면 그 이전부터 인내가 필요할 수도 있겠다. 그러고 보니 내 입에 들어가기까지 많은 과정들을 무사히 지나왔다는 생각에 숭고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따온 깻잎을 씻는 과정도, 혹시 벌레 알이라도 붙었는지 확인을 하면서 일일이 한 장 한 장 씻어 건진다.


밤새 물 빠진 깻잎을 꼭지를 다듬어 주고 양념장을 만들었다. 양념장 레시피는 (간장, 매실진액, 설탕, 참깨, 참기름, 까나리액젓, 고춧가루, 양파, 마늘, 홍고추) 엄마들은 다 아는 적당량이다.^^


한 장 한 장 양념을 넣어야 해서 오랫동안 버틸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하여 좌탁 위에 준비된 것들을 옮겼다.



그리고 꼼꼼하게 양념을 넣어 김치통에 꼭꼭 눌러 담으면 숨이 죽으면서 바로 먹어도 되고 오래 시간이 지나도 맛있는 반찬이 된다. 고기 먹을 때 쌈이 없어도 걱정이 없다. 오히려 깻잎지에 싸 먹으면 고기가 더 맛있다.


게다가 깻잎에는 건강을 증진시키는 많은 효능들이 있으니 맛있게 먹고 건강도 지키는 그야말로 一石多鳥의 반찬이다. 깻잎김치를 담아놓고 깻잎이 가진 유익한 효능들을 간단히 살펴보았다.

깻잎에는 로즈마린산이 다량 들어있다.  로즈마린산이 뇌세포의 기능을 활성화하여 치매환자의 증상을 개선시키는데 도움을 준다. 로즈마린산은 허브식물이 갖고 있는 성분으로 깻잎에 특히 많이 들어있다고 한다. 깻잎은 생선회와도 궁합이 좋다. 깻잎 특유의 향을 내는 성분인 페릴 케톤이 생선이나 고기의 비린 맛을 없애주고 천연 방부제 역할을 해서 식중독 예방에 도움이 된다.
깻잎에는 비타민C가 풍부하게 들어 있어 백혈구의 활동을 증가시키고 바이러스 감염을 줄여주며 감기 등의 예방에도 좋다. 루테올린이란 성분이 염증 완화와 항알레르기 작용을 하여 재채기나 콧물, 가래, 기침 증상을 완화시켜준다.
그 외에도 피부를 좋게 하고 빈혈을 예방하며, 암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고 하는데 이는 깻잎이 함유하고 있는 파이톨과 엽록소가 암세포의 성장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위암세포의 성장을 억제하는 데는 여러 식물들 중에서도 깻잎이 가장 우수했다고 한다.


이 깻잎지가 탄생하기 위해 봄부터 내 눈길은 보배가 되었다. 버려질 뻔했던 들깨 싹이 초보 농사꾼을 만나서 생명을 얻은 것이다. 햇볕으로부터 양분을 얻고 비가 오면 참았던 갈증을 해결하면서 들깨는 혼자서 잘 자랐다.

열심히 자라준 들깨의 가치를 빛나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다시 바빠져야 했다.

잎을 따고, 깨끗이 씻어주고, 밤새워 물기를 빼고, 일일이 다져 만든 양념장을 발라주니 또다시 알아서 최고의 효능을 발휘하는 맛있는 반찬으로 변신했다.


깻잎김치, 나를 부지런하게 하고 인내를 요구했던 깻잎김치는 한여름 밥도둑이 되어 몇 집 식구들의 입맛을 돋우고 기운을 솟아나게 했다. 더불어 암세포 몇 개도 사라졌을 거라는 믿음도 생긴다. 깻잎은 사람 사는 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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