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내양을 보는 양희의 시선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1년 뒤에 중학교에 보내준다던 아버지의 말씀을 어기고 차라리 돈을 벌어 가난한 부모를 돕겠다는 기특한 생각을 갖고 서울에 왔다. 양희의 나이 14살 이었다. 공장을 오가는길에 부딪치는 또래들이 교복 입고 다니는 것이 너무나 부러웠다. 그래서 중학교 보내주신다는 약속을 꼭 지키기를 바라며 견뎠는데, 아버지는 정식 중학교 대신 산업체 학교를 다닐 수 있는 방적공장에 취직을 시켜주었다. 그곳에서 1년을 일하며 공부하며 잘 지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반장언니가 너무 멋져 보여 자신도 그곳에서 반장도 하고 고등학교도 졸업하고 결혼할 때까지 다니려는 다짐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아버지가 선돈을 빌려 쓰고 갚을 능력이 안되자 양희를 애보기로 보냈다. 으리으리한 집에 양희를 데려다주고 가셨는데 양희는 집안에만 갇혀있는 것이 견딜 수 없었다. 어느 날 도망쳐서 찾아간 곳이 전에 있던 공장이었다.
그사이 공장확장을 하여 이사한 그곳에선 모두들 양희를 반겨주었다. 밥 해주는 할머니는 양희를 손녀딸 닮았다고 이뻐해서 반찬 한 가지라도 더 챙겨 주고 누룽지도 감추었다가 주었다. 어린 나이에 시작한 객지생활에서도 먹을 복과 인복은 있었다. 공장여공들 사이에서 그나마 중학교 1년 중퇴도 최고 학력이었다. 그런 양희에게 사장님은 작업반장이라는 직함까지 주었고 은행심부름까지 시켰다. 근무 중에 잠깐씩 옷 갈아입고 은행에 가면 어느 회사의 경리가 온 줄 알고 은행직원들도 친절했다. 공장에서 받는 월급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지고 작은 행복을 느끼며 지냈다. 그때 또 부모님이 찾아오셨다.
애보기로 갔던 그 집에서 돈을 갚으라고 독촉을 한다는 것이다. 양희는 고민했다. 그 빚이 마치 자기가 도망쳐 왔기 때문에 생긴 빚이니 자신이 갚아야 할것 같았다. 그러나 공장 월급으로는 도저히 아버지의 빚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야근까지 하며 열심히 했지만 매번 한 달 살기가 빠듯해 허덕였다. 그때 전직 시내버스 기사였던 공장장님이 안내양을 하면 월급이 두 배는 될 거라고 했다. 양희는 월급이 두 배라는 말에 솔깃했다. 돈만 벌 수 있다면 힘든 것은 얼마든지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양희는 안내양에 대한 나쁜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친구 강자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안내양을 하면 월급이 두 배라는데 나 그거 할까?"
강자는 펄쩍 뛰었다.
"야~ 아무리 그래도 안내양은 안돼, 너 그 말 들었잖아? 안내양들은 삥땅 쳐서 기사랑 나눠먹고 또 기사가 자자고 하면 잠도 자야 된대, 그게 사람이 할 짓이냐?"
집안이 가난해 중학교도 못 가고 공장으로 와서 밤낮없이 소처럼 일만 하는 처지이면서도 스스로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사고로 죽어도 개값도 못받을 그런 몸뚱이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사람노릇을 한다고 여기는 강자와 양희였다. 어디서 들었는지도 모르는 안내양 이야기가 종종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일반인들이 안내양을 보는 시선은 사람으로 보지 않을 정도로 심했다.
양희는 그 말을 듣고는 월급을 아무리 많이 준대도 할 수가 없었다. 포기하고 그냥 공장에서 철야로 일하며 월급제가 아닌 도급제로 일을 하기로 했다. 도급제는 몇 시간을 하든 일한 만큼 계산해 받는 것이다. 새벽부터 밤까지 쉬지 않고 일을 했다. 북실감기부터 시작해서 눈썰미 있게 일을 배워 진작부터 그 공장에서 최고직인 쟈크 테이프를 짜는 일로 승급이 되어있는 상태였다. 공장장은 일하는 중간중간 짜인 테이프의 길이를 재어 장부에 적고 수거해 갔다. 숫자가 올라갈수록 월급도 올라가는 재미에 여공들은 잠도 안 자고 일을 했다. 그렇게 번 돈을 양희는 넉 달째 시골집으로 모두 송금을 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아직도 빚에 쪼달려 집에 들어오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월급 다음날 시골집으로 송금을 하고 온 양희는 너무 속이 상해 화장실에 앉아 울었다. 그 울음소리를 공장장님이 듣고 눈물의 흔적을 지우고 나오는 양희를 불렀다.
"양희야 안내양 가라. 내가 소개해 줄게 너 요즘처럼 그렇게 일하면 지금보다 훨씬 많이 벌 수 있어. 알뜰한 안내양들은 시골에 땅도 사고 집도 샀다더라. 여기서 잠안자고 일 해도 집사기는 힘들어 보인다. 아버지 빚 때문에 숨어서 울지 말고 내 말 들어"
양희는 공장장이 너무 미웠다.
"사람 좋게 봤는데 아주 이상한 사람 이세요. 왜 자꾸 저를 그런 창녀 같은 안내양을 시키려고 하세요?"
공장장은 눈을 크게 뜨고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물었다.
"안내양들은 삥땅 쳐서 기사랑 나눠 먹고 기사랑 잠도 자고 그런다면서요? 그게 창녀지 뭐예요?"
아무리 돈에 찌들어 힘들지만 순수하게 착하게 살고 싶은 양희는 자신의 생각에 갇혀 공장장의 선의를 바로 보지 못했다. 눈물이 절로 났다. 공장장님의 집에서 사모님이 해주는 밥 먹으며 조금 친하게 지내는 사이이기는 했지만 할 말이 있고 해서는 안 되는 말이 있는데 공장장님이 자신에게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하는 거라고 곡해했다.