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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차순이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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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숙 Aug 14. 2023

차순이 8

센타를 당하다.

 양희는 그들끼리 하는 대화니 신경 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왠지 자신에게 들으라고 한 말 같아서 꺼림칙했다. 찜찜한 하루 일과는 끝나고 퇴근 시간이 되었다. 내일은 비번이니 늦잠을 자고 금희언니를 만나러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터덜터덜 빨간통을 들고 기숙사 정문에 들어섰다. 그때 사감이 불렀다. -정양희! 너 이리 와봐!- 사감의 얼음 같은 목소리에 양희는 선체로 돌이 되어버렸다.  

        

사감실에서 퇴근길에 부르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밤 10 시 넘어 피곤에 찌들어 퇴근하는 안내양들이 얼른 씻고 잠들 수 있도록 그나마 인간적인 배려를 해주는 부분이다. 어쩌면 그마저도 다음날 근무 중에 부족한 잠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사고로 회사 측의 귀찮은 일이 생길 것을 최소한 줄여보겠다는 의도일지도 모른다. 그런 와중에도 굳이 호출하는 이유는 다음날 대타를 탈것인지 묻는 경우와 부정행위를 적발하려는 경우 두 가지이다. 의심되는 안내양을 기숙사 사감이 소지품을 검사하고 몸수색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는 막차를 타고 밤 12시가 넘어 들어와도 부른다.   

           

양희는 내일 금희언니를 만나기로 한 약속을 떠올리며 대타근무 하라고 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대타를 요청할 때는 목소리가 부드러웠다는 것도 떠올랐다. -사감의 목소리가 저리도 차갑다면...- 대타근무와는 다른 경우를 떠올리며 몸과 생각이 멈춰버렸다. 다른 경우? 대타가 아니라면???? 그러나 곧 자신은 떳떳함을 상기하고 사감실로 들어섰다. 날카롭게 쳐다보던 김 사감은 양희를 작은 방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지난번 인자언니가 -오늘 센타 깠어-라며 투덜대는 것을 보기는 했지만 그 센타가 어떤 건지 양희는 아직 직접 당해보진 않았다. 빨간통을 뒤지고 가운주머니 정도 검사하는 걸까? 그때 강자가 말했던 속옷까지 벗는것?! 양희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처음 입사할 때 서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그곳에 명기된 내용 중 -부정행위가 의심될 때 회사 측의 조사요구에 불만 없이 응할 것-이라는 항목이 있었다. 근래 인권운동이 각 분야에서 조금씩 일어나고 있다. 이전에는 그런 사전의 예고도 없이 불러다 옷을 벗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인권침해라고 반발의 조짐이 보이자 입사 전에 순순히 응하라는 예고에 도장을 찍게 했던 것이다.

                   

 사감은 먼저 빨간통을 바닥에 쏱았다. 껌. 박카스, 생리대, 마른 수건, 치약칫솔이 바닥에 와르르 쏟아졌다. 치약갑의 사이까지 열어보고 마른 수건을 펼쳐 털었다. 그리고 양희를 쳐다보았다. 양희는 두 손을 모으고 김 사감의 행동을 보고 있었다. 양희와 눈이 마주치자 김 사감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기를 눌러보겠다는 의도였나 보다. 그리고 "벗어"라고 짧게 말했다. 양희는 벗으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판단을 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가운 벗으라고!" 얼음 같은 김 사감의 목소리가 작은 빈방을 울렸다. 속옷까지 뒤져보겠다는 뜻이라는 걸 알아챘다. 양희는 울컥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센타가 이런 거구나, 강자가 말하던 그것이 사실이었어- 그대로 서 있었다.   

             

사감의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퇴사사유가 된다. 만약에 몸에서 동전 한 닢이라도 나오면 그 또한 퇴사사유다. 그 돈이 자신의 떳떳한 돈이어도 기숙사를 나올 때부터 퇴근하고 숙소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몸에 지니고 있으면 안 된다. 어떻게든 회사는 양희를 자르려는 의도가 있음을 알아챘다.

                   

49호 기사가 하던 말이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내가 오늘 결단 내줄게- 49호 기사는 입금액 상위를 인정받아 공로상도 받은 기사이다. 그런 기사와 일을 한 안내양이 입금액이 형편없으니 안내양이 의심받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어지간한 안내양들은 옷 벗김을 당하고 자존심을 지킨다며 떠나기도 했고, 숨긴 무언가가 발각되어 떠나기도 했다. 양희가 둘 중에 하나는 걸려들기를 기사들이 바라고, 회사는 기사들의 바람에 사실확인도 안 하고 동조하고 있다. 그동안 말대꾸도 안 하고 부지런히 앞유리를 닦아주고 성실하게 일했던 날들이 원망스러웠다.    

      

떳떳함을 밝히려고 못 벗을 것은 없었지만 그런 의심을 받았다는 것이 자존심 상했다. 그러나 벗지 않으면 당장 보따리를 싸야 하는 기로이다. 아버지의 근심 어린 얼굴이 떠오른다. 두 달만 지나면 아버지도 자유로울 수 있는데.. 어떤 이유든 소위, 잘린 사람은 다른 버스회사에 취직하기도 어렵다고 들었다.  

            

망설이는 양희에게 사감은 한 건 했다고 생각을 했는지 직접 가운을 벗기려 했다. 양희는 사감의 손을 잡고 만약에 내 몸에서 아무것도 나오지 않으면 사과할 거냐고 젖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것이? 떳떳하면 벗으면 되지 사과는 무슨 사과야?" 김 사감의 목소리는 커졌다. 양희는 가운의 앞자락을 잡고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때 사과 한다고 약속하라고 버텼다. 그때 윤 사감이 들어왔다. 밖에서 이미 방안의 상황을 모두 판단한 것 같았다. 윤 사감은 김 사감보다 선임으로 기숙사의 총책임을 맡은 사람이다.   

            

"정양희! 너 맹세할 수 있어? 네 몸에 아무것도 없다는 거?"     

양희는 서러움을 삼키느라 딸꾹질을 하며 대답했다.               

"사감님 아시잖아요? 딸국!, 제가 껌값도 안 준다고, 딸국! 소문나서, 딸국! 기사들이 뺑뺑이 돌리는 거요? 딸국! 그런데 제 몸에 뭐가 있겠어요? 딸국! 전 맹세코 떳떳해요. 딸국!"          

 사감은 김 사감에게 눈짓을 했고 김 사감은 마지못해  -들어가 봐-라고 말했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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