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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차순이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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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숙 Aug 11. 2023

차순이 6

소영이와 금희 언니

사무실에서도 밥은 먹여야겠다 생각했는지 아침에 심한 잔소리를 하고는 끝날 때까지 조용했다. 밤 10시경 일과를 마치고 한숨을 쉬며 기숙사로 퇴근했다. 다음날 배차를 확인하기 위해 사감실 앞에 놓인 배차표를 보려고 다가갔다. 1149호 버스에 배차되어 있었다. 계단을 타고 오르며 49호 기사님은 또 어떤 분 일지 궁금해하며 방으로 들어가 가운을 벗고 있는데 룸메인 입사 1년 차 소영이가 어깨를 툭 쳤다.  

          

"야! 정양희! 너 오늘도 입금 꼴찌 했다며?"     

"아마도 그럴걸, 내가 초보자라 그런가?  왜 기사들이 나만 타면 손님을 안태우는지 모르겠어?"     

소영이는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야, 너 그렇게 눈치가 없냐? 기사들이 너를 태우면 생기는 게 없으니... 너만 타면 하루 공쳤다고 한단다. 승객들 태워서 요금 많이 벌어봐야 껌값하나 안 남기고 회사에 다 입금시킨다고 차라리 앞뒤차 밀어주는 게 낫다고 한대"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럼 승객들 태워서 버는걸 회사입금 시켜야지? 기사 껌 사주란 말이야?"     

"야, 보통 3개월이면 그 정도 눈치는 다 챈다. 이그, 이 순진한 것. 하하"           

무슨 이야기인지 도통 이해 할 수 없는 말을 내뱉고는 소영이는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양희는 세면도구들을 챙겨 세면실로 갔다.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들어오는데 왕고참인 금희 언니를 마주쳤다. 금희 언니는 입사해서 열흘간 견습할 때 다섯 번은 언니 차에 타고 교육을 받아 그림자만 봐도 반가운 언니였다.            

"안녕하세요?"     

"응!  양희구나! 일 할만해? 살이 좀 빠진 것 같다."     

"네, 언니가 가르쳐 준 대로 잘하려고 노력해요. 그런데 기사님들이 저만 타면 손님을 안태워서 정산실직원들이 맨날 뭐라고 하세요."     

"그래?"     

금희 언니는 얼른 가서 쉬라고 하며 지나쳐 가다가 다시 양희를 불렀다.    

"네?"     

"너 쉬는 날 언제야?"     

"네? 모레요"     

"그럼 잘됐다. 나도 모레 쉬니까 나하고 밥 먹으러 가자"     

"네? 밥을요?"     

"그래, 내가 밥 사줄게 네가 내 제자잖니?"          

양희는 좀 여유가 생기면 아무것도 모르는 자신에게 친절히 일을 가르쳐준 금희언니에게 작은 선물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언니가 밥을 사준다니 너무나 황송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아직 양희는 밥 살 형편은 되지 않아 잠깐 망설이고 있었다.               

"걱정하지 말고,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고 모레 점심때 개봉시장으로 와, 알았지? 대답해?"               

금희 언니의 재촉에 양희는 알겠다고 대답을 했다. 


그리고 들어와 소영이 옆에 이불을 펴고 누었다. 잠든 줄 알았던 소영이는 양희가 눕는 것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이불속에서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49호 기사님은 답돌이라고 소문난 아저씨야, 탈사람이 없어서 안내양들이 -오라이-라고 외쳐도 안가, 시간 재면서 저 멀리서 뛰어 오는 사람도 다 태우고 다니는 아저씨야, 내일은 너도 오랜만에 근육 좀 써야 될 거야, 각오하고 얼른 자."     

"...."              

답돌이 기사 라면서 키득대는 소리는 여러 번 들었지만 내일 타게 될 49호 기사님이 그분인 줄은 몰랐다. 오랜만에 근육을 쓸 거라고 하니 내일은 어쩌면 승객을 태우지 않아 잔소리들을 일은 없을 거라는 기대감과 금희 언니를 밖에서 만난다는 설렘에 선뜻 잠이 들지 않아 뒤척였다. 

             

다음날 새벽에 사감이 깨우기도 전에 일어난 양희는 유니폼을 입고 빨간통에 준비물을 챙겨 출근을 했다. 사무실에 불은 켜져 있었지만 차에는 아직 시동이 걸려 있지 않았다. 운전석 앞과 바닥을 깨끗이 닦고 앞유리도 반짝반짝 닦았다. -개봉동~서울대-라고 쓰인 노선표가 먼지에 가려질까 봐 닦고 또 닦았다. 그리고 매점에서 사두었던 은단 껌 한 통을 운전석 작은 소지품 통에 넣어 놓았다. 다른 안내양들이 기사님들 준다고 박스로 사는 것을 보고 양희도 따라 샀던 것이다.

            

월급을 받으면 안내양들은 한 달분의 껌과 기타 생리용품을 사고, 미장원을 가고, 화장품을 산다. 크게 쓸 때는  발 편한 메이커 운동화를 사기도 한다. 알뜰한 안내양들은 적금을 넣거나 시골집에 소액환으로 얼마를 보낸다. 그러고 나면 월급탄지 열흘도 안되어 돈이 떨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런 와중에도 기사들 준다고 껌을 한 박스씩 사다가 자기 사물함에 넣어놓고 매일 1통씩 갖고 출근을 한다. 양희도 처음에는 출근길마다 껌을 갖고 가서 운전석에 놓아두었다. 그런데도 자기한테 친절한 말도 안 하고 앞차를 따라다니며 승객도 태우지 않아 회사 측으로부터 불편한 의심까지 받게 하는 기사에게 껌 한 쪽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첫 배차를 받기 전에 사놓은 껌이 아직도 남아있었다. 그 껌을 오늘 큰마음 먹고 한통 들고 온 것이다.   

            

드디어 기사님이 왔다. 양희는 이유 모를 반가운 마음으로 환하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정양희입니다"     

기사님은 흘끗 보고는 운전석으로 가서 시동을 걸었다. 차도 깨끗하고 껌도 드렸으니 친절하게 인사를 받아줄 줄 알았던 기사의 태도에 양희는 뻘쭘했다. 기사님은 시계를 보고 출발을 하면서 -너 모르면 간첩이지...- 하고 중얼거렸다. 기사의 태도에 양희의 입가에 피어올랐던 연한 미소도 사라졌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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