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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차순이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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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숙 Aug 12. 2023

차순이 7

희망의 1149호

 텅 빈자리에 앉지도 않고 손잡이를 붙들고 서서 가고 있었다. 한 정거장, 두 정거장.... 세 번째 정류장은 개봉동입구이다. 이곳에서 출근시간이면 승객들이 꽉 찬다. 그분들은 전철이 연결되는 구로역이나 신도림역에서 거의 내린다. 그리고 다시 영등포 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탔다가 중간중간 내리고 신림역에서 서울대생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탄다. 서울대 입구에서 학생들을 다 내려주고 돌아오는 길은 그렇게 복잡하지는 않다. 정류장 수로는 왕복 60 정거장이 된다. 종점으로 돌아오면 가로세로 20센티 정도의 요금통이 무거워지도록 토큰과 회수권이 채워진다.

            

오늘 저 요금통을 들지도 못하도록 채우리라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는 사이 49호 차량은 개봉동 입구 정류장에 섰다. 문을 열고 내려서서 승객을 태울 준비를 했다. 승객들이 우르르 몰려와 버스 안이 꽉 차고 더 타려고 매달리면 안에서는 문을 닫을 수가 없다. 그럴 때는 내려섰다가 마지막 승객의 등을 감싸고 문과 차량의 봉대를 양손으로 잡고 돌아서서 등으로 밀면서 문을 닫아야 했기에 출퇴근시간에는 반드시 바닥으로 내려서야 한다고 선배들한테 배웠다. 그걸 오늘 제대로 써먹을 준비를 한 것이다. 그런데...   

        

승객들이 우르르 몰려올 것을 상상했던 양희는 거짓말 같은 상황에 당황했다. -어? 차가  벌써 왔네- 하며 타는 승객 2명이 전부였다. 다른 차를 기다리는 정류장의 사람들을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타려는 사람이 없었다. 2분쯤 지났을 때 기사님은 클락션을 울렸다. 얼른 가자는 신호였다. 양희는 실망하며 차에 올라 문을 닫으려 했다. 그때 저만치서 뛰어오는 사람이 보였다. 반쯤 닫힌 문을 다시 열려고 할 때 기사는 그대로 차를 출발시켰다. 그 반동으로 문은 저절로 닫혔고 양희의 몸은 앞뒤로 출렁였다. -뛰어 오는 사람 까지도 다 태운다고 했는데...- 소영이의 말을 기억하며 그 기사님이 아닌가 하여 룸미러에 보이는 기사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분명 1149호 차량 기사님이 맞았다.   

  

앞차는 보이지 않았다. 아마 꼬리가 물리지 않게 적당한 거리를 두고 반정거장쯤 앞에 가는 것 같았다.          

오늘도 양희의 요금통은 형편없었지만 정산실에서 잔소리는 하지 않았다. 모든 게 다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었다. 답돌이라고, 승객을 많이 태운다고 소문난 기사가 교묘하게 앞차가 승객을 다 태운 후에 정류장에 들어가는 것도, 요금이 적다고 삥땅 쳤냐고. 잔소리하던 정산실 간부가 조용한 것도, 모두 양희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기대가 무너진 양희에게 하루는 더 지루했다. 밥시간이 되어 식당에 갔는데 49호 기사와 다른 기사들이 한 식탁에 앉아  껄껄대고 있었다. 그중에는 양희가 진작에 배차받아 일을 했던 다른 기사님도 두 분이나 있었다. 흘낏거리는 그들의 시선을 외면하며 양희는 식판을 들고 한참 떨어진 끝 자리에 앉았다. 기사들의 흘끗 대는 눈길이 신경 쓰여 밥맛도 없었다. 깨작거리다가 찬물에 말아 대충 먹고 일어서려 할 때였다. 49호 기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내가 누구냐? 오늘 확실하게 결단 내줄 테니까 속 시원해지거든 커피나 한잔사라" 


-다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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