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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차순이 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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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숙 Aug 10. 2023

차순이 5

안내양이 되다.

양희는 중학교도 가지 못했다. -내년에 보내줄게, 일 년만 동생들 보고 있어- 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새 학기가 시작되어 친구들이 학교에 다닐 때 양희는 두 돌배기 동생을 돌보고 있었다. 하필 양희의 집은 중학교에서 200미터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등하굣길의 친구들과 부딪치는 것이 너무나 싫었다. 차라리 돈 벌어오겠다고 고종사촌 언니를 따라 이곳 공장으로 왔다. 아버지는 중학교 보내준다는 약속을 지키려 하셨는지 겨울 어느 날 양희를 데리러 오셨다. 그리고 산업체 중. 고등학교가 있는 공장에 취직시켜 주었다. 다행히도 그곳은 양희 적성에 잘 맞았다. 다른 건 다 몰라도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조건이 다른 힘든 것들을 모두 견디게 해 주었다. 작년 1년은 교복을 입었다는 자부심으로 행복했었다.

     

그러나 그 행복도 잠시 아버지는 다시 서울 부잣집으로 동생 돌보듯이 애기만 봐주면 중학교도 보내준다고 했으니까 그곳으로 가라고 했다. 당치도 않았지만 부잣집에 살면서 교복 입고 학교 가는 상상을 하면서 아버지를 따라갔다. 그러나 그 집에선 새 학기가 다가와도 학교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하루에 한 번도 바깥구경은 하지 못하고 높은 울타리 안에서 그 집의 어린 아기 하고만 놀았다. 할머니의 감시하에 업어주고, 기저귀 갈아주고, 밥과 간식을 먹이면서....  

   

두달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쳐서 온 곳이 다시 이곳이다.         

16살, 중학교를 못간 양희에게 공부하는 것은 가장 큰 꿈이었다. 산업체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을 때 그 꿈을 접으려 했다. 다른 길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검정고시로 시험을 치고 대학을 갈 수 있다고 한다. 그것도 양희가 가장 불결한 사람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던 시내버스 안내양이 그걸 하고 있다고 한다. 양희는 TV를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삥땅을 쳐서 브래지어 속에 감추고 팬티 속에 감추는 나쁜 년들이 공부를 해서 우리나라 전체수석을 했다고? 밝게 웃으며 말하는 TV속의 안내양이 발칙해 보였다.  

             

다음날 양희는 출근길에 안내양을 유심히 보았다. 자기보다 두세 살 많아 보였다. 얼굴이 하얗고 눈썹이 까만 미인형이었다. 허리도 가늘었다. 양희자신보다 힘이 없을 것 같았다. 그 몸으로 출근길에 꽉 찬 승객들을 안으로 밀어 넣으며 -오라이-라고 힘 있게 외쳤다.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내려도 능숙하게 요금을 받고 거스름돈을 내주고 탕탕 출발신호를 알리며 한 손으로 문을 잡고 올라타는 동시에 철커덕! 출입문을 닫는 솜씨가 멋있게 보였다.  저렇게 이쁜데 무슨 사연이 있어 안내양을 하는 걸까 궁금했다. 생각에 잠겨있는 양희를 강자가 내리자고 옷을 당겼다.   

  

공장에 출근해 자신의 얼굴을 거울에 비춰보았다. 아직 촌티가 줄줄 흐르는 얼굴이 거기 있었다. 안내양은 어쩌면 이쁜 애들만 뽑을지도 모른다는 조급함이 생겼다. 조퇴를 했다. 양희가 간 곳은 가까운 버스회사였다. 이층에 있는 사무실로 올라갔다. 입구 쪽에 있던 여사무원이 어떻게 왔느냐고 새침하게 물었다. 취직을 하려고 직접 어딘가를 찾아가 본 적이 없는 양희는 주눅이 들어 쭈뼛거렸다. 사무실에 있던 서너 명의 사람들이 모두 양희를 바라보았다.     

"안내양을 하고 싶은데요"     

겨우 말하고 얼굴이 빨개졌다. 여사무원은 가까이 오라고 했다.     

"중졸이에요?"     

학력을 물었다.     

"네? 아닌데요. 중퇴인데요"     

양희는 말까지 더듬었다. 볼펜을 들고 무언가 적으려던 여직원은 볼펜을 내려놓고 양희를 무시하는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중졸이상만 뽑아요"          

양희는 더 이상 있을 수가 없어 뛰쳐나왔다. 그리고 공장으로 오는 버스를 탔다. 자기 또래의 안내양이 문 앞의 한 칸짜리 의자에 앉아 졸고 있었다. -안내양이 중졸이상이구나, 그럼 저 안내양도 중학교를 졸업했겠네- 양희는 눈물이 났다. 사람같이 보이지 않던 안내양이 자기는 졸업도 못한 중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자신의 신세가 한없이 초라해졌다.

           

"어! 양희야 조퇴했으면 집에 가지 공장으로 왔어?"     

풀이 죽어 공장으로 들어서는 양희를 보고 공장장님이 말했다.      

"저는 안내양도 못해요. 중졸 이상만 뽑는대요"     

울먹울먹 하는 양희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공장장은 -내가 알아볼게-라고 말하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그리고 얼마 후 공장장은 양희에게 신원보증서라고 쓴 종이에 김범룡이라는 공장장의 인감을 찍은 종이 한 장과 이력서를 주었다. 스스로 이력서를 써본 적이 없는 양희에게 차분하게 칸마다 무엇을 적어야 하는지 알려 주어 적을 수 있었다. 그때 학력란에 공장장은 중졸로 적으라고 했다. 망설이는 양희에게 자기가 알아서 할 테니 그냥 적으라고 했다. 인사담당과 이야기가 다되었다고 했다. 그걸 가지고 서울여객 사무실 인사과로 왔다.                

그렇게, 1980년 5월에 양희는 자신이 그리도 불결하다고, 사람이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욕하던 서울시내버스 안내양이 되어 일하고 있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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