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에 통증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 설마설마하면서 통증을 다스리는 개인병원을 다니며 주사와 진통제로 몇 개월을 버텼다. 그러나 통증은 잡히지 않고 오히려 더욱 심해져왔다. 결국 예전에 다니던 대학병원에 예약을 하고 진료를 받게 되었다.
류마티스내과, 10여 년 전에 완치 판정을 내려주셨던 그분을 찾아갔다. 내 몸의 증세와 그간의 경과를 설명하니 일단 검사를 해보자 한다. 피를 뽑고, 소변을 받고, 엑스레이를 찍었다. 그리고 일주일을 통증 속에 괴로워하다 예정된 날짜에 내원을 했다.
검사 결과는 예상보다 안 좋았다.
류마티스의 인자가 아주 많아 통증이 심할 거라고 위로를 한다. 그리고 약을 써야 하는데 조심스러운 문제가 생겼다고 한다. 신장의 기능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통증이 있을 때마다 진통제를 먹었고, 아주 심할 때는 응급실로 달려가 진통주사를 맞았다. 그리고 제대로 된 처방도 없이 통증에 좋을 거라는 무엇이 있다 하면 먹었다. 소위 약물 오남용을 저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는 신장에 부담을 주어 신장이 제기능을 정상적으로 하지 못하도록 만든 것 같다는 것이다.
일단 2주일간 신장에 영향을 주지 않는 약으로만 통증을 다스려보고 그 후에 상태를 보아 약을 조절하자고 하였다. 또한 신장의 상태도 살펴보고 필요하면 신장내과 협진도 진행할 것이라는 처방을 받게 되었다.
마음속으로부터 서러움이 올라왔다. 예전에 심한 통증을 단박에 잡아주고 3년도 되기 전에 약을 끊어도 된다는 판정을 내려주셨던 그분이기에, 통증에 시달리면서도 만약 류마티스가 도진 거라면 그분만 찾아가면 예전처럼 될 줄 알고 크게 걱정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신체의 기능이 점점 퇴화되어가는 나이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간과했던 소치였다.
진료를 마치고 수납을 하려 하니 '의료비 산정특례'적용대상이니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의료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서류에 사인을 하라 한다. 지금 내 병이 난치병으로 오래 치료를 받다 보면 의료비의 부담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을 미리 짐작하여 진료비를 감액해 주는 제도라는 것이다.
필요한 물건이 있는데 백화점이나 어느 매장에서 할인행사를 한다 하면 기분 좋게 달려가 구매했던 적이 있다. 또한 할인기간을 기다리다 아쉽게 정가로 구매한 적도 있다. 그런데 내가 대상이 되어 의료비를 알아서 할인해준다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왔다. 의료비를 할인받을 정도로 쉽지않은 병이구나! 라는 생각때문이었다.
약국에 들러 약을 받고 돌아오는 길은, 온통 어느 날 닥칠 나 자신의 죽음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이제는 주변정리를 해놓고 가볍게 살아야 할 시점이 되었구나" 악착같이 살았던 지난 삶의 흔적들을 어느 정도는 정리하고 어느 날 눈을 뜨지 못하게 되더라도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다면 나 자신을 위해서 가장 최선의 일일 듯싶었다. 두렵기만 했던 죽음이라는 단어가 나이 탓인지 통증 탓인지 그다지 두렵지만은 않은 의미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