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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차순이 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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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숙 Aug 10. 2023

차순이 4

안내양 인터뷰를 보다.

사람 좋은 공장장님은 철없이 따지고 드는 양희를 바라보며 싱긋이 웃으며 말했다.     

"어디서 무슨 말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너랑 강자랑 키득대며 안내양 들 흉보는 거 다 틀렸어, 안내양들이 얼마나 똑똑하고 야무진데 누가 자자고 한다고 아무 하고나 자냐? 그리고 안내양 하면 그럴 시간도 없고 모두 다 기숙사 생활을 하기 때문에 외출도 외박도 사감 허락받고 나와야 돼, 어쩌다가 기사와 안내양 이 눈이 맞아서 남몰래 데이트를 하는 경우는 있지만 그게 강제로 일어나는 일은 아니야, 네가 싫으면 아무도 너랑 자자고 안 해, 그리고 삥땅도 네 양심에 달린 거지 기사랑 짜고 나눠먹고 그런 거 없어, 정직한 기사들도 얼마나 많은데, 괜히 열심히 사는 안내양 들 흉보고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양희는 그렇게 말하는 공장장을 한집에 산다고 너무 친하게 지내면 안 되겠구나 생각하며 철컥철컥 날실과 씨실이 움직이는 기계로 눈길을 돌렸다.   

       

야근을 하고 밤 10시가 되어 공장장님과 강자와 함께 버스를 타고 퇴근했다. 늦은 시각이라 차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버스 맨뒷자리에 강자랑 둘이 나란히 앉고 공장장님은 운전석바로 뒤에 앉아 머리가 허연 할아버지 기사와 무어라 이야기를 하고, 안내양은 졸고 있었다. 강자가 속삭였다.     

"양희야 저 안내양 좀 봐, 우리 또래밖에 안돼 보이지? 근데 저 늙은 할아버지가 자자고 하면 자야 된대, 안 그러면 난폭운전을 하고 손님들도 안 태워서 회사에서 욕먹고 그런데, 너무 불쌍하지? 그러니까 너는 절대로 안내양 가지 마"     

     

버스는 흔들림도 없이 차분하게 달리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고개를 떨구고 졸던 안내양은 정류장 가까이 오면 벌떡 일어나 차 안을 둘러보며 -내리실 분 안 계시면 통과합니다- 하며 출입문 위쪽을 탕탕치고 다시 졸았다. 양희는 정말 그 안내양이 불쌍했다. 기사가 차분하게 운전하는 것은 안내양이 말을 잘 들었기 때문이며 안내양이 저리도 졸고 있는 것은 저 늙은 할아버지한테 밤새 시달렸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양희는 강자의 손을 잡고 다짐하듯 말했다.          

"강자야 나 절대로 안내양 안 갈 거야, 우리 공장에서 열심히 일해서 돈 많이 모아서 2층집 사자, 그래서 너는 2층에 살고 나는 1층에 살고, 우리 시집가서도 그렇게 살자"

철없는 꿈을 꾸던 때였다. 열심히 일하면 이루어질 줄 알았다. 강자도 -좋아 좋아-하며 맞장구를 쳤다.    

    

어느새 버스는 양희 일행이 내려야 할 곳까지 왔다. 공장장님은 기사님과 인사를 하고 먼저 나와 안내양 앞에 섰다. 그리고 친절하게 피곤하냐고, 좀 쉬면서 하라고 말했다. 졸음기가 담긴 눈으로 요즘 안내양이 모자라서 일주일씩 일한다고 그래서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공장장님은 힘들어서 어떡하냐고 걱정해 주었고, 내릴 준비를 하고 서 있던 양희와 강자는 눈을 마주치며 작은 소리로 동시에 말했다. -구라 치고 있네-   

          

버스가 서고 문이 열렸다. 안내양은 요금을 받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양희는 그 손에 자기 손이 닿을까 봐 토큰을 던지듯 주고 내렸다. 자기 생각 속에서 스스로 만들어낸 불결한 상상이 그 손을 닿으면 안 된다고 외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집까지 골목길을 걸어오면서 공장장님은 그런 양희와 강자를 나무랐다. -사람한테 그러면 못쓴다- 둘은 공장장님이 기사들한테도 안내양들한테도 항상 친절한 것이 혹시 공장장님이 시내버스 운전할 때 안내양들이랑 그런 일이 있어서가 아닐까? 라고 키득대며 집으로 들어왔다.    

    

공장에서 밥 해 주시던 할머니가 갑자기 아프다고 아들이 와서 모셔가고는 밥 할 사람을 바로 구하지 못했다. 어쩌면 비용을 아끼려고 사장이 만든 상황일지도 모르겠다. 공장여공들은 스스로 거처를 마련해야 했다. 고참 언니들 몇 명은 자취방을 얻어 나가고 공장장님의 조카인 강자와, 강자의 친구인 양희는 공장장님 댁으로 숙소를 옮겼다. 공장장님의 집은 방세칸짜리 단독이었다. 월세를 내야 하는 상황에서 방을 비워두기가 낭비라고 생각했던 사모님이 하숙이라도 쳐서 월세에 보태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생판 남모르는 남을 들이는 것보다 조카와 조카의 친구를 들이는 것이 믿을만하다고 생각을 해서 결정된 일이었다. 양희에게도 자취하는 것보다 훨씬 좋은 일이었다. 두 분은 항상 따뜻하고 넉넉했다. 야간이 있는 날은 저녁으로 중국집에 짜장면이나 식사가 될만한 음식을 사장님이 시켜 주었는데 한참 크는 애들이 배고프면 키 안 큰다고 늦은 밤에도 사모님이 야식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게 일상이었다.  

          

라면을 먹으며 강자랑 둘이 수다를 떨었다.

"야, 안내양들은 삥땅을 쳐서 브래지어 속에 감추기도 하고 팬티 속에도 감춘다더라. 어떤 때는 사감이 불러다 검사를 하는데 팬티까지 다 벗길 때도 있대"

"진짜? 안내양들 진짜 못됐다. 그게 도둑년이지, 그래서? 그러다 들키면 어떻게 된대? 사감들도 너무하네 어떻게 팬티를 벗겨?"

"잘리겠지? 도둑년을 그냥 두고 볼 회사가 어딨겠어? 안 그래? 사감들도 그게 업무니까 어쩔 수 없나 봐, 안내양들은 사람도 아니라니까!"        

공장장님은 강자와 양희의 수다를 못 들은 척 라면을 후룩후룩 소리 내어 먹고 있었다. 그때 사모님이 TV좀 보라고 했다. TV에서 안내양을 인터뷰하는 모습이 나왔다.     

"어! 안내양 나온다"       


양희와 강자는 안내양 얘기 하니까 안내양뉴스가 나온다며 키득거리며 TV로 눈길을 돌렸다. 안내양 근무복을 입은 앳된 여자애가 웃으며 말하고 있었다. 얼마 전 대입검정고시를 보아 우리나라 전체 수석을 했다는 이야기였다. 양희는 라면그릇에 젓가락을 꽂은 채로 TV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검정고시? 공부? 안내양이? 그것도 전체수석을?  

        

양희는 정말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안내양이 공부를 한다는 것도 그렇고, 수석을 했다는 것도 양희의 상식 속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양희는 라면이 불어 터지는줄도 모르고 TV에 집중했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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